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잠들어 있을 시간인 밤 3시가 조금
지났을까요.
"불이야! 불이야~~"
다급한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잠에서 깼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식구들을 깨우고 현관문을 열고
상황을 살펴보니, 진짜 위기 같았고 아무것도 챙기질
못하고 맨몸으로 뛰어 나갔어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뛰어다니며 각세대 초인종을 누르며 소리치고 있더군요.
"601호에서 불이 났어요 불이~~"
"빨리 1층으로 대피하세요~"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으로 내려가세요~"
우리 라인에 모두 초인종을 누르며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오기 전에 이미 그 학생이
소리치고 있더라고요.
"불이야~"
소리를 듣고 주민들이 계단으로 쏟아져 나와서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짧은 순간에 공포가 엄습해 오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고 그 짧은 시간에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분초를 다투는 찰나에도 우리 가족이
무사히 대피하고 있는지 목소리를
확인하면서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고 있더라고요.
여기저기서 질러대는 소리들 때문에 북새통 속에서
난리였어요.
위기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가족을 찾고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고 본능이더라고요.
1층 밖으로 나왔을 땐, 화재 특유의 쾌쾌하게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그 학생 때문에
빠르게 밖으로 나오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사람들은 순식간에 화생방 훈련하듯이 1층으로
모여들었어요.
곧바로 소방차가 오고, 경찰차 오고 순간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더군요.
불은 601호 밖으로 보이는 거실 베란다에서 불꽃이 커튼에 옮겨 붙어서 활활 타고 있었어요.
커튼에 옮겨 붙은 불꽃이 활활 타오를 때쯤 되어서
소방차가 도착했고, 다행히 얼마 지내지 않아서 불길이 잡혔습니다. 소방차의 빠른 출동으로 빠르게 진화가 되었어요.
불은 몇 분 안에 꺼졌지만, 다들
"그만하길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집 집안으로
소방차가 쏟아부은 물의 양을 모두 함께 보고 있었기에, 뒷일이 걱정이 돼서 그런지
"살림살이 다 젖었을 텐데..."
"거실에 물 폭탄일 텐데..."
다들 자기 일처럼 함께 걱정하고 있더라고요.
소방관 아저씨들은 작은 불이라도 직업 정신에서 나오는 책임감이어서 그런지 사정없이 물폭탄
난사를 하더라고요. 그분들이 하시는 위험한 일을 가까이에서 처음 보았어요.
~~~~~~
불이 난 원인은 601호 중학생 아빠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 들어왔다고 해요.
거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는 그 담뱃불이
커튼으로 옮겨 붙은 사건이었어요.
그다음 날~ 아침이었어요.
현관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소리쳤던
그 학생이
"우리 아빠 용서해 주세요~"
장문의 편지를 자필로 써서 집집마다
현관에 붙여두었더군요.
그날은 그 학생의 현명함과 책임감으로 빠르게
대피할 수 있었고 충분히 칭찬해주고 싶고,
학생의 기특한 마음과 글 속에서 이미 그 댁의 진심이
따뜻하게 전해지더라고요.
요즘 자주 하는 습관 중에서 다리 운동에
보탬이 좀 될까 싶어서 아침저녁으로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말끔하게 양복 입은 분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자주 이용
하더라고요. 아마도 그 중학생 아빠는
'한밤 중 소동' 때문일까요.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후로도
한동안 계단을 이용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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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힘겨운 일이
어느 날 불현듯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우린
함께 어우러져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이런 일 저런 일이 때론, 주변에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삶을 살아가기에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아파트 주민 모두가
아닌 밤중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날 한밤 중 소동은 그만큼이라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