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왕래가 어려울 때, 시댁에서 모시던 제사를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시아버님 형제분들과 그 아래 딸린 식구들까지 대가족이 하던 제사를이제는 우리 식구만 하는 초간단 제사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서생각보다 빨리 우리집으로 왔고 간편한 제사가 된 셈이다 남편이 맏이라서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별문제 없이 소임을 다 하고 있다 명절에는 이제 부모님을 뵙지 못하니까, 추석이 되기 전에 얼굴도 뵐 겸해서 오늘은 시댁에 가기로 한 날이다 남편은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인다 부모님 만나러 가는 날이라고 기분이 좋아서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이것저것 시댁에 가져갈 선물을 전 날 잘 챙겨 두었는데도, 다시 꼼꼼하게 챙긴다 하긴 며칠 전부터 시댁에 필요한 물건과 고장 나서 고쳐야 할 것들을, 꼼꼼히 체크를 해 놔서 준비해 둔 물건들이 많다 맥가이버처럼 잘 고치고 뿌듯해하는 사람, 기분 좋은 것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남편은 원래 늘 웃는 얼굴이고 웃음 안경을 쓴 것처럼 얼굴에 장착이 되어 있다 그런 사람이 오늘은더 들떠있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게 살아계실때, 태어나고 자란 곳을 자주 찾는다는 것은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다 세상을 살면서 즐겁게 부모님을 만나는 일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고향이 주는 푸근함은 정신을 지탱하는 알 수 없는 힘과, 뿌리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가 맞닿아 있어서고향은 생각만 해도 그냥 좋은 것이다 남편은 고향을 가슴 깊이 새겨둘 만큼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고향 가는 걸 아주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기분 좋은 상태를 그대로, 우리 부부는 서둘러 김천으로 출발을 했다 차창가로 보이는 가로수에서 이미 가을이 오고 있다 하늘이 짙게 푸르고 길게 그림자가 지는 걸 보면 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세월은 참 빠르게 흐른다 보송보송하던 새색시는 맏며느리가 되어서 좌충우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많이도 지났다 무엇이든 세월은 그 자리에 두질 않는다 '눈감았다 떠보니 세월이 변해있다'라고 하는 것처럼 세월 참 빠르다 어느새 우리가 중년을 지나가고 있다니, 지난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시댁에 가는 길은 눈감고도 찾아가는 익숙한 길, 군데군데 이정표와 가로수까지 새록새록 기억이 날 만큼 많이도 다녔던 길이다어느 날 갑자기 생긴 낯선 시댁 사람들과, 인생의 진한 애환과 감동을 가슴에 알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심각하게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유치하던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짙은 고뇌에빠져 무거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좀 더 젊고 한참 생기 있을 때, 그 걸 자존심인양 놓치지 않으려고,내 입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팽팽하게 긴장했던 순간들,지금 생각하면 먼지만큼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지금 웃음 지으며 행복하게 회상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는 서로에게 충분한 믿음과 신뢰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인생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생겨난 작은 조각일 뿐이다 웃음으로 얘기할 수 있는 그것마저도 소중한, 순간들이라고추억할 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 모나지 않게 잘 다독이며 지나온 시간들이 감사할 뿐이다
늘 그랬듯이 대문 앞에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않아서 두 분이기다리고 계셨다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가 정감 있게 들려온다
'어서 온나!'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세상 행복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신다
어머니를 두 손으로꼭 안아드렸다 점점 야위어가는 몸집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왈칵! 눈물이 흘렀다알 수 없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두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부간의 아련한 눈물이었다 손을 스르륵 풀고 다시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꼭! 안아드렸다 따뜻하게 마음 다해서꼭! 안았다 이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정신이 아직 또렸할 때 그 표현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건강하시기를 맘속에 깊이 두고되뇌었다 두 분 다 뵐 때마다 점점 달라져가는 모습에서 '많이 변하고 있구나! 어느 날 위기가 올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내셨어요? 아픈 데는 없으세요?'
남편이 물으며 두 분의 몸을 만지며, 아픈 데는 없으신지 몸을 이리저리 올렸다 내렸다 체크를 한다 어머니는 다리를 훌떡 걷어 올리며
'난 다리 이제 괘안타!'라며 해맑은 웃으셨다 몇 년 전 서울에서 다리 수술을 하셨는데 결과가 좋아서 나도 덩달아 다행이다 싶었다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참을 웃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 담긴 이 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다 남편은 시댁에 가면 바쁘다 고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땀을 뻘뻘 흘리며 3층 집을 전부 수리한다 나는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털어내고 묵은 이불을 꺼내서 세탁기 돌리고 빨래를 널고, 늘 하던 것처럼 함께 힘을 보탠다
저녁을 먹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 우리 부부는 차 한잔을 들고 3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댁에 가면 그곳에서 보이는 석양 가을빛이 참 예뻤다 시댁의 그 옥상의 운치를 참 좋아했는데, 그곳에서만 느끼는 김천 특유의 향기가 있었는데, 기분 탓일까 이제는 예전에 느끼던 것은 뒤로하고, 왠지 모를 외로움이 진하게 묻어있다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기운이 잔뜩 묻어 있어서 그럴까 아니면 기분 때문일까 뭔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흐릿한 기분이다 그렇게 예뻤던 옥상 석양빛마저도 쓸쓸해 보였다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외로움이 잔뜩 묻어있는 노년의 쓸쓸함이 여기저기에 가득했다 아버님은 한 때 고위직 공무원으로 김천에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야말로 힘이 다 빠진 외로운 시간들만 뼈마디 사이로 들락거린다그래도 다행인것은 두분이 사이가 아주 좋다는 것, 그래서 그리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남편은 차에 타는 순간까지 눈에 거슬리는 것을, 하나라도 더 손 보려고 온 마음을 다했다 진한 사랑이 밑으로 흐르고 그 걸 다시 받아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남편의 눈빛에서 사랑으로그 짙은 외로움을 덮고 있음이조금은 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