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bin Chang Aug 20. 2021

고객 페르소나 (Customer Persona)

Ep.12: 고객 페르소나 (Customer Persona)


‘오, 아주 잘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야!!!’


김필립이 오전에 숙제와 함께 장아라에게 보낸 메시지의 답장이, 점심도 지난 2시쯤에야 문득 돌아왔다. 수업이 막 끝나서 교실을 나가려던 김필립은 일어서다 말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하루 만에 집중해서 확 끝내버렸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어. 일단 상식적으로 어느 정도 말은 되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규모나 숫자가 맞는지 더 알아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리고 각 세그먼트 고객의 특성도 알면 좋겠는데…’


이번에는 바로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다행히 보고 있나 보군. 얼른 물어볼 걸 다 물어봐야겠다.


‘오! 자기 평가까지 아주 철저해! 조아조아! 발전하는 김필립 군!’


빠른 답장과 함께 두세 개의 이모티콘이 연달아 날아오고나더니 한동안 메시지가 없었다. 김필립은 일어나서 교실을 나갈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볼까 어정쩡한 느낌으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에이, 그만 가자'라고 생각하고 일어나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자마자 진동이 울렸다. 꽤 긴 메시지였다.


‘규모나 숫자를 추정하려고 이것저것 찾아봤을 것 같은데, 그건 아주 잘했어. 그런데 정확한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은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떻게 추정했는지는 나중에 만나서 들어볼게. 각 세그먼트의 고객 특성을 다 알아보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그런 건 전문 에이전시 쓰지 않으면 힘들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할 일이 하나 있는데, 네가 타겟팅한 세그먼트의 고객을 구체화시켜보는 일이야. 타켓팅한 세그먼트의 전형적이고 표준적인 고객을 한 사람 만들어봐. 나이는 몇 살이고, 직업은 뭐고, 취미는 어떤 거고, 성격은 어떻고 등등을 생각해서 캐릭터를 하나 만드는 거야. 인터넷에 ‘고객 페르소나’라고 검색하면 있을 거야. 그런 비슷한 걸 만들어봐. 그러고나서 그 고객이라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지 다음에 만나서 같이 얘기할 거야. 나 다음 주말에 시간 비니까 너 시간 될때 연락해! 수고!’


아라 누나는 메시지를 나눠서 보내는 법도 모르나… 한 화면을 넘어갈만큼 긴 메시지를 읽다보니 김필립은 머리가 아파왔다. 눈을 다시 크게 뜨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자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결국 ‘고객 페르소나’인지 뭔지를 찾아서 하나 만들라는 거구만?’


김필립은 중얼거리며 교실에서 나와 도서관 라운지로 향했다. 컴퓨터도 쓰면서 이것저것 생각해보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라운지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김필립은 먼저 ‘고객 페르소나’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객 페르소나란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인격체로, 마켓 리서치나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하나의 세그먼트에 속하는 많은 고객들의 중요한 성격, 특성 등을 대표한다… 대단히 철학적이야…’


또다시 알듯 말듯한 이야기에 다른 자료들을 살펴보던 김필립은 고객 페르소나의 예시로 제시된 그림을 찾았다.



‘아하, 이런 거로군!’


알아듣기 어려운 설명대신 그림을 보자 대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왕 하나를 찾은 김에 다른 예시들도 찾아보자, 대부분 연령대, 소득 평균치 등의 세부 데이터가 더 포함되어 있든가 혹은 다른 항목들이 몇 가지 추가되든가 빠져있었을 뿐, 기본적인 틀은 거의 비슷했다.


‘그러니까 큰 회사들은 각각의 세그먼트를 조사해서 평균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이런 걸 만들어낸다는 거로군. 나는 큰 회사가 아니니까 데이터는 없고… 또 여기저기 물어봐야 하나…?’



김필립은 일단 노트를 꺼내 만들어 둔 세그먼트를 보며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좋아. 무난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이 말이지. 일단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일 거고, 약간 부끄럼을 많이 탄다고 해야 되려나…? 나이…? 여자인 것은 확실할 것 같은데… 후, 이거 내가 요가를 해본 적도 없고 그러니까 영 모르겠는데? 이래서 아는 상품을 팔아야 된다는 거였나…?’


세그먼트를 나눠 놓았을 때까지만 해도 ‘모르는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김필립이었지만, 무난파 고객의 구체적인 인물상을 생각하려 하자, 의외로 상당히 기본적인 것조차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요가를 모른다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마이너스가 되나… 김필립은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필 선배 뭐해요? 또 심각한 얼굴 하고.”

“어… 어! 그래, 도원이! 잘됐다!”

“뭐가요? 갑자기 왜 그래요, 무섭게.”

“너 요가한다 그랬잖아. 나도 거기 한번 가보면 안 돼?”

