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친구란 무엇일까.
겨울 아침 바람은 차갑다. 그래도 아이들이 오기 전에 얼른 교실 창문을 모두 활짝 활짝 열어둔다. 찬 기운이 교실 안으로 한꺼번에 밀려온다. 난방 버튼을 힘껏 눌러보지만 아직 히터가 나오지 않는다. 찬 기운이 감도는 교실 가운데 나 혼자 덩그러니 서있다. 혼자 바람을 맞고 서 있으려니 너무 춥다. 8시 30분이면 히터가 나올 것이다. 히터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털썩 주저앉는다.
코로나가 퍼진 이후로 처음으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는 것'보다 '안전하게 데리고 있는 것'이 담임교사의 주된 임무가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하는 말의 절반은 "친구와 절대 얘기하지 마세요.", "거리 두기를 지키세요."였다. 오늘은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5명이나 되었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등교하면 안 되는데 이미 등교해 버렸다. 부랴부랴 학부모님들께 전화를 걸어 즉시 하교시켰다.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달라진 학교 생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했다. 쉬는 시간은 없다. 쉬는 시간을 주면 친구들하고 얘기할까 봐 따로 쉬는 시간을 주지 않기로 했다.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하루 종일 매의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다 보니가 정작 내가 화장실 갈 시간이 없더라. 그래도 급한 볼일은 봐야지. 애들에게 학습지를 쥐어주고 총총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부리나케 화장실 칸으로 쏙 들어간다.
밖에서 여학생 두 명이 손을 씻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의 대화라고 하기엔 뭔가... 뭐랄까.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이상한 대화였다. 아니, 요즘 10살짜리 아이들이 나누는 평범한 대화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저 대화에 낀다면 나는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응. 나는 남의 집에 빌려 살아.'라고 했을까. 부자들 틈에 거지가 된 기분이 들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친구와 얘기하지 마세요. 거리를 둬야지."
손을 씻던 여학생들이 얼른 자기 반으로 들어간다. 저 두 아이는 친한 사이일까, 아니면 싫어하는 사이일까? 나름대로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얼른 손을 씻고 우리 반으로 들어간다. 선생님이 없을 때를 틈타 웅성웅성 떠들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그리고 수업을 이어나간다. 수업을 열심히 따라오는 학생도 있고 교과서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학생도 있다. 작년 같았으면 짝과 책을 같이 봤을 텐데 지금은 교과서를 안 가져오면 교과서가 없는 대로 수업에 따라와야 한다.
"책이 없다고 멍하니 있지 말고 노트에 필기하세요."
그러나 노트에 조금 끄적끄적하다가 이내 두 손을 놓아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그래 공부는 해서 뭐하나.
나도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 시절 어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직장을 갖고 돈도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갖고 벼락 거지가 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공부는 내려놓고 먹방을 찍는 유튜버가 된다고 한들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 그래 학교가 해줄 게 없구나.
우리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지 않는 한 벼락 거지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 흐름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겠지. 다만 작은 소망이 있다면 10살짜리 아이들이 집값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일이 없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힘들고 어려울 때, 빈털터리가 된 친구를
아무 말 없이 감싸주는 게 진짜 친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