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빨간 사춘기

너의 사춘기를 들여다보며

by 꿈꾸는 momo

마음을 쏟았던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등굣길, 여느 때처럼 친구 집 앞에서 친구가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안 나오지? 발 밑에 걸리적거리던 돌멩이를 툭툭 찼다. 그러다 문득, 이유 없이 내 발에 걷어 차인 돌들이 클로즈업되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세상 한가운데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막막함과 외로움 따위의 정서가 몰려왔다. 이 땅의 돌들처럼 많은 사람 사이에서 나는 뭐지? 어쩌다 걷어차여도 상관없는, 무의미한 존재. 갑자기 세상이 너무 크게 느껴졌고 모르는 건 많았다. 마음을 쏟았던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이를 테면 친구들 간의 편 가르기, 쉬는 시간마다 꺼내는 불룩한 공깃돌 주머니, 새로 산 수첩 따위... 5학년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반장이었던 나는 키보다 목소리가 컸다. 담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실 때면 회초리로 교탁을 탕탕 두드리며 엎드려! 하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키득거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칠판에 이름이 적히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행동들이 유치하고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자." 그날 이후 난, 떠드는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말로 권유했다. 남자아이들에게도 성을 빼고 이름을 불렀다. 성별이 다르면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르는 현재의 방식이 유치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디 아프냐." 처음엔 친구들의 야유나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점점 수그러들었다. 착해졌다는 말이 들리고, 어느 순간 착한 아이가 되었다. 조용한 것과 착한 것과는 별개지만 별달리 항변할 이유는 없었다. 어느 날, 그렇게 나는 사춘기를 맞았다.


책은 내게 벗이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것들로 가득 찬 낡은 책장에 눈이 갔다. 하드커버지에 금장으로 박힌 제목 위에는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공통된 글자가 있었다. 타자체의 글씨체가 빼곡하게 박힌 종이에서 굽굽한 냄새가 났다. 데미안, 파리대왕, 좁은 문, 돈키호테…. 명작동화, 위인전 같은 장르와는 완전히 다른 장르였다. 어른의 세계를 엿보듯 붉은 뺨으로 책을 열었다. 이해도 안 되는 글을 마구 읽었다. 잘은 몰라도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본능의 결말은 거의 비극으로 끝났다. 인생의 허무함과 비애는 내가 겪게 될 필연적 경험이라 느껴져 우울했지만, 책은 방황하던 내게 벗이 되어 주었다. 늘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 시절, 소설 속에서만큼은 자유로웠다. 주인공의 처지에 나를 대입시키기도 하고 주인공의 감정을 즐기기도 하며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대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밖은 어두웠고 나는 작았다. '밖을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가진 외모와 재능, 환경이 수치심으로 다가왔다. 점점 말이 줄고 두 뺨은 붉어졌다.


비밀 친구가 생겼다

어느 날, 우리 집 뒷 골목길에서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열린 지퍼 사이로 공책과 책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2학년 1반 000. 같은 학교 남학생인 듯했다.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같은 반이 아니면 누가 있는지 잘 몰랐다.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고 이성친구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논다는 아이들만 누굴 사귀네 마네 하며 어울려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아이가 궁금했다. 사회성이 좋은 내 짝에게 슬쩍 말을 흘렸다. 곧 그 아이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수학여행을 가던 버스 안에서 짝이 가르쳐주는 아이를 보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 아이의 얼굴은 해맑았다. 편지를 썼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생길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말이다. 답장이 왔다. 기뻤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문학작품 속에서 본 문장들을 꾹꾹 눌러가며 내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다. 소울 메이트를 얻었다고, 난 특별한 친구를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장으로 대화하는 기분은 묘했다. 편지지를 고를 때와 편지를 기다릴 때의 설렘. 적어도 나를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벽을 뛰어넘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물론 그 관계가 오래가진 못했고 낡은 서랍 속에 추억으로 간직하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나의 볼 빨간 사춘기는 그렇게 조용하게 지나갔다.


20세기의 사춘기 아이들

학습용 태블릿으로 조사할 자료를 찾던 한 녀석 주변으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뭐지? 이상해. 이상하다는 소리만 들리고 내게로 와 도움을 청하는 대신 뭔가 숨기는 듯 모여드는 남학생들. 25번 태블릿에서 유해사이트와 광고가 계속 떴다. 알고 보니 이 번호를 사용했던 앞반 친구가 음란사이트에 접속하여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이었다. 태블릿은 결국 복구가 어려워 서비스센터로 보내졌지만 쉬쉬하던 녀석들의 문화를 직면한 셈이었다. 티격태격하던 친구의 노트에 S.E.X를 적어놓는, 그러고도 그냥 아무 철자나 적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하는 2011년생들을 가르치면서 가끔 나는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물론 전혀 충격받은 척하지 않고 이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지도를 해야 한다. 통신망과 기기는 최신인 대한민국이 여전히 내가 배울 때의 내용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으로 성교육을 하고 있는 게 참 이상하다. 조만간 아이들에게 피임법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

함께 노는 것이 sns와 게임을 통해 만나는 것인 아이들. 학교와 학원이라는 쳇바퀴 속에서 쉴틈이 곧 손 안의 작은 휴대폰인 아이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빠른 속도의 정보들은 걸러지지 않고 아이들의 머릿속에 쌓이고 아이들은 걸러지지 않는 생각과 말들을 고스란히 공기 속에 뱉어낸다. 웃으며 놀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의 외모나 상태를 비하하거나 놀리는 것이 '놀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라떼는 말이야'하는 옛날 사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느릿하고 느슨한 것들을 말한다. 책을 읽어주고 같이 이야기하고 내가 쓴 글을 읽어주기도 한다. 구체적인 경험은 다르지만 감정은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이들의 눈은 빛나고 볼은 발갛다. 어쨌든 아이들의 사춘기가 너무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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