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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Sep 22. 2021

친정엄마를 감동시킨 시어머니의 한마디

추석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1. 친정엄마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시어머니의 전화


추석 명절이다. 이번 추석에는 친정에 방문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다음 달에 있을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시느라 바짝 긴장하고 계신 터라 시험이 끝난 11월 중에 방문하기로 했다. 꽉 막힌 귀경길을 겪지 않아도 되니 몸은 편하긴 했지만 쓸쓸해하실 친정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괜히 엄마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건다.


"엄마, 나야. 추석인데 내가 안 가서 쓸쓸하겠네."

"아냐, 집이 조용하고 편안해. 명절 음식 안 해도 되고 속편 하다야. 지금 겨울옷 내놓고 청소하고 있었어."

"가게 하면서 쉬는 날도 없으면서 오늘까지도 집안일해야 해? 좀 쉬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

"아냐, 이건 일도 아냐. 그리고 곧 추워질 테니 언젠가는 해야 하고..."


엄마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명절 준비를 하느라 한 번도 평안한 연휴를 보낸 적이 없었다. 저녁 8 시시에 허겁지겁 가게문을 닫고 밤 9시부터 밤새 명절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매번 몸살을 앓아야만 했었다. 그런데 엄마의 그 부지런한 성격은 어딜가지 않는가 보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에도 엄마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아 참, 어제 사돈어른하고 통화했어."

"아, 그랬구나. 시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

"아니, 근데 너. 엄마 장사한다고 시어머니께 말씀 안 드렸었어?"

"며칠 전에 말씀드렸지. 이번 추석에 친정에 안 가냐고 물어보시길래, 아버지께서는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시고 엄마도 가게 하시느라 바빠서 다음에 갈 거라고 하니까, 엄마 장사하셨냐고. 몰랐었다고 눈이 동그래지시더라. 근데 대부분 상견례할 때 그 정도는 서로 다 얘기하지 않아? 난 당연히 알고 계신 줄 알았지."

"상견례 때 그런 얘기는 안 물어보셨었지. 그냥 자식들 키운 애기만 했던 것 같아."



결혼한 지 한참 지났건만 시어머니는 우리 엄마가 장사를 하고 계신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계셨다. 시어머니는 우리 엄마가 전업주부겠거니 생각했단다.


"그러는 너는 그럼 시어머니를 만나면 무슨 얘길 하는데?"

"시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서 꽃 사진, 여행 사진 보면서 하하호호했지... 친정부모님 건강하시냐고 잘 지내시냐고 물으시면, 잘 지낸다고 말씀드렸는데? "



  우리 시어머니는 우리 부부가 방문할 때마다 그저 등산하다가 찍은 꽃 사진이나 조카들 사진을 보여주시며 편히 쉬다 가라고 하셨다. 내가 주방에 기웃기웃 거려도 주방이 좁아서 한 명밖에 못 들어간다는 핑계를 대시며 거실로 내쫓으시고 부엌에서 손수 과일을 깎아 내어 주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 친정에 빈손으로 가지 말고 맛있는 과일을 사가라고 몰래 봉투를 쥐어주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의 직업이나 친정집 재산에 대해 물어보신 적이 없었다. 항상 배려가 깊으신 분이다.



"사돈어른께서... 장사하시느라 힘드시겠다고 하시더라고. 애들 다 잘 키웠고 제 밥벌이 하는데 이제 걱정 말고 그만둬도 된다고 하시더라. 건강할 때 그만두고 이제 남편이랑 손 붙잡고 놀러 다니래.... 나보고 그만해도 된다고 하시더라... 건강할 때 말이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울먹울먹 떨리고 코끝이 찡하게 들렸다. 가족들은 엄마에게 '쉬어가며 일하라고' 얘기하기만 했었지 '그만두고 푹 쉬어도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건강할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라는 말만 들었지 '건강할 때 그만두고 남편과 손 붙잡고 놀러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의 고된 삶을 인정해주고 위로해준 건 시어머니의 저 한마디였다.


"맞아, 엄마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어. 자식들도 잘 키웠어. 이제 그만둬도 돼."


시어머니가 차려놓은 위로의 밥상에 나도 허겁지겁 숟가락을 올렸다. 그동안 왜 엄마한테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항상 부지런했으니까. 엄마는 건강하니까. 그러니까 엄마는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냐, 계속 일해야지. 그만두면 뭐할 거야. 아빠도 저 나이에 저렇게 공부하잖아."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 한번 더 중얼거렸다.


"사돈어른께서... 가게 그만하고 남편이랑 손붙잡고 놀러가도 된다고 하시더라... 건강할 때 말이야"   


추석 명절. 친정엄마를 위로한 시어머니의 명절 선물 같은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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