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규는 미선의 기분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무 말 없이 공책을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맞춤법이 틀린 글씨가 또박또박 진하게 공책을 눌러 뒷장에 음각처럼 새겨졌다.
“됐어. 이것 좀 먹고 하자.”
미선은 간식을 꺼냈다. 동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배가 고팠을 것이다. 아이가 초코파이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미선은 말을 꺼냈다.
“현수가 밖에서 문을 잠근 거야? 거긴 왜 들어갔니?”
동규는 입에 있던 음식물을 한번 삼키고는 미선을 쳐다보며 말했다.
“급식 먹고 갑자기 화장실 급해서, 급하다 급해 말했거든요. 현수가 옆에서 듣고는 여기도 화장실 있잖아! 해서 갔어요.”
미선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전개였지만 결론은 틀리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으로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어쩌다 청소도구 있는 칸에 들어간 거야? 현수가 따라왔어?”
“아니, 그게... 1학년인가 2학년인가 애들이 몇 명 있었는데, 제가 들어가니까 누가 ‘마성리 사는 형이다’ 하는 거예요. 그냥 무시하고 첫째 칸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갔는데, 거기 변기가 없고 다른 기 막 있어서 나갈라 했는데 문이 닫혔어요. 누가 그랬는지 몰라예. 두드려도 말이 없고.”
미선은 가슴이 콱 막혔다.
“아니, 그 애들이 그런 거야? 현수가 아니고?”
“모르겠어요. 현수는 화장실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기는 했는데 오지는 않았어요.”
미선은 들고 있던 볼펜으로 수첩에 동글동글 낙서하다 멈췄다. 어렵게 되었다. 범인은 잡아야 하나, 어떻게 잡지? 그리고 현수한테는 뭐라고 하지? 머리가 복잡했다.
그때 교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현수 고모라는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요. 혹시 애가 교실에 아직 있냐고 물어보시네요? 애가 학원에 안 왔다는 연락받고 전화 주신 것 같아요.”
“네? 아니요. 현수 아까 마치고 학원 간다고 바로 갔어요.”
“그럼, 직접 통화해 보실래요? 전화 돌려드려도 될까요? ”
“네, 네.”
잠시 후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선생님, 현수 고모입니다.”
“아, 네. 현수는 마치고 바로 학원으로 갔습니다.”
“아 이놈이 어딜 돌아다니는 거야... ”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선생님, 현수가 사실 사연이 좀 있습니다. 작년에 저네 엄마가 현수를 데리고 가 살다가 1월에 갑자기 애를 지 아빠한테 보냈어요. 저도 먹고살기 바쁘고, 제 새끼도 둘이나 있으니까 잘 안 챙겨지네요. 애가 갈수록 비딱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선생님께서 좀 챙겨봐 주세요.”
갑자기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전해진 말들의 무게가 미선에겐 너무 무거웠다.
“아... 네. 안 그래도 요즘 태도가 거칠어져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챙겨보겠습니다. 무슨 일 생기면 또 연락 주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서 미선은 한참 멍하게 있었다. 옆에 있던 동규가 말을 꺼냈다.
“선생님, 현수 우리 동네에 살아요. 같이 노는 형들 누군지 알아요. 못된 형들이 계속 현수를 불러가요.”
미선은 깜짝 놀랐다.
"현수가 마성리에 산다고? 주소지가 아니던데?"
동규는 자신의 말에 관심을 갖는 미선을 보고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현수 원래 우리 동네 살다가 엄마따라 이사간 거예요. 어릴 때 저랑 친했거든요? 그런데 4학년때부터 현수가 좀 달라졌어요. 다시 울 동네 왔는데 많이 변했어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