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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입추, 가을이다

가을이 오고 있다

by 현월안



입추는 참으로 묘한 절기다. 달력 위로는 가을의 소식을 알리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는 여전히 한여름의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아직 땀방울은 마르지 않고, 매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울어대지만, 마음은 이미 바람이 선선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가을의 기분을 앞당겨 꺼내놓는다.



자연은 늘 천천히 바뀌지만, 마음속에서는 성급하게 계절을 맞이한다. 더위가 한창인 날에도 입추라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 기진맥진하던 여름이 한순간 작별을 고하는 듯 느껴지고, 아직은 남아 있는 푸른 잎새들 너머로 곧 붉어질 단풍의 기운을 미리 보는 것이다. 현실보다 먼저 마음으로 계절을 살아내며, 시간을 감각적으로 앞당겨 체험한다.



입추는 단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절기가 아니라, 그리움과 추억이 다시 깨어나는 문턱이기도 하다. 친구와 함께 걷던 길 위에서, 새로운 매미 소리에 옛날 웃음을 겹쳐 듣고, 호수의 잔잔한 물결 속에서 멀리 있는 친구의 모습을 겹쳐 본다. 계절의 변화가 단순히 날씨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의 결을 터치하는 순간이다.



계절을 감각하는 것은 그리움과 맞닿아 있다. 봄이면 흩날리는 꽃잎에 지난 사랑이 겹쳐지고, 여름이면 무더위 속에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 한 장, 차가워지는 바람 한 줄기에도 자연스레 지나간 얼굴들을 떠올린다. 입추는 감성을 꺼내기에 좋은 시작점이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강한데도, 마음이 먼저 그리움을 꺼내어 앉히는 날이다.



시간은 흐른다. 계절은 바뀐다.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다. 계절 속에서 삶을 투영하고, 시간 속에서 관계를 기억한다. 입추가 오면 지나간 시간을, 지나간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움은 기억이 아니라 위안이 된다. 나를 기억하고 있겠지라는 마음은 외로움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계절의 변화는 더욱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어느새 입추다. 여전히 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가을을 살고 있는 듯하다. 매미의 울음은 이별의 노래처럼 들리고, 불볕 아래에서도 바람 끝에는 희미한 서늘함이 묻어난다. 계절은 많은 것을 가르친다. 모든 변화는 단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겹겹의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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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나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난 시간을 추억해 본다. 함께 글을 쓰며 웃던 얼굴들, 나란히 걷던 길, 지나간 계절의 따스한 순간들, 그리고 다가올 가을의 길목에서, 삶의 무상함 속에 깃든 깊은 아름다움을 새삼 음미해 본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이며, 시간의 흐름은 다시금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느새 입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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