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라에게 방금 들은 이야기를 노트에 정리하며 몇 가지를 적어 넣은 후, 김필립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이제 상품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것 같아. 일단 색상이나 패턴을 몇 개 정도 가져갈지 다른 회사를 참고해서 결정할 것. 한 4~5개 정도일 것 같아. 그리고 그 5개, 윗옷까지 10개로 초보자 라인업을 꾸려야겠어. 그러고 나서 반응에 따라 디자인을 바꾼 초보자 라인업을 하나 더 만들지, 중급자나 숙련자 라인업을 만들지 생각해 볼게.”
“점점 사장님 같은 소리가 나오는걸? 하하.”
“그래? 하하, 다 누나 잘 둬서 그렇지. 고마워.”
“아직 안 끝났어. 고마운 건 나중에 잘 되고 나서 하라고. 자 그럼 다음은 가격?”
장아라는 김필립의 노트를 넘겨서 김필립이 의문점을 적어놓은 페이지에서 가격에 대한 부분을 찾았다.
가격 Price:
가격을 정하는 방법이 있나?
원가 분석을 잘하는 방법은?
“응, 누나. 막상 가격을 어떻게 정하나 싶더라고. 시장조사하면서 생각했듯 가격대가 높으면 초보자용이라는 느낌이 안 들 테니까 중저가 쪽으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원가를 계산하고서 마진을 붙여보려 하니까 판매 기간을 얼마나 잡고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복잡해. 원래 이렇게 복잡한 건지 아님 내가 원가를 계산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건지 그거조차 모르겠더라고.”
“후후후, 김필립 진짜 많이 늘었어. 이제 질문의 퀄리티가 다른걸?”
“그러게, 모르면 질문도 못한다더니 진짜 그런 거 같아.”
“그래. 맞는 말이지. 알아야 질문도 하는 거야. 자 그러면 가격. 먼저, 지금 너는 두 가지의 다른 주제를 섞어서 생각하고 있어. 가격은 가격이고 원가는 원가야. 가격을 결정하는 데 원가는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지, 가격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고. 다시 말하자면 원가가 중요한 요소이긴 해도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야. 가격은 가격 전략에 따라 책정을 하고, 원가는 따로 분석해서 너의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는 포인트를 알아내는 것이 더욱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지. 즉, 너는 ‘가격 전략’과 ‘손익분기점 분석’이 필요한 거야.”
“어어… 누나 좀 빨라. 아직 그렇게까지 똑똑해지진 못했다고.”
“하하하, 알았어. 자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 볼까. 첫날 얘기했던 매출 공식 기억나?”
“어… 그거 간단한 공식 말하는 거지? 매출은 판매 가격 곱하기 판매수량?”
“맞아. 가만히 그 공식을 생각해봐. 거기에는 원가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 원가는 어디에 나오냐 하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이 말씀이야.”
장아라는 태블릿을 꺼내서 방금 김필립이 얘기한 매출 공식을 적고, 그 밑에 계속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출 = 판매 가격 x 판매개수
이익 = 매출 – 비용
“아, 맞아 이익 공식도 있었지! 원가는 비용 안에 들어가는 거겠네.”
“그렇지. 너는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몇 개를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그것에 따라서 가격과 판매전략을 세워야 하는 거야. 그러고 나서 매출을 얼마나 올려야 비용을 넘어서서 이익이 시작될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 참, 간단한 공식인데 희한하게 정리가 딱 되네. 그러니까 다른 공식이니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인 거지?”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매출이 아니라 이익이니까, 결국에는 저 공식을 합치게 되겠지. 그러니까 완전히 따로 노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정확하게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지.”
“음… 알 것 같은 느낌이 드네. 그러니까 매출을 올리는 전략하고 비용을 줄이는 전략은 궁극적으로는 둘 다 이익과 연관되는 이야기지만, 둘을 합쳐놓고 섞어서 생각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거지?”
“정확해. 바로 그 얘기야. 센스가 좋다니깐.”
“그런데 그러면 가격은 대체 어떻게 정해야 되는 건데?”
“그래.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어. 첫 번째가 바로 네가 했던 비용, 즉 원가부터 시작해서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이야. 보통은 완전히 원가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사입하는 가격, 다시 말해 판매할 물건을 사들이는 가격에 마진율을 곱해서 판매가를 결정하지. 이 방식은 보통 슈퍼마켓이나 마트 같은 유통업자나 중간 도매상들이 많이 쓰는 방식이야.”
