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의 담담한 책임
시댁 사촌들과 대가족 명절 제사가 이젠 간단히
제사를 시댁에서 가져와서 우리 집에서 지낸 지가 올해가 3년 째다 고향에서 시아버님 형제분들과 그 이하 식구들과 대가족이 지내던 제사였다 코로나로 인해서 왕래가 힘들 때, 장손인 남편이 본인이 맡아서 서울에서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시부모님이 이젠 연로하신 것도 있고 언젠가는 남편이 맡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과 함께 '제사를 간소하게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날은 작정을 하고 거기 모인 모든 가족에게 공표를 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세월에 밀려서 제사가 슬림해지는 때가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사실 명절을 한번 지내려면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서 먹고 치우고 부딪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은 명절 때마다 사람들 속에서 정신없이 바쁜 나의 모습을 보고는 언제나 도와주려고 애썼다 손 많이 가는 제사음식을 만드는 일은 모두가 나의 일이고 그 뒤처리까지 하려면 이틀은 꼬박 힘든 시간이 되었다 아버님이 사촌들까지 모두 제사에 참석하는 걸 좋아하시고, 인정을 듬뿍 내는 성품이셔서 제사 분위기는 매번 화기애애했다 사촌들 자녀들까지 다 모여서 시끌벅쩍하게 참석율 100% 제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님은 설날에는 모인 인원에게 모두 세뱃돈을 그것도 두둑이 주시고는, 두 눈을 마주 보고 진심으로 사랑을 내려주는 모습에서 감사하는 맘으로 참석을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에게 사랑을 듬뿍 실어준다는 것은 힘이 나는 일이다
아버님의 생각대로 당신의 형제분들과 그 아래 딸린 가족들이 '명절 아니면 만남이 힘들고, 얼굴을 언제 보겠는가'라는 생각을 하시고 당신 뜻대로 강하게 사랑으로 이어가셨다 사촌 시동생, 사촌동서들과 오랜 세월 정이 들어서, 쌩긋 웃는 얼굴로 만나면 그 정이라는 것이 달콤해서, 사실 기다려지고 보고 싶고 만나면 반갑다 아버님이 오랫동안 지켜오신 것은 당신 '동생들이 있고 조카들이 있고 아들 며느리가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아버님은 맏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혈육으로 나눈 가족이 함께 모여서 서로의 정을 나누는 모습은, 할 수만 있다면 여건이 된다면 가족이 웃으며 만날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시댁 명절 제사에는 우리만의 즐겨 먹는 음식이 있었다 돼지고기 사태를 어마어마하게 큰 솥에 한가득 삶아서 묵은 김장김치랑 제철에 나는 야채 겉절이와 수육 파티를 했다 많은 인원들에게 그나마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고 맛도 있으면서 푸짐하게 나눠 먹을 수 있고, 아버님이 고집하는 메뉴이기도 했다 사람이 많을 때 손쉽게 나눠먹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아버님은 배고픔이 아는 시절에 사셨기에 동생들이 배불리 먹는 것이 당신이 배부른 것이고 그 모습을 흐뭇해하셨고 그것은 '맏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식구들과 푸짐하게 나눠 먹으며 형제간의 얼굴도 보고 소식을 묻고 두루두루 정을 나누는 것을 몸소 긴 세월 고집한 것은 '책임'이 아닐까 싶다
아버님의 강력한 의지 뒤에는 맏며느리인 내가 주관해서 해야 할 일들이었다 명절이면 시댁에서 사나흘 머물러야 했던 것과 명절이 다가오면 잔잔하게 밀려오는 알 수 없는 부담이 있었다 맏이라는 그 책임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누가 부담을 준 것도 아닌 그냥 밀려오는 부담이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명절을 잘 지내고 나면 너무 개운하고 상쾌한 기분까지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엄청난 군사를 이끌고 잘 싸우고 돌아온 기분이랄까 그 카타르시스는 말로 표현이 되질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 힘든 책임을 다했다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마치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 드는 뿌듯함이 있어서 그 기쁨이 오래간다 무엇보다 제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눠먹는 자리에서 매번 아버님이 수저를 들기 전에 맏며느리의 칭찬을 여러 사람 앞에서 제대로 하셨다
'제사음식이 손이 많이 가는데 우리 며느리 수고했다
여기저기서 형수님 수고하셨어요'라는 소리들...
나는 그 칭찬에 날개를 달고 기쁘게 웃으며 따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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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맏이의 책임을 사랑으로 이어오셨듯이 앞으로도 맏며느리인 내게 주신 소임을 묵묵히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젠 북적이는 사람도 없고 우리 가족만 지내는 초간단 제사가 되었다 제사 때만 되면 다가오던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다 내식대로 우리 아이들이 잘 먹는 걸 해서 제사상에 올린다 우리 가족은 성당에 다니고 있고, 훗날에는 더 간단해질 것이다
흔히 얘기하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 많은 가족이 해맑은 웃음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집안이 떠나갈 듯, 북 쩍 거리던 일들도 이제는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지나고 보았더니 '아버님의 맏이 역할'은 꽉! 차고도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