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알게 되는 철학

걷으면 내 안이 고요해진다

by 현월안




요즘 유난히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출근길 지하철 한 정거장을 남겨 두고 일부러 내려 걷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저녁의 골목을 천천히 걷는 사람, 주말이면 둘레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걷기는 운동의 기본적인 움직임이고, 가장 인간적인 운동이다.



걷기는 목적에 따라 다르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걸으며 사유의 리듬을 지켰고, 먼저 깨달음을 얻은 성인들은 진리를 향한 길 위에서 몸을 낮추며 깨달음을 구했다. 또 어떤 이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발바닥의 통증과 함께 자신의 본질을 되새겼다. 걷는다는 것은 생각하고 비우고 다짐하는 삶의 물음이 아닐까 싶다.



올해 한국인의 하루 평균 걸음 수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는 것을 보도를 통해 보았다. 한국인 하루 평균 9969보. 생각보다 많은 수치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누구나 바쁘고 또 무언가를 따라잡기 위해 걷는다. 만보 걷기라는 목표는 건강을 위한 숫자이면서 또 성취해야 할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만보 걷기는 세상을 살아내는 삶에서 또 가벼운 운동에서 출발한다. 조금 더 걷으면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덜 살찐다는 소박한 믿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걷기는 칼로리 소모를 너머 삶의 의미가 된다. 곳곳에 만들어진 둘레길과 동네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둘레길은 가장자리를 따라 자연과 시간을 잇고, 옛길과 둘레길, 올레길, 이순신 백의종군길, 퇴계 이황 귀향길 단종 유배길은 걷는 사람을 역사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걸음은 걸을수록 숨이 가빠지고 생각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복잡하던 고민은 발걸음에 맞춰 잘게 쪼개지고, 풀리지 않던 감정은 땀과 함께 흘러내린다. 걷다 보면 알게 된다. 건강은 매일 조금씩 나를 돌보려는 의지라는 것을. 걷는 걸음이 다음의 나를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즘은 걸으면 돈이 쌓인다. 캐시워크 앱 속 숫자는 발걸음을 재테크와 연결한다. 웃지 못할 장면 같지만, 어쩌면 그것도 시대의 지혜다. 건강과 생활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걷기의 진짜 가치는 보상이 아니다. 걷는 동안 얻는 것은 동전 몇 개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걷다 보면 몸의 소리를 듣게 된다. 무릎이 보내는 신호와 발목의 미세한 불편함까지 그리고 호흡의 깊이까지 알게 된다. 아플 때서야 건강을 생각하지만, 걷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알아차린다.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지금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로 다가온다. 그것이 걷기가 주는 큰 선물이다.



걷기의 철학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무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남보다 많이 걷는 것보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 걷기는 자연과 함께 또 동네 주변에서 나의 시간과 함께 걷는 일이다.



어쩌면 모두 저마다의 순례길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목적지는 다르지만,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다는 것에서는 같다. 빠른 답을 원할수록 길은 꼬이지만, 천천히 걸으며 나의 시간과 만나면 생각은 고요하고 깊어진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단숨에 완성되지 않고, 매일 주어지는 한 걸음 속에서 조금씩 다져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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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걷는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큰 결심이 없어도 삶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삶이 차분하고 고요하려면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내 속도대로 걸어야 한다. 그 느린 걸음이 삶을 좀 더 멀리 데려다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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