“어… 그러게?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런데 왜 그렇지? 마진율이 보통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서인가?”
“아니, 그것보다는 유통업자들이 마진율로 다른 경쟁 유통업자들과 경쟁하기 때문인 거지. 네가 이마트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봐. 네가 관심 있는 것은 ‘너와 똑같은 도브 샴푸를 팔고 있는 롯데마트가 그걸 얼마에 팔고 있는가’이지, 도브 샴푸가 케라시스 샴푸보다 얼마나 싼지 비싼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거라고. 심지어 도브 샴푸가 케라시스 샴푸보다 안 팔려도, 옆에 롯데마트는 팔리는데 우리 이마트는 안 팔린다면 문제겠지만 어디서나 전부 안 팔리면 아무런 문제도 아니야. 그거 빼버리고 팔리는 다른 샴푸 갖다 놓고 팔면 되니까. 그런데 문제는 너는 이마트 사장이 아니라 도브 샴푸 사장이라는 거지.”
“소름 돋는 이야긴데, 너무 맞는 소리네… 내 물건이 안팔리면 유통업자는 내 물건은 안 갖다 놓는다 이거지?”
“그렇지. 그리고 너는 망했습니다인 거지. 그런데 네가 그런 유통업자들이랑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아무래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김필립은 갑자기 목이 타는 것이 느껴져서 앞에 있는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장아라가 설명한 바로 그 방식으로 가격을 만들어 보려고 원가는 어떻게 분석할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크게 한숨을 내쉰 김필립은 장아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후… 그럼 다른 방법은 뭔데?”
“두 번째는 고객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방법이야. 가장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고객의 가치라면 우리가 처음에 얘기했던 그 고객의 가치 말하는 거야? 그거 되게 철학적인 얘기 아니었어? 그걸로 가격을 결정한다고?”
“잘 기억하고 있네. 그때 얘기한 그대로 만약 네가 제공하는 고객의 가치, 즉 ‘인식된 이득’이 가격, 즉 ‘인식된 비용’보다 높으면 소비자는 너의 상품을 살 거라고.”
“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거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얘기야?”
“하하,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할 때 쓴 가격 전략이 바로 이 방법이야. 스마트폰 같은 것이 생소하기도 했고, 시장에 경쟁사도 없는 새로운 상품이기도 했지. 과감하게 ‘이 정도 가격을 설정할 테니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면 구매하라’라는 메시지를 고객한테 던진 거야. 사실 지금도 애플은 기존 아이폰을 기준으로 신제품의 가격을 설정하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고객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가격 책정 전략을 계속 쓰고 있다고.”
“아… 듣고 보니 그렇네. 새로 나온 에어팟도 그런 식이었고. 그러면 그런 가격 책정 방식은 아이폰처럼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상품이 아니면 힘들겠구나.”
“아니, 그렇지도 않아. 프리미엄 커피 같은 것을 출시할 때도 자주 쓰는 방법이라고. 네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늘 한 잔에 3천 원짜리 커피를 팔았어. 그런데 잘 아는 바리스타에게 부탁해서 특별하게 고른 원두를 기술적으로 로스팅하고 블렌딩 해서 ‘우와 이거 진짜 맛있네’ 하는 프리미엄 커피를 만들어 냈다고 해봐. 그럼 고객들이 그 프리미엄 커피를 얼마 정도 더 내고 마실 용의가 있을까? 천 원? 이천 원? 진짜 좋은 커피면 두배인 6천 원을 받고도 팔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을 생각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바로 고객의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야.”
“응. 무슨 이야긴지 알겠어. 그래도 이거 난이도가 상당할 것 같은데…?”
“맞아. 옛날에 프리미엄 라면 내놨다가 가격이 너무 높아서 역풍을 얻어맞은 사례도 있지. 가치를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려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적절한 이유들과 좋은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마케팅하는 재미도 있고 성공하면 수익률도 올릴 수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야.”
“초짜인 내가 함부로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장아라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칵테일을 입으로 가져갔다. 김필립은 장아라가 어떤 다른 방법을 더 얘기할지 긴장이 되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아, 아니. 하하 설마 가격 책정하는 방법이 이게 다인 것은 아니겠지? 둘 다 나한테는 안 맞는 방식인데… 아까 세 개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 하나 더 있지. 가격을 설정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경쟁자들의 가격을 참고해서 가격을 설정하는 거야.”
