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2

by 꿈꾸는 momo

할머니가 작은 빌라로 이사를 가신 건, 장가를 안 간 막내 삼촌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였다. 나와 같이 사신 지 1년이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까마귀가 울더마,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더마"


물 묻은 손을 훔치며 전화 한 통을 받으시던 할머니는 이 말만 남기고 가셨다. 며칠 후, 학교를 마치고 온 방에는 할머니의 옷장과 TV가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가 교회에 들고 다니시던 가방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 가방엔 성경책과 찬송가, 돋보기안경이 들어있었다. 그랬다. 종교를 바꿔서 이 사달이 난 거라고, 조상님을 버리고 예수교를 선택한 장남(아버지는 집안의 종교를 거슬러 기독교로 개종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 말을 따르면 안 되는 거였다고 주변에서 숙덕거렸다. 할머니는 그 말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떠나 버렸다.


그 이후로 수년 동안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할머니는 삼촌의 사망 보험금으로 얻은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사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지나가면 수군거렸다.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자식들 고생한 돈으로 몸에 좋은 거 다 챙겨 먹고 저렇게 건강하다고, 아들 먼저 보내고도 세상 편하게 사는 할머니라고 했다. 자식을 잃으면 수척해진 모습으로 불운하게 살아야 맞는 건지, 야윈 할머니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할머니 속은 알 수가 없으나 "내 일본말도 좀 할 줄 안다. 내 노래도 제법 한다."라고 우쭐하던 할머니의 아이 같은 모습이 떠올라 왠지 애처로웠다.


할머니를 다시 만난 건 아버지가 교회를 세운 후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첫출발의 긴장됨과 설렘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 응집되어 있었다. 그 고요함을 뚫고, 벌컥 예배실 문이 열렸다. 할머니였다.


"아이고, 내가 왔다. 내가. 내사 이제는 여기만 올끼다. 이제는 다른 데 안 갈끼다."


등장마저도 부산했으나 예상 밖의 상황에 모두 다 놀랐다.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 후로 할머니는 늘 있었던 사람처럼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30분을 걸어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나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침 일찍 대문 밖에 소금을 뿌리시고 달밤에 정안수 앞에서 손이 닳도록 빌던 모습과 닮아있었다.


마냥 철없는 아이 같던 할머니도 세월 앞에서는 조금 부드러워지는 건지, 나를 볼 때마다 애들 주라고 까만 봉지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마산 캐러멜이, 눅눅해진 옛날 과자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안 그러셔도 된다고 했지만, 어떤 날은 애들 먹을 걸 못 갖고 왔다 하며 미안해했다. 명절에 할머니를 찾아가면 아이들에게 용돈을 건네시며 우리 남편에게 내 자랑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를 칭찬했다.


“자네 복이 많다. 울 정이랑 결혼해서. 저그 엄마 닮아서 얼마나 착한데, 내가 살아보니까 우리 큰 며느리가 제일이었다. 으이그 내가 이리 오래 산다, 자는 잠에 가야 될낀데”


그러던 할머니가 갑자기 넘어졌다. 이 연세에는 수술이 불가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청년같이 일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세월은 자연스럽게 노화를 진행시켰고, 검버섯이 오른 할머니의 얼굴은 더 깊은 주름으로 어두워졌다. 얼마 뒤 같은 곳을 다친 할머니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셨다. 가족 중 누구도 할머니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요양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다행히 남은 가족을 힘들게 할 만큼 오래 계시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또다시 자기 자리를 재빨리 낚아채듯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셨다.


아무도 울지 않는 빈소는 썰렁했다. 슬픔보다는 고단한 침묵이 공간을 메웠다. 남은 삶을 사는 할머니의 자식들마저 온전히 할머니 곁에 없었다. 남편의 오랜 병시중을 하는 큰고모와 다리 수술을 한 둘째 고모는 빈소에도 보이지 않았다. 치매에 걸렸다는 작은 고모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자식마저 슬퍼하지 않는 할머니의 죽음이 왠지 쓸쓸했다. 생전에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던 할머니의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에게도 살갑게 기억되지 못하는 할머니의 존재가, 그저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 한 인생의 쓸쓸함이 길게 내 마음을 할퀴었다.


남긴 것도 없는 유품들을 정리하며 할머니를 회상하던 자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아파서 골골하지 않고, 건강하게 늙으시다 돌아가셔서 나중엔 고맙더라.”


엄마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참, 그것도 고마울 수 있는 거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래요, 엄마. 엄마도 엄마 스스로를 좀 챙길 필요가 있어요."


칠십이 된 엄마의 노년을 생각하며 나도 한마디 보탰다. 엄마 눈을 보고 있자니, 내 시야도 뿌옇게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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