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이의 흔적

엄마기일이 다가온다

by 현월안



엄마 기일이 다가오면

종가마당 끝,

장독대에서 바람이 분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당신이 평생 머물렀던 부엌,
아직도

그 언저리에 엄마내음이 난다


종갓집 종부라는 무게,

그 이름 아래

당신은 평생을

어둠보다 먼저 일어나셨다

고단함과 그 극한 반복들,


세상은 종가의 법도를 말하지만

예법 아래 눌려

얼마나 무거운 시간이었을까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된다

삶이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말없이 감내해야 하는지를,

끝까지, 책임이라는

묵묵한 땀방울의 가치를,


당신은 그 어떤 사람보다

깊이 있게 살아냈다

이름 없는 일상 속에서

말 없는 선택을 반복하며

고통을 사랑으로 바꿔냈다


정 많고 인심 좋은 종부 심성덕에

늘 북적이던 사람들, 사대봉제사,

그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희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성처럼 쌓아 올린 종가의 법도를,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책임 같은 도리,


종가 곳곳에

당신이 남긴 흔적이 남아있다

따뜻함으로 세상을 물들였던 맘길,

때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손길,

묵묵히 중심을 잡았던 희생,


오늘은 고급스러운 그 따뜻함이

내 등 뒤에 닿는 듯하다

그땐, 못다 헤아린 것들이 이제야

무겁게,

부스럭거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