“오, 그래. 그건 뭔가 쉽게 알아듣겠는걸? 어휴 갑자기 안심이 되네. 하하. 경쟁사가 2만 원에 팔면 나도 2만 원에 팔면 된다는 거지?”
“비슷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경쟁사 가격을 복붙하라는 말은 아니라고. 경쟁사들과 비교해서 너의 가격 전략을 생각해야지.”
“아, 물론 복붙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지 말입니다.”
“훗, 그래. 지난번에 포지셔닝 맵에 대해 얘기한 것 기억나지? 그 그래프의 한 축을 가격으로 놓고 맵을 그려본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네가 가격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에 있고 싶은지, 그리고 그게 경쟁사와 비교해서 합리적인 자리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지. 간단히 말하면 가격을 가지고 하는 포지셔닝이라 할 수 있어.”
“아하, 그러니까 내가 다른 상품보다 낫다는 자신이 있으면 가격을 약간 더 높이 가져갈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반대인 거고 그런 건가?”
“혹은 거꾸로도 생각할 수도 있지. 더 나은 상품인데 더 낮은 가격으로 팔아서 아예 판매량을 아주 많이 가져가겠다는 전략을 생각할 수도 있는 거야. 매출은 판매가격 곱하기 판매수량이니까 어느 쪽이든 더 높아지는 것이 좋은 거라고. 그리고 ‘낫다’라는 것은 여러 번 말하지만 보이는 것이나 물질적인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돼. 똑같은 상품이라도 ‘초보자용’이라고 쓰여있는 상품에 실제로 초보자인 소비자들은 더 안심을 느끼고 사는 경우도 많다고. 경쟁사 상품이 천 원 정도 더 싸다고 해도 초보자용이라 마음이 놓이니까 천 원 정도야 그냥 더 내고 살 수도 있는 거야.”
“오, 그렇네. 정말 말 그대로 ‘가격 전략’이구나...”
김필립은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 장아라가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그리면서 했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다. 가격, 상품,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이것이 모여 이루어지는 우리의 가치제안. 단 하나도 그냥 하거나 생각 없이 해보는 것은 없구나. 이런 연결이 더욱 탄탄하면 탄탄할수록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이젠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자, 좋아. 이렇게 가격을 결정하고 나면 이제 너의 원가를 분석해서 얼마나 팔아야 되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거지.”
“그렇네. 이런 식으로 가격을 결정하면 원가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은 거네. 하나 팔 때마다 얼마나 이익을 보는 건지, 결국 손해가 난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겠는데?”
“그렇지. 그래서 바로 손익분기점 분석을 하는 거라고.”
“손익분기점이라는 건, 손해와 이익이 분기가 되는 지점이라는 건가? 손해에서 이익으로 전환되는 포인트…?”
“맞아. 정확해. 그러니까 말이지…”
장아라는 잠깐 말을 끊고, 아까 공식을 적어 두었던 태블릿에 다시 이어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매출 = 판매가격 x 판매개수
이익 = 매출 – 비용
손익분기점: 매출 = 비용
“자, 이익은 매출에서 비용을 뺀 거야. 그러니 이익이 0이 되는 지점, 그러니까 매출하고 비용이 같으면 그곳이 바로 손익분기점인 것이지.”
“응. 여기까지는 쉽게 알 것 같은데.”
“자 그러면…”
장아라는 다시 그 밑에 몇 줄을 더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용 = 고정비용 + 변동비용
변동비용 = 상품원가 x 판매개수
손익분기점: 판매가격 x 판매개수 = 고정비용 + (상품원가 x 판매개수)
손익분기점: (판매가격 – 상품원가) x 판매개수 = 고정비용
“어때? 알 것 같아?”
“어… 문송합니다가 나와야 할 때인 것 같은데…”
“문송합니다는 무슨 문송합니다야, 나도 문과야. 이 정도는 중학생 수준 방정식이라고. 그냥 치환하고 옮긴 거잖아.”
“음… 잠깐만… 그러니까 매출 대신 판매가격 곱하기 판매개수가 들어간 거고, 비용 대신 고정비용하고 변동비용이 들어간 거고, 그 와중에 변동비용 대신 상품원가 곱하기 판매개수가 들어가서… 오, 알 것 같은데?”
“그래. 하나도 안 어려운 식이야. 간단히 얘기하면 너의 판매마진, 그러니까 판매가격에서 상품원가를 뺀 마진에 판매개수를 곱해서 그게 고정비용이 되는 순간 너는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서 이익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말이지.”
“그러면 그렇게 쉽게 설명을 하지, 뭘 이렇게 복잡한 식으로 다 풀어썼어…?”
