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깎다가
내일이 등교 개학이다. 조금은 여유롭게 출근했던 아침시간을 바짝 당겨 갈 생각에 잠이 늦어진다. 미리 챙겨두어야 내일이 바쁘지 않겠다 싶어서 물 묻은 식판을 닦아 넣고 투약의뢰서와 알림장을 적은 후 가방을 챙긴다. 세 아이가 입고 갈 옷도 따로 내놓는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감자를 삶아줘야겠다. 감자를 깎다가 문득, 새로 산 감자칼이 매우 잘 든다는 생각이 든다. 예리한 칼날에 위험도 더 높아지지만 칼날이 예리하지 않으면 감자 깎기는 더 어렵다. 감자칼이 갖는 본연의 임무가 무색해지는 거다. 결국, 위험해 보여도 칼날은 예리해야 한다.
나는 예리한 칼날일까, 무딘 칼날일까. 위험도는 높지만 예리하게 교육의 중심에 선 칼날인지, 안전하기만 하면 모든 건 두루뭉술해도 상관없는 무딘 칼날인지. 예리해야 마땅하지만 공무원사회가 으레 그렇듯 관행과 관습, 상하 수직적 관계에서 오는 피곤함은 예리함을 포기하게 만들 때가 많다. 휴직기간이 6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이 공기가 참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난 예리한가 자문해보는 것이다. 주변이 위험인물로 낙인찍어도 예리할 건 충분히 예리할 수 있어야 함에.
소독과 청소, 마스크와 포스터, 거리두기와 규칙, 언제보다 예민하게 아이들을 맞는 학교. 아이들에게 나눠줄 여러 안내장이 벌써 내 책상 위에 층을 쌓고 있다. 종이 하나로 대신할 수 없는 배움과 가르침의 기쁨, 만남의 기쁨이 있는 채로 아이들과 마주 보고 싶다.
마스크는 벗으면 안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