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뜨개

엄마가 아이 옷을 짜주셨다

by 꿈꾸는 momo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학교로 나서는 아홉 살 손자가 대견해서라고 했다. 관악부에 입단하면서 아이는 아침연습에 참여하기 위해 식구들 중 가장 먼저 현관문을 나섰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어둑한 겨울 아침에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손자를 안쓰러워하셨다. “털실 하나 주문해주라.” 엄마는 손세탁 가능한 섬유 중 원하는 굵기와 색상의 실을 골라 주문을 부탁하셨다. 손뜨개를 그만 두신지 한참 되었는데도 몸은 그걸 기억하고 있나보다. 손자 거 뜨는 김에 며느리 거 하나, 딸내미 거 하나, 노모 거 하나... 털실이 모자랄 때마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하셨다.

“색깔이 화면이랑 다르더라.” 완성된 조끼 색깔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엄마는 조금 민망해하며 두 벌의 조끼를 내밀었다. 파란색 조끼와 분홍색 조끼가 포근하게 안겼다. 기계로 조직된 니트의 촘촘하고 탄탄함과는 달리 꽈배기 무늬가 들어간 어머니의 뜨개 옷은 실의 짜임이 훤하게 보였다.


엄마의 뜨개는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일곱 살쯤 되었나. 엄마는 삼촌 사업장 구석에 내 키만 한 진열장 하나만 달랑 들여놓고 노리개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셨다. 장롱 문고리나 한복 장식이 되는 소품이었다. 보들보들한 비단 천과 매듭을 엮는 화려한 실들은 엄마의 손에서 가지각색의 노리개로 태어나곤 했다. 사무용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회색 공간에 알록달록한 노리개들이 진열된 모습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어색한 풍경이다. 이내 심심할 걸 알면서도 난 고집스레 엄마를 따라나섰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는 엄마 옆에서 하릴없이 노리개를 만지작거렸다. 끝에 달린 술이 살랑거리며 손바닥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좋았다. 하루 종일 있어도 손님은 드물었다. 지는 해가 점포 안까지 깊숙이 들어오면 엄마는 보따리 장사처럼, 가지고 온 노리개를 싹 쓸어 담았다.


어느 날부터 엄마 손에서는 노리개가 아닌 뜨개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 멋진 옷이 완성됐다. 가게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엄마는 약속된 날짜 안에 옷을 짜느라 밤낮없이 뜨개질을 해야 했다. 대바늘로 코를 잡고 나면 한 올이던 실이 촘촘히 짜여 면을 이루고 앞판, 뒤판, 양쪽 소매가 완성된다. 그것을 돗바늘로 꿰매 마무리하면 끝이다. “엄마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나도 좀 가르쳐줘요.” 옷이 만들어지는 게 신기해서 대바늘로 흉내를 낼라치면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이런 거 안 배워도 된다.” 엄마는 새로 나온 실로 옷을 짜거나 새로운 무늬를 선보일 때면 항상 내게 맞는 옷을 짜 입혀주셨다. 그러면 동네 아줌마들은 나를 불러 세워 구경을 하거나 주문을 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떠 주시는 옷을 군말 없이 입고 다녔는데 머리가 커질수록 뜨개 옷이 싫었다. 콧물을 쓰윽 훔칠 때마다 개운하게 닦이지 않는 소맷자락이, 피부에 닿는 부분이 까슬까슬 해서 자꾸만 신경 쓰이는 뜨개 옷이 싫었다. 지금에야 좋은 원사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때는 가늘고 짧은 원모들이 삐져나오는 저렴한 원사를 썼으니까. 나는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투명한 원사가 입안에서 거슬리듯 엄마의 뜨개질이 불편해졌다. 엄마가 짜 올리는 뜨개처럼 투박하고 단조로운 생활리듬이 곧 나의 환경이었기에.


엄마의 삶은 뜨개를 닮아 있었다

엄마의 바느질 소리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이었다. 엄마의 삶도 그랬다. 엄마는 옷을 짜듯 끈질기고 성실하게 삶을 엮어 나가셨다. 엄마의 손에서 바느질이 멈췄을 때는 늦게 목회를 결심한 아빠가 개척교회를 시작하셨을 때다. 그때부터 엄마는 옷 대신 기도를 짜 올리는 것 같았다. 예배당을 청소하고 성도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다. 요령을 부리거나 요행을 바라는 일도 없었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보다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 때도 엄마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기도하는 것밖에.”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고 마음이 상할 때는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셨다. 새벽 2시 30분이 엄마의 기상시간이 된 건 그 즈음이었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기도시간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삼남매는 엄마의 수면부족을 원인삼아 기도시간을 뒤로 늦추기를 부탁했지만 엄마의 말 한 마디에 모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아니? 그 시간은 엄마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야.”


나도 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딸로 살면서 가끔은 엄마의 말이 핑계 같았다. 기도라는 핑계로 현실을 방관한다고 생각할 만큼 섭섭할 때도 있었다.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옷은 물론이고 불편한 길을 자처하는 모습이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의 호의가 상대방에게 무시당할 때의 수치를 정작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모든 시간을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엄마가 짜 올린 기도의 힘이라는 것을. 어쩌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다는 그 말은 엄마의 상황에서 선택한 가장 현실적이고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그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무언가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을 때 어깨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새로 만난 아이들과의 유순한 관계와 유쾌한 분위기가 내 능력이라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기도할 생각보다 하소연할 곳을 찾고 괴로움에 잠 못 이루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할 때 이미 부족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비록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한 해를 위해 기도한다. 그렇게 기도할 때 예상치 못한 기쁨을 전하고, 누리는 해가 되지 않을까? 나의 한계 안에서 마무리되는 학교생활이 아니라 한계를 뛰어넘는 한해를 기대하며 엄마가 짜 주신 조끼를 입어본다. 한동안 마음이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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