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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momo Sep 18. 2024

저경력교사

현수&

“선생님, 도움반 교실에 샤워실이 있으니까 그리로 가보세요. 아마 여벌 옷도 있을 거예요. 여기는 내가 뒷정리할게.”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미선을 보며 연배가 높은 2학년 선생님이 재촉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미선은 동규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동규가 어그적거리며 따라왔다. 지린내가 확 풍겼다.

“동규야, 왜 거기 갇혀있던 거야? 누가 그랬어?”

 미선은 걸음을 늦추며 동규 옆에 섰다. 동규가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현수가...”

 자세한 내용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현수라는 말이 귀에 정확히 꽂혔다. 현수라고? 태연하게 앉아 있던 현수가 떠올랐다. 미선은 동규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려다 도움반 교실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만두었다.

“일단,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미선이 도움반 문을 두드리며 동규에게 말했다.

"네?"

미선이 문을 열자, 교구를 정리하던 도움반 선생님이 돌아보았다.

"저, 선생님. 저희 반 아이가..."

미선이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동규를 살피던 선생님은 형편을 눈치채고 샤워실을 가리켰다.

"아이코, 얼른 샤워실로 들어가자. 혼자 씻을 수 있지?"

도움반 선생님의 말에 동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 서랍장에서 옷과 봉지를 꺼내오셨다.

“씻고, 입던 옷은 이 봉지에 담아서 나와.”

동규는 도움반 선생님이 건네는 여벌옷과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아, 선생님. 제가 수업 중이라 그러는데, 먼저 올라가 봐도 괜찮을까요?”

미선이 어렵게 물었다. 이런 상황이 항상 불편했다. 꼭 자신이 저경력 교사라 생기는 일인 것 같았다.

“네, 선생님. 이 친구는 제가 챙겨 보낼게요.”

“너무 감사합니다.”

미선은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고는 잰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교실로 향하며 앞뒤 정황을 추측했다. 현수가 동규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5학년보다 빨리 하교하는 2학년 화장실을 선택해 동규를 골탕 먹인 것도 비열하게 느껴졌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교실문을 열자 시끌시끌하던 아이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미선의 눈은 빠르게 현수를 찾았다. 사물함 위에 걸터앉아 있던 현수는 느긋하게 사물함에서 뛰어 내려와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그 모습을 보자 화가 솟구쳤다.

“장현수! 이리 나와.”

아이들의 눈이 모두 현수에게로 향했다. 현수가 미선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요?”

“왜요라니? 당장 나오지 못해!”

악을 쓰듯 내지른 미선의 목소리에 놀란 건 다른 아이들이었다. 미선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현수는 자신이 주목되는 상황에 움찔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씨발, 내가 뭐 했다고.”

무안을 견디다 못한 현수는 미선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긴장된 공기를 가로질러 날카롭게 미선에게 전달되었다.

“뭐라고? 선생님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결국 미선은 해서는 안 될 말을 뱉어버렸다. 얼굴이 타올랐고, 마음은 내려앉았다. 아차 싶었다. 다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예상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돌아갔다. 현수가 실내화를 끌듯 앞으로 나왔다. 약간 겁먹은 표정이 어려있는 듯했으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 방금 선생님한테 뭐라고 한 거야?"

미선은 될 수 있는 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그냥 혼자 한 말인데요."

현수가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매우 불쾌해. 사과해."

갑자기 현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 앞에 모은 채 어깨를 폈다.

“네, 죄송합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씩 미소를 지었다. 미선은 질끈 눈을 감았다. 졌다. 교활한 웃음이 미선을 강타했다. 미선은 할 말을 잃었다. 동규 일에 대해 아이들 앞에서 잘못 꺼냈다간 된통 당할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그때, 종이 울렸다. 다행이었다.

“들어가. 마치고 잠시만 남아서 이야기하자."

미선의 말에 현수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안 되는데요. 저 바로 학원차 타고 가야 해요."

하교 시간에 민감한 아이들은 이미 가방을 정리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내일 아침 이야기해. 자, 자기 자리 정돈하고 모두 가방 메자.”

미선의 말에 개인용 빗자루를 꺼내 주변을 정리하는 아이는 단 두 명뿐이었다. 금세 왁자지껄해진 교실에서 미선에게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은 없었다.

“자, 마치자. 차렷 인사!”

원래 일일 도우미가 해야 할 일이지만, 미선은 목소리를 높여 마무리했다. 얼떨결에 인사를 하는 아이,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들….

“안녕히 계세요.” 몇몇 아이들의 목소리에 두리번거리던 아이들은 썰물처럼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교실은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휴”

미선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모니터에서는 읽지 않은 업무 메시지가 다섯 통이나 쌓여 깜빡이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출결마감 처리 부탁드려요, 선생님.     


업무처리를 재촉하는 메시지를 보면서 미선은 다시 모니터 앞에 바짝 다가갔다. 업무포털 사이트에 연결하고 로그인하는 동안 두통이 몰려와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교실 뒷문이 스르르 열리며 동규가 들어왔다. 거의 매일 입다시피 하는 학교 체육복이 오늘따라 더 후줄근해 보였다. 말리지 못한 짧은 머리칼이 창가로 들어온 햇살에 반짝거렸다. 동규는 멋쩍은 표정으로 미선을 쳐다보더니 가방을 들고 미선에게로 다가왔다. 방과 후면 으레 미선의 책상 옆자리에 앉아 보충 학습을 하는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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