“네?? 선배도 요가 배우게요…?”

“아니, 거기 다니는 사람들을 좀 보고 싶어서…”

“네????? 필 선배 변태예요? 왜 그래요, 사람이? 아아악 징그러!”


갑자기 소리를 지른 서도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다가 키득키득거리며 돌아섰다. 김필립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화가 잔뜩 난 서도원을 붙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페르소난지 뭔지 때문에 조사를 한다 이 말이에요? 그냥 요가하는 거 몰래 훔쳐보려고 조사하는 척 하는거 아니에요?”

“아니, 무슨 요가가 남자 출입 금지도 아니고, 왜 그래!”

“하, 여바여바. 응큼한 마음이 있는 거네. 안 돼요!”

“아니… 도원아, 제발 도와줘. 이거 심각한 거야, 진짜…”

“나랑 같이 가면 나도 볼 거 아니에요! 안돼요. 싫어... 아!”

“아?”

“아는 선배 중에 요가 되게 오래 한 언니 있거든요? 그 언니는 잘하니까 그 언니 따라가면 되겠네.”

“어? 그래? 그래 좋아! 소개 좀 시켜줘. 아… 막 초면에 또 그런 소리 하면 실례이려나…?”

“잠깐만 있어봐요. 사실 그 언니 우리 학교 대학원 다녀서 학교에 있을지도 몰라요. 나도 그 언니가 요가하라고 해서 시작했거든요.”


서도원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살짝살짝 웃으며 메시지를 몇 번 보내던 서도원은 핸드폰에 메시지를 입력하면서 문득 말했다.


“필 선배, 커피 사 줄 거죠? 요 앞에 스타벅스로 가요.”


서도원은 대답도 듣지 않고 핸드폰을 챙겨 일어나더니, 정리 안 하고 뭐하느냐는 눈빛으로 김필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김필립은 멍하게 서도원을 마주보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스타벅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 리나 언니! 여기요!”

“아, 도원아. 은근히 오랜만이다?”


창가 쪽에 앉아있던 서도원이 손을 들더니 일어나서 인사했다. 김필립은 최리나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리나는 흥미롭다는 듯 이야기를 들었고, 서도원도 중간중간에 질문을 하며 거들었다.


“아하, 그래서 요가를 하는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으시다는 거군요?”

“예, 초면에 갑자기 좀 무례한 부탁입니다만…”

“별로 상관없어요. 제가 지금 다니는 곳은 규모도 꽤 크고 다닌지도 오래돼서 강사 님하고도 친하니까 견학신청 해 놓을게요. 저도 꽤 재미있을것 같은데요?”

“너무 감사합니다. 누가 무난한 디자인의 요가복을 찾을까 막상 생각하려니 암담하더라고요. 나이대도 그렇고, 어떤분들이신지도 잘 모르겠고…”

“저도 요가를 꽤 오래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요, 역시 20대 중후반 직장인 분들이 처음 시작하실 때 그런 옷을 많이 입으세요.”

“어, 저기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보통 처음 오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기초 동작만 하시니까 레깅스나 톱브라 같이 붙는 복장은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왜 붙는 옷을 입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요.”

“어? 언니 그거 몸매 자랑하려고 입는 거 아니에요?”

“아하하, 이것 보세요. 도원이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밖에 안 돼서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아, 아, 언니! 아유 정말!”

“역시 그렇게 타이트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군요?”

“물론이죠. 난이도가 점점 올라가서 어려운 동작이 많아지면 정말 땀이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헐렁한 옷을 입고 있으면 땀에 젖어서 말 그대로 처덕처덕 달라붙어요. 엄청 불편하고 신경 쓰이죠.”

“아하, 그렇겠네요. 다른 운동선수들도 보통 찰랑거리는 옷은 안 입죠.”

“맞아요. 그리고 고난도 동작 중에는 거꾸로 서거나 몸을 비틀면서 움직이는 것도 많은데, 옷이 타이트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뒤집히고 팔다리에 걸려서 더 신경 쓰이죠.”

“아하, 그래서…”

“네, 초보자 분들은 아무래도 그렇게 어렵고 힘든 동작은 아직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남사스럽게 딱 달라붙는 옷을 꺼리는 분들이 많은 거죠.”

“역시. 다 이유가 있는 거군요.”

“물론 그런 거 신경 안 쓰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하.”


김필립은 요가학원을 방문하기도 전에 이미 엄청나게 많은 것을 깨닫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면 고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지. 이렇게 직접 고객이 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사업에 장차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런데 아까 20대 중후반 무렵에 요가를 처음 시작한다고 하셨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쎄요. 아무래도 그때쯤부터 몸매 관리를 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가봐요, 하하. 회사 다니는 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오래 앉아있다 보니까 운동량도 부족하고, 배도 나오는 것 같다고 걱정하고. 그래서 그때 많이들 시작하는 것 같아요.”

