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시간을 넘어서는 은밀한 문이 있다
가을의 문턱에 서면
책장이 나를 부른다
살랑 불러오는 창가에 앉아
책 한 권을 꺼내든다
종이 위로
잊힌 사유가 겹쳐지고,
희미한 기억 자국은
나를 불러내어 속삭인다
책
그 안에는,
나의 서툴고 치열했던 사유,
생각의 젊음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살아온 인생은 편도행이라서
뒤로 되돌아갈 수 없지만,
책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준다
첫 장,
부드럽게 스며들어 문장을 읽고
다시 마음을 되새길 수 있음을,
책은
시간을 넘어서는 은밀한 문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 가을'은
책과 닮았다
겉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도
속은 깊어지고 더 단단해지는,
낙엽은 책갈피처럼
한 장 한 장 마음을 접어주고,
바람은 읽다 멈춘 문장을
조용히 이어준다
어제보다 생각이 더 젊은 지금,
책을 품고 있다는 것,
책을 펼칠 때마다
내 안의 다른 내가 눈을 뜨고,
지나간 날의 내가 보인다
시간은 흘러도,
글자 위에 남은 내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을은 고급스러운 계절,
내 마음을 품위 있게
책 한 권을 손에 쥘 때,
얼마나 행복한지
책은 나를 잊지 않는다
나의 지난날을 지키고,
나를 위로하고,
기다려 준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서는
나로 다시 살아내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