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고마운 나
유난히 고된 한 주를 보냈다. 회사 동료가 빗길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졌다.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기에 그녀의 업무는 나와 다른 동료가 나란히 나눠 가졌다. 일이 많아진 것보다 안타까운 건 밤하늘의 펄을 찾는 가수를 퍽이나 좋아하는데, 대학 축제 초대가수로 부산에 온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업무량이 늘어난 탓에 도저히 칼퇴를 할 수 없었고 울적한 마음에 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하면서.
밀려오는 일을 하나둘 처리해 가는 와중에 집안 제사도 지냈다. 퇴근하고서 큰집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꼬박 잠을 잤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눈꺼풀이 그대로 감기고 말았다. 앞치마를 챙겨 도착한 큰집에는 기름냄새가 폴폴 났다. 이미 음식은 만들어진 상태였고, 개수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설거지만 두어 개 잽싸게 끝내고 하루가 끝날 때쯤 제사를 드렸다. 제사상을 치우고 나니 식욕대신 졸음이 몰려왔지만, 바쁘게 밥상을 차렸다. 분명 식욕이 없었는데 가지런하게 자른 수육에 자꾸만 젓가락이 갔다. 수박까지 야무지게 먹고 상을 치우니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하나둘 차곡차곡 쌓여갔다. 더운물에 그릇을 헹구고 세제를 묻혔다. 바쁜 마음에 여기저기 튀는 물방울을 맞으며 ‘아 역시 앞치마 가져오길 잘했다’ 따위의 생각을 했다. 일 년에 다섯 번 있는 제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튀김을 놓는 제기, 과일을 놓는 제기는 매번 헷갈렸다. 그래도 늘 무사히 제사는 치러지니 다행이다.
그렇게 한주를 보낸 후에 주말, 나는 이불에 파묻혔고 한낮이 될 때까지 몸을 일으킬 마음이 없었다. 그 사이에 몇 번의 전화가 울렸다. 나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연락이 와 있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도 되고 서운하다는 메시지와 꿈에서 나를 만났는데 눈 떠보니 내가 없었다는 메시지가 번갈아 와 있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들의 마음을 받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행복으로 충만했다. 꿈에서 나를 만났다는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꿈에서 나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부산에서 서울까지 연락도 없이 무작정 도착해 친구 집 앞을 서성였다고 한다. 너무 반가워서 ‘뭐 하고 놀지?’ 생각하다 깨버렸다고. 평소의 나와는 사뭇 달랐지만, 꿈에서도 나를 반겨주는 친구는 감동이었다. “서울에는 안 오고 여태 자고 있느냐”는 친구의 말에 “모르겠고 그냥 바닐라라테가 마시고 싶네”라고 무심결에 답한 기억이 난다. 잠이 덜 깬 채로 본능에 이끌리듯 먹고 싶은 걸을 말했다. 나가기는 싫은데 달달한 커피는 마시고 싶었다. 한참 수다를 떠는데 “라이더가 픽업했대. 곧 커피가 갈 거야”라는 친구.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말한 몇 분 전의 나를 후회했다.
한없이 잘 베푸는 그녀였다. 내가 바빴다면 그녀는 감기몸살과 고열로 한주 내내 아팠다. 응급실을 하루 걸려 다니며 링거 투혼으로 간신히 출근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죽 한 그릇도 보내지 못했는데, 이불밖으로 나가기 싫은 나를 위해 커피를 보낸다니 가난한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집안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스프링이 튀듯이 쏜살 같이 달려가 문을 열었다. 커피는 달그락달그락 경쾌한 얼음소리를 내며 내 손에 쥐어졌다. 우리 동네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커피를 친구 덕에 시원하게 들이켰다. 차가운 커피를 마셨는데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커피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에 친구는 달달한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를 전했다.
가끔 친구를 보며 ‘어떻게 하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한다. 따스하고 다정한 성품에 분별력까지 갖췄다. 그런 사람이 내 친구라니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한 번은 “네가 내 친구라서 참 좋아”라고 했더니 친구는 “나는 널 친구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동생처럼 생각한다”는 말에 적잖이 놀랬다. 외동인 친구가 갑자기 동생 타령이라니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나를 아낀다는 걸로 받아들였다. 나를 동생으로 여기는 친구의 생각은 변함없는 듯 하지만, 나를 걱정하는 이가 있어서 오늘도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