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을에 취하다

깊게 드리우는 청량한 빛, 가을 예찬

by 현월안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과하지 않고 넘치지 않게 익어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빛깔이라서 아름답다 나뭇잎이 붉게 물들어 화려하게 펼쳐내고 아름다운 노을빛이 곁들이면 그림자가 드리워져 고급스러운 풍경이 된다 떨어지는 빛바랜 나무들 사이로 옆광으로 빛을 비추고 단풍이 하나둘씩 물든 나무들 사이로 길게 떨어지는 그림자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롱한 빛깔이다 잔잔하게 퍼지는 석양이 흩날리어 어우러지면 여운을 주는 색이라서 가을이 더 아름답다 그 깊은 가을색이 쏟아져 나오면 고급진 색이 가슴속에 물들인다


자연이 결실을 맺고 절정에서 홀연히 떠나가는 아쉬움이 남는 계절, 가만히 남겨두고 떠나가는 것처럼, 소설의 아쉬운 결말을 보는 것 같아서 아련한 계절이다 가을바람 한 자락이 휘감고 옷깃 속으로 파고들면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그 진한 가을 향기가 들어온다 그 가을이 빚어내는 겹겹의 어우러진 고운 빛깔들을 품고서 말이다 그리움이 물든 것처럼 단풍잎이 주는 색채는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여인처럼 다양하고 귀한 아름다운 색채가 들어있다

아름드리 나뭇가지에서 생을 다하고 우수수 떨어지고는 홀연히 떠나가는 모습에서 찬란하면서, 우아하게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을 보여준다


겹쳐고 쌓이고 쌓여서 생긴 이중 비침이 잘 어울려서 가을 색채는 운치가 있고 깊은 그리움이 묻어서 애틋하게 간직한 것처럼 아련한 빛깔이다 가을 색채는 그 깊은 색에 빠지면 헤어나 올 수 없을 만큼 깊은 우수에 젖어 있는 색이다 때론 가을 새벽에 코끝이 쨍할 만큼 차갑고 투명한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그 맛은 가을에게만 표현되는 색감인 것이다 모두가 빛이 길게 드리우는 가을의 운치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림과 사진으로 아련하게 품고는 그 귀한 모습을 담아둔다 누군가는 깊숙한 곳에 남겨둔 애틋한 그리움을 잊지 못해 가을의 쓸쓸함에 함께 묻어가기도 하고, 깊은 외로움에 젖기도 한다


가을은 생각을 깊이 묻어둔 걸 다시 꺼내 사유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사람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외로움과 가을이 주는 운치와 감성이 제대로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가을을 탄다'라고 하는 밑바탕에 흐르는 나의 숨겨둔 감성을 만나게 된다 내면에 깊숙이 간직한 외로움과 홀연히 떨어지는 가을빛과 가을의 오색 낙엽이 날리고, 바람이 한 자락 휘감으면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인 상처로 만들어진 외로움이 가을바람과 동하면 그냥 두질 않고 사정없이 녹아들어 사색하게 된다

가을은 가장 화려하게 물들이고 홀연히 사라지는 가을은 생각을 주는 계절이다


글을 쓰는 작가들과 매년 동인지를 만들어서 연말이면 책으로 엮어낸다 스무 명 여성 작가들로만 구성된 사람들은 친구보다도 더한 가족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한 달에 두 번 만나서 좋은 책을 선정해서 토론을 하고 책 속에 푹 빠져 함께 생각을 나누고, 각자 을 나누기도 하고, 소중한 시간들이 그 속에 무수히 녹아있다 세월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들, 가장 기본적인 감성과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민낯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린 참 많은 세월을 '삶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고민했다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과 매년 가을이면 문학기행을 떠난다 매년 다가오는 가을이지만 가을을 깊숙이 만나러 가는 것이다 좀 더 젊을 때는 멀리 떠나 하루 숙박을 하고 사유의 끝을 잡고 생각의 깊이를 찾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른 탓도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하루에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아침 일찍 시작을 하면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어서 하루하는 가을맞이도 괜찮아서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하고 있다


올 해는 서울대공원 숲으로 정하고 글 쓰는 사람들과 가을맞이를 했다 만나면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자연이 있고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편안한 마음이 가득 들어온다 마음속에 뾰족한 감정을 털어내고 릴랙스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가을을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 숲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다들 많은 생각을 가지고 숲 속에서 가을 놀이를 하는 것이다 매년 찾아오는 계절이지만 매번 처음 느끼는 것처럼 새롭다 맘껏 행복하다고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저장이 되지 않기에 가을 한가운데서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이 주는 알 수 없는 신비와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위대함에 모든 내려놓게 된다 대자연 앞에 서면 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가을이 가슴깊이 스며든다 천천히 걷다가 또 걷는다

상처 난 작은 잎사귀에 발길이 멈추고 나도 모르게 끌린다 우리네 인생과도 같은 것이 그곳에도 있음을, 그 어디든 나처럼 삶은 힘껏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생이란 아픔을 간직하는 것임을, 존재 없이 피어있는 작은 풀잎이 가슴 가득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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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차 한잔을 옆에 두고 깊숙이 사유하고 가을이 주는 차분한 사색으로 생각의 끝을 따라가 본다 내 생각을 충분히 다듬을 수 있는 지금, 가을이 주는 시간이다 자연이 주는 가을의 깊은 빛깔은 매년 수 없이 나의 곁을 찾아온다 사라지지 않기에 그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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