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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꽃이 지천에 피었다

가을 들꽃은 작고 가냘프다 하지만 그 속엔 놀라운 생의 의지가

by 현월안




시골길을 걷다 보면 문득 발끝에 닿는 작은 떨림이 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가을꽃들의 인사다. 그 작음은 누구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름표 하나 없이, 오롯이 제 빛깔과 향기로 이 세상을 물들인다. 봄꽃이 화려한 미소로 세상을 유혹한다면, 가을꽃은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 그 수수함과 단정함 속에는 세월의 깊이와 겸손이 들어 있다.



가을 들꽃들은 대체로 작고 가냘프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작은 몸짓 안에 놀라운 생의 의지가 숨어 있다.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쉽게 꺾이지 않는다. 흙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낮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어쩌면 그 작은 가을꽃이 인간에게 건네는 철학일지도 모른다.



들꽃은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 자리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구절초는 흰빛으로 맑고 단아하다. 꽃대 하나에 한 송이만 피워 단정한 품위를 지킨다. 쑥부쟁이는 연보라색 꽃잎으로 여러 송이를 한 줄기에서 피워내며 소소한 다정함을 보여준다. 벌개미취는 보라색으로 조금 더 또렷하다. 그 색깔과 형태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가을이라는 한 계절의 빛깔로 스며든다. 세상은 이름을 붙이느라 분주하지만, 들꽃은 이름보다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귀하다.



긴 연휴에 친정 가족 모두가 고향 마을을 찾았다. 예쁘게 단장해 놓은 고향 마을이 우리 형제자매를 반갑게 맞이한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마을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니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풀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다. 누군가는 그냥 풀꽃이라 부르지만, 그 속엔 오랜 시간 이 땅의 햇살과 바람을 견뎌낸 생의 흔적이 숨어 있다. 꽃잎 하나하나가 세월의 언어요, 삶의 고백이다.



들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사람도 이름 없는 들꽃 같은 존재 아닐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의 발길에 밟히더라도, 자신만의 색으로 한 번 피어나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 아닐까. 들꽃들은 말없이 일러준다. 가치는 내 안에서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완성된다고.



가을은 자연이 건네는 결실의 마지막 인사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덧없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게 만든다. 낙엽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져도, 그 사이사이에서 여전히 피어 있는 들꽃이 있다. 그 작은 생명들이 있어 가을은 쓸쓸하지 않다. 한층 더 따뜻하고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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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꽃들은 작지만, 계절을 완성하는 마지막 빛이다. 가을 어느 한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그 겸손과 아름다움 앞에서 말이다. 가을은 그래서 예쁘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를 빛내주기 때문이다. 산과 들과 바람과 햇살, 그리고 이름 없는 꽃 한 송이까지 모두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가을은, 그 아름다움을 잘 아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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