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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2026 수능 필적 확인 문장 '안규례 시인', '아침 산책'

by 현월안




수능 날, 무엇보다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이 있다. 시험의 난이도가 아닌, 나는 조용히 올해의 필적 확인 문구를 찾아본다. 2006년부터 대리 시험 또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된 본인 필적 확인을 위하여 거치게 되는 과정이다. 작은 문장 한 줄에 담긴 메시지와 어느 작가의 숨결이 담긴 문구일까 하고 설렘으로 기다려진다 그것을 마주할 수험생들의 떨리는 마음을 떠올리며 잠시 시선이 멈춘다. 언어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생명이고, 그 생명이 한 해의 시작과 끝을 건너며 또 한 세대의 청춘에게 건네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경건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올해의 문구는 안규례 시인의 '아침 산책'에서 가져온 한 구절이었다.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처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 한편이 조용히 푸르게 흔들렸다. 새벽의 공기처럼 맑고, 첫 햇살처럼 따스했다. 이슬이 방울져 맺힌 잔디 위를 걷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생의 감촉, 그것이 문장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수험생 누군가는 이 문장을 시험장에 들어서며 아무렇지 않게 적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한 줄은 수많은 눈빛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피어났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긴장된 손끝의 떨림을 잠시 진정시켜 주는 문장으로, 어떤 이에게는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라는 작은 격려의 속삭임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문장이 아닌, 평생 잊히지 않을 그날의 시작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 문장을 되뇌며, 젊음이란 무엇일까. 젊음이라 부르는 시간은 언제나 불안과 가능성이 뒤섞인 풍경이다. 두려움이 살짝 들어 있고, 희망은 그 틈새로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젊음의 물결이 톡톡 튄다는 표현은, 어쩌면 바로 그 흔들림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완벽하지 않기에, 아직 미숙하기에, 그만큼 더 생생하게 빛나는 존재. 초록빛은 완성된 색이 아니라, 성장의 색이다. 그 색이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서는 순간, 그것을 젊음이라 부른다.



수능은 누군가의 인생을 가르는 경계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생의 첫 문을 여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수능날의 새벽, 수많은 수험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마지막 필기구를 준비하고,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들 머리 위로 어김없이 떠오르는 겨울 햇살 속에서 세상은 그 자체로 맑고 투명하다. 그러므로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이라는 문장은 세상 모든 시작의 찬가로 들린다.



글을 쓰다 보면 자주 깨닫게 된다. 어느 한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의 온도다. 그 온도는 문장 속 단어의 은유이고 그 문장을 읽는 사람의 마음과, 그리고 그 마음을 떠올리며 적는 사람의 온기에서 나온다. 수능의 필적 확인 문구가 매년 다른 문장을 품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시험은 정답을 찾는 자리이지만, 그 문장은 정답이 아닌 삶의 방향을 은근히 일러준다.



지난해의 문구는 곽의영 시인의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였다. 그 문장은 마치 날개처럼, 세상 밖으로 나아가라며 등을 밀어주었다. 반면 올해의 문장은 조금 다르다.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그것은 날아오르기 전의 순간, 막 피어오르는 내면의 생기를 노래한다. 이 문장은 앞으로의 성공이나 결과보다,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숨 쉬는 희망을 응원한다. 그래서인지 더욱 철학적으로 다가온다.



삶은 어쩜 매일 새롭게 적어 내려가는 나의 필적 확인 문구가 아닐까. 누구도 대신 써 줄 수 없고, 그 글씨를 통해서만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한다.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고 그 마음을 담아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인생의 기본이고 서명이다.



올해 시험을 본 수험생은 답안지 위에 떨리는 손으로 그 문장을 적었을 것이다. "초록 물결이 톡톡 튀는 젊음처럼" 그 글씨가 조금 비뚤어졌더라도 괜찮다. 한 사람이 자신의 첫 세상을 향해 내디딘 발자국이다. 젊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세상 속으로 스며드는 초록빛 떨림으로.



수능이 끝난 뒤 그들은 흰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다시금 이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날의 긴장과 설렘, 그리고 희미한 미소 속에서 그들이 남긴 것은 자신의 손끝으로 적어 내려간 삶의 문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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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이맘때, 또 다른 문장이 세상 앞에 놓일 때, 다시 그 한 줄을 기다릴 것이다.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고, 젊음의 초록 물결이 다시 한번 세상을 깨우는 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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