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대학은 봄이면 벚꽃이 아주 멋들어지게 폈다. 하필 벚꽃이 만개한 때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으며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부였던 나는 시험이 비교적 일찍 끝났는데 공대였던 친구의 시험 기간은 길고 또 길었다.
함께 만나 학식을 먹으러 가는 길 흐드러지게 핀 벚꽃잎과 목련나무 사이를 거닐었다. 사진을 찍는 우리와 달리 그 친구는 연신 코를 훌쩍였다. 꽃가루가 날리는 봄이 되면 비염이 더 심해지는 친구였다. 코를 훌쩍이는 친구를 데리고 우리는 캠퍼스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훌쩍이면서도 웃는 얼굴로 함께 교정을 거닐었다. 그러자 봄이 찾아온 것처럼 마음이 밝아졌다.
그때가 대학 생활 중 가장 밝게 빛나던 때가 아니었을까. 대학 때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떨었고 곧잘 우울했으며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보지 못한 채로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런 나를 그 친구는 그저 말없이 지켜봤다. 그게 너무 고맙고 또 좋았다. 종종 만났지만 깊이 마음을 나누지는 못했다. 어느샌가 친구는 학교에 띄엄띄엄 나오더니 휴학을 해버렸다. 그럼에도 우린 졸업 후에도 간간이 만났다.
나는 졸업하고서 서울로 왔고, 그 친구는 휴학을 한 탓에 학교를 더 다녀야 했다. 엄마아빠를 볼 겸 본가에 들렀는데 친구가 수술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술이라는 단어가 아주 무겁게 느껴지던 때다. 매번 코를 훌쩍이던 친구는 개강을 앞두고 비염수술을 받기로 했다. 얼떨결에 함께 동행했는데 보호자는커녕 간병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터라 뭘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리둥절하는 사이 친구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고 마취가 덜 깨 횡설수설했다. 그 와중에 입을 뻐끔거리는 모양이 금붕어 같다는 생각을 하며 친구를 내려다보았다. 멀뚱하게 친구를 보고 있자니 간호사가 “보호자 분 환자분 자지 않게 말 걸어주시고요. 아직은 물도 마시면 안 돼요”하고 주의 사항을 일러주곤 병실을 나갔다. 문제는 친구는 목이 마르다며 물을 마시고 싶다는 거였다. 간호사 분한테 다시 물어보니 가글을 하시되 물은 드시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는 자꾸만 입이 마르다고 했고 나는 친구의 가글물을 건네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병실에 덩그러니 앉아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번갈아 시계를 보며 “얼마 후에 물을 마실 수 있어” 따위의 말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은 지나기 마련이고 드디어 친구는 물을 마셨다. 물 한 통쯤이야 단숨에 들이켤 줄 알았는데 몇 모금 채 마시지 않았다. 친구 대신 남은 물을 꼴깍꼴깍 삼키며 함께 시원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