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과 만나는 곳
엄마 오늘도 할머니 집에 가요? 어린이집 갔다 오면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어릴 적, 산 끝자락에 있던 우리 집을 향해 걸어가다 쉬던 곳은 항상 정각 앞 우물터였다. 면 중심지에서 다소 외딴곳이라 총총걸음으로 걷다 잠시 숨 돌리기 좋은 장소일뿐더러 저만치 눈 앞에 보이는 우리 집을 반가운 마음으로 보게 될라치면 다시 걸을 힘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포장이 안 된 길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생명체에 나는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간혹 산비탈을 유유히 기어가는 뱀이라도 보는 날에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기도 했다. 심지어 하루살이도 그렇게 싫었다. 내 앞에서 떼 지어 시꺼먼 구름을 만들고 있을 때면, 돌아가는 긴 줄넘기 속으로 들어가듯 한참을 망설이다 재빠르게 지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호흡을 조절 못해 콧구멍으로 그 작은 생명체가 들어오기라도 하는 날엔 내내 코를 흥흥 풀어대며 찝찝한 기분이 되었더랬다.
시골 하면 아늑하고 자연스러운, 어떤 멋스러운 풍경을 떠올릴지 모르나 비가 오면 운동화를 엉망으로 만들던 질퍽한 이 길을, 미끄덩한 생명체가 폴짝거리며 나에게 다가올까 노심초사하는 이 길을 그리 사랑하진 않았다. 싫었다고 표현하기엔 뭔가 변화하는 중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해 둔다.
길을 중심으로 한 쪽은 집들이, 한 쪽은 논밭이 쭉 이어지는 이 길 끝에 우리 집이 있었다. 끝집이었다. 지금은 산 넘어까지 이어지는 길이 생겨 언덕 하나 넘으면 다른 집도 만날 수 있지만 길이 포장되고 우물이 없어진 것을 제외하면(이것도 불과 15년 전후의 일이다) 친정 동네는 예전과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지난해부터 낡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어릴 적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들이 그대로 서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초록의 진하기가 계절마다 변하는 이 곳을, 시기에 따라 차례차례 다른 꽃을 피워 올리는 이 곳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걸으며 내 유년이 재구성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빛바랜 사진 속 지루하게 느껴지던 이 곳의 기운이 생기 있는 색깔로 덧칠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유년시절 맘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아이를 보며 느낀다. 아니, 배운다. 돌아보면, 살기 바빴던 부모님의 등만 보면서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자연을 즐기거나 누리기보다 불편해하고 지루하게 생각했던 맘이 더 컸던 건 아닌지. 시골학교 아이들이라면 해맑고 순수하다 착각하지만 무기력하고 소심하거나 혹은 외틀어지고 거칠어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과도 연관되는 대목이지 싶다.
쾌청한 날이면 아이와 또 손을 잡고 걷는다. 매화꽃 만발하다 매실이 조롱조롱 열리기라도 하면 곧 매실청을 담아먹자 다짐을 받고 큰 소나무를 지나 마주하는 담벼락에 내려온 산딸기 줄기에 딸기꽃이 피기를 고대하며 벌써 한 주먹 입에 담을 산딸기에 침을 꼴깍거리는 아이다. 아마 긴 팔 옷이 덥다고 느껴질 때쯤 아이는 손과 입이 까맣게 물들 정도로 오디를 따 먹겠지? 주말에 올 아이를 기다리며 왕할머니는 또 앵두며 산딸기를 고이 따다 놓을 것이다.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리는 것쯤은 아랑곳 않고 잠자리채 하나 울러메고 들판에 폴짝이는 메뚜기며 도랑의 개구리들까지 잡고 노는 아이는 내내 즐거울 것이다. 앗, 그렇다고 내가 이 곳의 생명체들과 친해진 건 아니다. 아이 손보다 빠른 메뚜기를 잡아주는 건 내가 아닌 왕할머니다. 아이 앞에서 애써 흥분을 감추며 지켜만 보는 엄마맘을 언젠가는 들키겠지만 아직은 용기 있는 척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