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라면 할머니가 떠오르는 나
토마토 하면 외갓집 부엌이 생각난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찰토마토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설탕을 흩뿌려주었다. 할머니가 어서 숟가락을 쥐어주길 기다리면서 가만히 주름진 손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더운데도 바싹 붙어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좀 떨어져 앉으라고 하셨지만, 난 할머니 곁에 들러붙어 있었다. 할머니가 그릇을 쟁반에 받쳐주시면 마루로 나가 언니와 함께 토마토를 나눠 먹었다.
숟가락으로 사이좋게 하나씩 떠먹다 보면 토마토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남은 설탕물을 단번에 들이켰다. 할머니는 “우리 똥강아지 토마토도 잘 먹네”하시면 엉덩이를 토닥여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토마토보다 설탕물을 마시는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달콤한 것은 대부분 좋아한다. 가끔 옛날 생각이 나면 토마토를 잘라먹고는 하는데 이상하게 설탕은 뿌리지 않는다. 토마토 향이 벤 설탕물은 과거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싶은 마음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그리운 할머니만의 레시피다. (물론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먹는 사람은 많겠지만, 할머니의 그것과는 다르다.)
신기하게도 예전보다 더 자주 할머니를 떠올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고되어 마음껏 응석부리던 그때가 그리운 것 갈기도 하다. 할머니께는 온전히 사랑받았다. 그건 엄마아빠가 내게 주는 사랑과는 또 다르다. 할머니에게 나는 항상 강아지였고 언제든지 할머니 품은 내 차지였다. 할머니 품에 안겨 큼지막한 목걸이를 만지면 나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주던 할머니의 보드라운 손길. 할머니 손은 말랑말랑했다. 그 손을 꼭 빼닮아 엄마의 손은 보드랍고 폭신폭신하다. 잡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놓이면서 기분이 말랑해진다. 엄마는 손을 잡을 때면 손을 꼭 잡았다 놓았다 하는 버릇이 있다. 엄마도 알지 못하는 오랜 습관을 느끼며 ‘아 우리 엄마 맞네’와 같은 생각을 한다.
하루는 엄마에게 “엄마, 엄마도 엄마 생각이 나?”라고 물었다. 엄마는 “당연하지. 매일 보고 싶어”라고 해서 마음이 먹먹했다.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할머니가 아플 때마다 엄마는 짐을 챙겨 외갓집으로 향했고 혹 입원이라도 하시면 곁을 지켰다. 할머니를 많이 닮은 엄마는 효녀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옅어질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할머니는 바래지 않고 뭉근하게 남았다.
과일가게를 지나는데 빨간 바구니에 토마토가 탐스럽게 보인다. 나는 언젠가부터 토마토를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 토마토는 언제라도 내게 따뜻함을 안겨줄 것만 같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토마토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토마토를 썰면서 싱그럽고 따스했던 할머니의 토마토를 함께 그릇에 옮겨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