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람이 술을 찾는다

취하지 않는 술이 있다면

by 서규원

내게 술과 관련된 기억 중에는 좋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의 기억이었는데, 나는 생일이 빨라서 대학 신입생 때는 호프집에도 눈치를 보며 들어갔었다. 그나마 학교 주변은 괜찮았는데, 고교 동창들을 만날 때면 민증 검사가 없는 호프집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돌이켜 보면 술을 입에 대지도 않으시는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형과 함께 사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을 좋아했었다.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교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꼈고, 그런 외로움을 이겨내고자 여러 모임에 참여했었다. 당시 나는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내 마음속에는 원인 모를 허무함과 공허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23살에 군대를 전역하고부터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계속 되던 시기였는데, 나는 형의 권유로 '화요모임'이라는 예배모임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동안 내적 갈등이 심했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믿음의 불이 당겨진 계기가 되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일학교 때 들은 성경이야기가 전부였던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신앙이 있다고 확실히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렇다고 안 믿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그런 상태였다.



제대 후에 바로 시작했던 공사 현장 아르바이트를 두달 정도 했는데, 오랜기간 학교를 안다녀서 그런지 학교 생활이 그리워졌고 예정보다 빨리 복학하기로 마음먹었다. 복학까지 남은 기간 동안 뭔가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없는 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내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읽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씀을 읽어보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읽으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그래도 참고 읽었다. 재밌는 부분도 있고 지루한 부분도 있었는데 결국에는 끝까지 한번 다 읽을 수 있었다. 당시에 성경책 한번 완독한 것으로 내 마음이 특별히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내적 갈등이 있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한 가지 수확이라고 하면, 어차피 신앙을 갖고 살거라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바뀌어야 할 내 생활 중 큰 것 하나가 나의 음주 습관이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서 저지른 큰 실수는 그동안 없었지만(이 부분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잘한 실수들은 많이 했었다. 아마도 그런 음주 습관이 계속 되었다면 한두번은 큰 실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 문제는 술을 마실 때 절제가 부족한 것이었고, 술에 취하면 더욱 용감해져서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들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후로 나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다짐했다.



술을 안 마시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당시에는 술에 대한 욕구보다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내게 더 심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친했던 친구들에게는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괜찮았지만 별로 안 친한 사람들에게까지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 좀 친했던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대신에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학교 내의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갔고, 남은 학교생활을 그곳에서 생활했으며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졸업생 모임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없이 술을 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졸업 후 처음 연구소에 취직해서 팀 회식을 했을 때도 술을 좀 하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술을 안 마신다고 말씀드렸고, 어차피 오래 함께 생활할 사람들이라서 내 사정을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다행히 이해를 해주셔서 그 이후 회식으로 인한 괴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배려해주시고 다른 음료수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도록 해주셨다. 요즘은 회식 문화가 좀 달라져서 억지로 마시도록 강요는 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나중에라도 내게 술을 강요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나는 또 길게 내 사정을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은 술을 안 마시는 이유가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그냥 술 끊었다고만 이야기하고 거부할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요즘은 회식 자체가 너무 희귀하고 이런 저런 일들로 바빠서 술약속 자체가 드문 편이다. 또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술 사마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한 실험 중에 술의 성분에 관한 실험이 있었는데, 알코올이 몸에서 분해되면 아세트 알데하이드 라는 물질이 되고, 이 물질이 혈액 속에 많이 존재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이 물질은 재빨리 초산으로 분해되어야 독소가 없어지는데, 이 때 작용하는 효소가 아세트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이다. 만약 주류제품 중에 이 효소가 포함되어 있는 제품(그 효소를 생산하는 미생물이 포함된 제품)이 있다면 원래보다 알코올 분해능력이 빨라질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시작한 실험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었다. 그런 제품이 존재한다면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술이 될 것이고, 취하지 않으면 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많은 부작용들이 바로 개선되지않을까 생각했었다. 어쩌면 음주단속이 필요없게 될지도 모르고 만취상태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예방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술은 그 자체는 좋고 나쁜 게 없지만 그걸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한없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술을 절제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지했고, 신앙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금주를 시작하게 되었었다. 지금도 술이 주는 유익함보다 해로움이 내게 더 크기 때문에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외롭지도 않아서 과거에 술을 찾았던 이유가 내게는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 같다.




Photo by Dylan de Jong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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