“대학생들이나 결혼하신 분들은 안 오시나요?”

“대학생들은 와도 많지는 않아요. 아직 놀러 다니느라 정신없죠, 뭐. 도원이도 안 하겠다는 걸 제가 억지로 데리고 온거에요.”

“아! 언니!”

“하하, 그렇군요. 결혼하신 분들은요?”
“결혼하고 서른 중후반쯤 되는 분들 중에 완전 무경험자는 보통 없는것 같아요. 전에 해보셨던 분들이 한동안 쉬다가 다시 하는 느낌이에요.”

“요가복은 몇 개나 갖고 계세요? 얼마나 자주 사시죠?”

“저는 거의 맨날 가다 보니까 꽤 많이 갖고 있어요. 5벌도 넘을걸요? 반 년에 한두 개씩은 사야 되고요.”

“아, 원래 그렇게들 많이 갖고 있고 자주 사시는 건가요?”

“아니요, 하하. 제가 매일 다니다 보니 그런 거죠. 저도 처음에는 두 벌 가지고 한 1년 정도 버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점점 익숙해지고 자주 다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여러 벌 필요하더라고요.”


한동안 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최리나도 자신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즐겁게 대답해주었다. 김필립은 최리나에게 부탁하여 요가강사와의 인터뷰도 잡고, 며칠간 연달아 요가학원도 견학했다. 요가를 하러 오는 손님들에게도 ‘요가복 마케팅 관련 조사를 하는 대학생이다’라고 소개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더니 의외로 매우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며칠이 지나고, 김필립은 그동안 열심히 메모하고 녹음해 두었던 것을 바탕으로 드디어 페르소나를 완성하였다.



‘누나, 숙제 끝!’


메시지를 보낸 김필립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묻어났다. 




고객 페르소나

최근 왜인지 ‘페르소나 마케팅’이라는 말로 유행을 타고 있는 고객 페르소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세그먼트, 타켓팅, 포지셔닝(STP)에 대해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도, 페르소나 마케팅이라고 하면 어디선가 들어봤다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마케팅을 전략적인 관점으로만 평가한다면 페르소나는 사실 전혀 필요가 없는 내용입니다. 페르소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먼저 세그먼트 작업이 필요하고, 페르소나란 각 세그먼트의 평균적인 인구통계학적 정보 및 정성적 정보들을 취합하여 놓은 것이기 때문에, 정보의 내용이나 양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각 세그먼트의 데이터 자체와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즉 ‘20대 후반~30대 중반 여성, 신혼, 직장인, 경기 거주, 자녀 없음’이라는 정보 앞에 사람 이름 하나 붙여놓고 사진을 갖다 붙인다고 하여 전략적으로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대학교의 마케팅 수업에서는 페르소나에 대해 ‘그런 게 있다’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마케터들이 시간과 돈이 남아 돌아서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은 아닐 텐데, 왜 고객 페르소나라는 것을 만드는 것일까요? 사실 고객 페르소나는 다음장에서 이야기될 ‘소비자 행동’과 중요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듯, 마케팅은 데이터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데이터를 모두 얻으려면 한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타겟 세그먼트 고객들이 어떤 사람인지 많은 정보를 취합하여 알아냈다 하더라도, 마케터는 그 사람이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상품을 구매하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럴 때 바로 이 고객 페르소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30대 초반, 남성, 대학교 졸업, 프로그래머, 연수입 5천만 원, 독신'이라는 데이터의 나열만으로는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방식을 가질지 상상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31세 임남열 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대형 IT기업에서 연봉 5천만 원을 받으며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 독신 남성입니다’라고 하면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아까는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런 페르소나 작업은 마케터가 자신의 타겟 고객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실제적인 인격체로 인식하게 만들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또한 세그먼트에서 부족한 정보를 추측한다든지 혹은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는데 유용하게 쓰이기도 하지요. 만약 ‘22살 여대생 김지은 씨가 학교가 끝나고 자주 찾는 장소는 어디일까?’라는 정보가 세그먼트 데이터에 없더라도 그런 사람을 연상하는 것만으로 ‘까페, 서점, 쇼핑몰’ 등의 몇 가지 후보가 즉시 떠오르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혹은 가지고 있는 정보에 그런 장소가 ‘피시방’이라고 쓰여 있다면 조사가 어디선가 잘못됐거나 무언가 왜곡이 있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도 있겠지요. 

마케팅에서 데이터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데이터란 바로 사람, 즉 고객 한 명 한 명의 인격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감정이 있고 생각을 합니다. 페르소나는 마케터에게 당신이 상대하는 것이 단순한 엑셀 속의 숫자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 도구인 것이지요.

이전 11화 게스티메이션 (Guestimatio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