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일 때면 곧잘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친구네서 주말을 보냈는데, 평소라면 일어나지 못할 7시에 눈이 떠졌다. 고요한 침묵에 둘러싸여 ‘조금 더 잘까? 일어날까?’ 고민하는 사이 친구가 깼다. 시계를 확인하는 친구 역시 같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친구는 눈을 부비며 이부자리를 차고 바닥에 발을 디뎠다.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꼼짝도 않고 이불의 포근함을 느끼며 누워 있었다.
화장실에서 친구의 씻는 소리가 들렸다. 씻고 나오면 친구는 밖으로 나갈 테고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은지 아니면 친구를 따라 나가고 싶은지 생각했다.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이른 시간이지만 몸을 일으킬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S야, 지금 나가면 커피 마실 수 있어?”라고 물었더니 “지금은 없고 돌아올 때쯤엔 마실 수 있지”라고 했다. 공원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에 마시는 커피라니 더 좋았다. 일찍 일어난 나에게 주는 보상같이 느껴져서 신이 나 나갈 채비를 마쳤다.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기어코 가랑비를 뿌렸다. 우산 없이 나온 산책길에 흩날리는 비를 만난 탓에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신기하게도 공원에 도착하자 비가 멎었다. 해가 나지 않아도 그저 좋았다. 덕분에 찬찬히 걸으며 하늘을 보며 오늘의 날씨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친구와 나는 비에 젖어 촉촉해진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거리지 않아 아쉽지만, 딱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거니 이마저도 좋다며 행복해했다.
걷다 보니 유난히 러닝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잠든 시간에 사람들은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구나’ 하고 있는데, 곁에 선 친구가 “나 러닝 하는 사람들 따라서 조금씩 뛰고 있어”라고 말했다. 바지런한 성격의 친구는 산책도 자주 하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하는데 이제 러닝까지 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친구 말로는 다른 사람처럼 숨이 찰 정도로 뛰거나 하지 않고,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다른 러너들이 눈치 못 채게 함께 뛴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쫓아서 뛰어갈 친구의 모습이 그려져 얼마간 웃었다.
한 시간만 걸으려고 했는데, 함께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두 시간을 걸었다. 발바닥이 아파올 때쯤 커피숍이 보였고, 우리 동네에서 만날 수 없는 커피숍이라 어떤 커피를 마실지 한참 고민하다 트리플 트리플이라는 이름에 끌려 주문했다. 한 모금 마시고는 트리플의 의미를 알아챘고, 시럽을 세 번 쭉쭉쭉 넣어줘서 트리플인 모양이었다. 달아도 너무 달았다. 싱글과 더블더블 사이에서 엄청 고민했는데, 이 정도의 달달함이면 싱글을 먹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고대한 커피맛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묘하게 또 먹게 되는 마성의 달달함이었다.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우리는 친구의 집에 다다랐고, 그새 날이 개어 나뭇잎사이로 찬란히 반짝이는 햇살을 보며 산책을 마쳤다. 환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달달한 커피보다 더 큰 행복감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