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살다 보면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월급을 보며 '이번 달도 쉽지 않았지? 고생 많았어.'라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위로를 건넬 때, 낯선 여행지에서 계획이 틀어져도 미리 준비해 둔 다른 일정으로 그날 하루를 즐겁게 마쳤을 때, …….
가장 최근에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한 건, 혼자 남겨진 집에서 바퀴벌레와 조우했을 때였다.
지금은 본가에 들어와 지내고 있지만, 지난 3년간 5평 정도 되는 작은 원룸에서 자취를 했었다. 자취의 장점은 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고, 단점도 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순간, 실시간으로 엉망이 되어가는 집을 목격하게 될 테니까. 그만큼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은 내 현재 정신 상태와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취방 벽에 붙은 커다란 거미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다리까지 포함하면 검지 2마디는 족히 채울 커다란 녀석이었다. 분명 본가에서 녀석을 마주했더라면, 내 다음 행동은 엄마를 애타게 호출한 뒤, 엄마가 벌레를 잡는 내내 옆에서 호들갑을 떨며 아무것도 안 하는 거겠지.
하지만 재수가 없게도 자취방에는 엄마가 없었고, 내가 무섭다고 도망치면 거미가 어디론가 숨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엄마랑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 내내 흐느끼다시피 했다. 휴지를 두껍게 뭉쳐서 누르는 순간, 거미가 슈슈슉 피해 내 손등 위로 올라타는 못된 상상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으니까. 결국 30분 가까이 실랑이한 끝에 간신히 녀석을 멋없게 해치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거미가 아닌 바퀴벌레. 난이도는 곱절로 상승했다.
가족들이 여행 가고 아무도 없을 거라 예상한 집에 들어와 불을 켰는데, 거실 천장에서 강렬한 이물감이 느껴졌을 때의 깊은 절망감이란. 새끼도 아니고 다 큰 으른 벌레였다. 지금 못 잡으면 꼼짝없이 밤을 새우겠다 싶어 공포를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엄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휴지를 두껍게 뭉쳐서 누르는 것도, 신문지로 내려치는 것도 실패 확률이 높아 위험하다고 하셨다. 숙련된 경력자가 제시한 해법은 벌레 퇴치 스프레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사내맞선'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종이컵을 덮어 벌레를 가두고 좁은 틈 사이로 스프레이 주둥이만 틀어넣어 바닥이 흥건해질 때까지 약을 뿌린다. 사실상 익사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때는 단지 웃음을 주기 위한 연출로 생각했는데, 내가 당사자가 되어 보니 완벽한 현실 고증이었다.
천장에 붙어 있던 녀석이 비실비실하다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1차전, 바닥에 뒤집힌 녀석의 꿈틀거림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2차전. 그렇게 간신히 녀석을 해치웠을 때, 아직 최악의 단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단계는 잔뜩 뭉친 휴지로 녀석을 집어서 변기로 운반시키는 일이었다.
이미 다 죽은 녀석이 뭐가 무섭겠냐고 하지만, 중요한 건 타임어택의 유무였다. 살아 있을 때는 놓치는 순간 더 큰일이 나겠다 싶어 없던 용기도 생기지만, 이제는 시간제한도 사라졌겠다, 원래의 쫄보인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겁에 비례하여 두꺼워진 휴지를 들어올릴 때마다 번번이 집기를 실패한 탓에 녀석과 마주해야 했다.
이 나이 먹고 벌레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는 딸내미가 뭐가 예쁘다고, 멀리서 스피커폰으로 상황을 파악한 엄마는 차라리 며칠 뒤에 치울 테니 플라스틱 통으로 덮어두라고 하셨다. 기댈 언덕이 있다고 생각되자 나도 모르게 합리화를 시작하더니 포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남자친구와의 통화로 이내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몸 안에 알주머니가 그대로 있어 자칫 새끼를 깔 수 있다나 뭐라나. 또다시 타임어택이 생기자 정신적인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몸이 바삐 움직였다. 남자친구의 조언대로 종이를 플라스틱 통 아래로 집어넣어 간이 바닥을 만들고 녀석을 안전하게 운반했다. 변기 속 최후의 모습을 뒤로하고 마침내 이 엉망진창인 사건을 끝낼 수 있었다.
공포에 못 이겨 벌레 퇴치 스프레이로 흥건해진 바닥을 뒤처리한 후, 나에게 남은 건 나 혼자서도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 성취감 따위의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하기 싫은 것을 넘어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도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만 한다. 시간제한이 있으면 지체할수록 피해는 커져가는데,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른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걸까. 지금의 나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이런 시절 기대했던 모습처럼 능숙하지도, 의연하지도 않다.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자괴감은 덤이고, 특히 익숙하지 않은 일을 앞두면 괜히 앞서서 불안해하고 예민해진다. 그럼에도 내면의 어린아이를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다가,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달래고 다독인다. 살아간다는 건 완벽할 수 없는 거겠지. 그렇게 다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