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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by 현월안




시월의 하늘은 언제나 고요하고도 단단하다. 높고 푸르며, 그 투명한 빛은 마치 세상의 어느 것보다 맑고 또 맑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서늘하지만 그리 차갑지 않은 알싸한 감촉이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을 입는다. 노랗게, 붉게, 그리고 마지막 남은 초록의 잔향까지 품고, 한껏 물들인다. 그 모습은 인생의 황혼처럼, 빛날 순간을 알고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는 듯하다. 가을은 고요하고 또 분명하게 세상을 물들인다.


시월의 끝자락에 서면, 문득 들려오는 노래가 있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온다. 그것은 시간의 문을 여는 주문이고, 기억을 깨우는 시간의 부름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 한 소절이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잊었던 사랑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지나온 세월을 조용히 되짚는다. 사람마다 그 노래의 의미는 다르지만, 닿는 곳은 같다. 한 시대의 끝자락, 새로운 계절로 건너가는 문 앞에서 모두가 잠시 멈춰 선다.



가을은 본래 쉼의 계절이다. 숨을 고르고, 자신을 돌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배우는 계절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가을이 점점 짧아진다. 여름은 지나치게 오래 머물고, 겨울은 또 급하게 찾아온다. 그 사이의 가을은 들꽃처럼 짧게 피었다가, 어느새 사라진다. 세상은 바쁘게 흘러가고, 가을의 숨결을 느낄 여유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가을이 짧아지더라도 여전히 가을빛은 그 순간 화려하고 짙다. 그것이 가을이 주는 깊은 철학이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장면처럼, 끝이 다가올수록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림으로써 뿌리를 지키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며 자신의 끝을 완성한다. 사람 또한 그렇게 자신을 비워냄으로써 진짜 여유를 배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마음의 온도다. 가을을 맞이하는 온도. 기후가 바뀌고 계절의 길이가 달라져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면 여전히 가을은 내 안에 머문다.



가을의 색은 삶의 깊이를 말한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속에는 떠나는 두려움보다, 자연이 스스로를 순환시키는 지혜가 담겨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시절이 저물 때마다 조금씩 비워지고, 또 다른 나로 태어난다. 그것이 인생의 순환이고 성숙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랗고 맑은 그 하늘 아래에 한 해의 시간들이 고요히 쌓여 있다. 봄의 설렘, 여름의 열정 그리고 가을의 사색이 겹겹이 내려앉는다. 모든 계절의 흔적이 나를 만든 것이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 익은 마음은 남는다. 세월이 내 시간을 가져가는 대신, 사유의 깊이를 선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내년의 시월은 더 따뜻할지도 모른다. 혹은 더 짧고 더 바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을을 바라보는 마음의 깊이다.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무의 색을 느끼고, 한 노래에 마음을 울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을은 충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의 모습도 도시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움이라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음악이 되고 빛이 되고, 또 누군가의 미소가 된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 주는 여운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것은 끝의 슬픔이 아니라, 기억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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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날, 가만히 창문을 연다. 바람이 스치고, 낙엽이 흩날린다. 가을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곧 사라지기에 더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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