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아마 불안해서, 였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것인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생활을 꾸려왔다. 7개월 동안 운동을 하면서 맨몸 운동을 1시간이나 지속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을 키워보았고,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타학교 학점교류도 해보고, 영어와 한국어 자격증 공부도 하고, 여름엔 혼자 1주일 여행도 다녀왔다. 이 정도는 사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평범한 생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스스로 뿌듯해 할 수 있는 건 이것들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매주 계획을 짜고, 하루하루 성실히 수행해가면서 내가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게 참 좋았다. 내가 무슨 위인이라도 된 마냥 내 업적을 널리 알리겠다고 쓰는 것은 아니고, 그런 성실한 생활이 요 근래 많이 무너졌었고, 다시 회복되어가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면 심리적 피로감에 짓눌려 있었다. 바빠지다 보니 타인과의 교류 빈도도 점점 줄어들고, 오롯이 혼자서 생활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신체적 체력이 충분히 소모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 태어날 때부터 국가원수로서의 자격 따위 없었던 한 사람의 행적들이 낱낱이 밝혀지며 각종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매일같이 들려오자, 나는 더 이상 뭔가를 받아들여 감내할 여력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부정부패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순위권에 든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겨우 '부정부패'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이지 않은가. 쌍욕도 할 수 없었다. 무슨 욕을 해도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전혀 내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지금도 마음속에 큰 희망은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약자끼리 서로 위로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을 뿐이다. 길게 쓰고 싶지도 않다.
무튼 이런 실망감, 혐오감, 피로감, 좌절감 등등이 한데 뒤섞여 내 마음속에서 거대한 무력감을 만들어냈다. 아등바등 살아서 뭐하지? 내가 생각하는 정의라는 게 사실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아. 이렇게 글로 쓰기만 해도 힘 빠지는 생각들이 5분, 10분에 한 번씩 들었으니 대체 뭘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든 나 자신을 이끌어내 보려고 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전처럼 해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더 마음이 안 좋아질 뿐이었다. 그러다 이번 주말,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컴퓨터 게임이 하고 싶어 졌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 말고, 컴퓨터로 제대로 몇 시간씩 말이다. 어렸을 적엔 게임을 상당히 좋아라 했었지만 최근엔 그렇게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게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족히 10년은 된 데스크톱에 힘들게 문명 5를 깔고, 소원대로 몇 시간 동안 앉아 내리 게임만 했다. 하루 삼시세끼 꼭 챙겨 먹는 내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했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게임을 하다가는 또 계획을 지키지 못할 것이고,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테니 또 죄책감에 시달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이 내게는 길티 플레져였던 건지, 컴퓨터를 종료시키고 일어나는 순간 내 깊은 곳의 케케묵은 감정들이 반짝하고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여행 중에 크고 무거운 짐 하나를 어딘가에 맡겨버린 것처럼 상쾌하고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매일 게임을 하고 싶어!라고 할 만큼 게임 자체가 좋았던 것은 아니고, 아마 내심 가지고 있던 어떤 금기가 풀렸다는 기쁨이 컸던 것이겠지. 그래도 뭐, 가끔은, 아니 자주라도 괜찮을 것 같아- 현생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라면.
어떤 큰 덩어리를 한 번이라도 덜어내고 나자, 내게 좋았던 것들이 다시 좋게 느껴지고, 나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도 저항해 볼 기운이 생겼다. 아직 완벽한 회복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다시 한번 힘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 주저앉고 싶게 만드는 날들이 앞으로도 자주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꿋꿋이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써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냥 주저앉아 게임을 하든 맥주를 까든 TV를 보든 해보자. 우아하거나 멋진 방식이 아니면 뭐 어떤가. 의외로 나 자신이 바라던 건 별거 아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