“왜냐하면, 실제로 계산을 시작하면 헷갈리거든. 자, 예를 들어서 네가 온라인 광고를 한다고 치자. 그러면 너는 사람들이 네 광고를 보고 클릭할 때마다 돈을 내게 될 거야. 그럼 이건 고정비용이야 아니면 변동비용이야?”
“어? 변하니까 변동비용인 거 아닌가?”
“바로 이래서 저렇게 하나하나 식으로 써놓은 거지. 하하하. 변동비용이란 상품의 판매개수에 비례해서 올라가는 비용이야. 하나 팔 때마다 비용이 같은 비율로 올라가야 한다고. 만약에 사람들이 네 광고를 보고 클릭만 한 다음에 물건을 사지 않으면 비용은 올라가도 판매개수는 늘지 않지. 또는 광고를 통해서 사는 게 아니라 친구한테 추천을 받아서 사면 광고비가 안 들어도 판매개수는 늘어나잖아. 여기 이 변동비용 공식, 상품원가 곱하기 판매개수를 꼭 기억하라고. 변한다고 다 변동비용이 아니야.”
“하지만, 물건을 제작할 때는 한 번에 확 만들지, 한 개 팔 때마다 비용이 딱딱 들어가는 것은 아니잖아.”
“하하, 김필립, 너 그럼 100개 만들었는데 101번째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안 만들고 ‘이제 끝!’ 하고 사업 접을 거니?”
“어… 그런가…?”
“결과적으로 너는 계속 만들고 계속 팔아야 된다고. 그러니까 한 번에 만들어서 한 번에 돈을 내든 할부로 내든 결국엔 하나 팔 때마다 나가는 비용은 똑같아. 그리고 한 번에 만들었는데 안 팔리고 남아서 처분해야 할 수량이 있을 수도 있겠지. 만약 그것도 원가에 계산하고 싶으면 처음부터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 폐기 비율을 정해놓고 계산해서 고정비용으로 넣어 버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오…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그런데 그렇게 계산하고 나중에 변하면 어떻게 해?”
“이보세요, 아저씨. 우리가 지금 만드는 것은 계획이고 예산인 거야. 변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나중에 결산을 해서 우리가 계획을 짠 대로 흘러갔는지 확인해보고, 잘못된 곳이 있거나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지. 마케팅 전략이나 이거나 마찬가지인 거라고.”
“그렇네. 예산이라고 하니까 느낌이 확 오는데? 무슨 소린지 확실히 알 것 같아.”
“좋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방식이 네가 가격 전략을 생각하고 판매계획을 세울 때 훨씬 알아보기도 편하고 계산하기도 편하다는 거야. 잠깐 한번 해볼까?”
장아라는 태블릿에서 엑셀을 켜고 무언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 어때? 알아보기 쉽지?”
“오, 정말 그렇네? 그러니까 내가 고정비가 이런 종류가 있고 변동비를 여기 써놓은 걸로 계산한다고 할 때 505개를 파는 순간부터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거지?”
“그렇지. 그 이후부터는 하나 팔 때마다 10,500원씩 그대로 이익인 거야. 이런 표를 엑셀 같은 걸로 만들어 두고, 예를 들어 고정비 항목에 너의 월급이나 아까 말한 재고 처리비용, 혹은 마케팅 비용 등 추가할 것이 있다면 더 넣고, 변동비 항목도 조사하면서 알게 된 비용이 있다면 추가하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너의 손익분기점을 쉽게 알 수 있고,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의 수익을 목표로 했을 때, 얼마나 팔아야 되는지도 알 수 있게 돼. 즉 너의 판매목표를 설정하기 쉬워지는 거야.”
“그렇네. 옷을 몇 장이나 생산해야 하는지 감이 좀 안 왔는데, 이렇게 보면 몇 장을 팔아야 되는지가 나오겠구나.”
“맞아. 이런 식으로 고정비를 월 단위면 월 단위, 분기면 분기, 혹은 반기나 일 년을 다 계산해서, 필요하다면 월간, 분기, 반년, 연간 판매계획을 세울 수도 있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판매 목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한 거야. 목표를 가지면 계획을 세울 수 있거든. 그리고 이렇게 판매계획이 세워지면, 네가 맨 처음 얘기했던 광고 계획도 쉽게 짤 수가 있다고.”
“어? 이게 광고하고도 연관되는 거란 말이야?”
점점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김필립은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첫날 장아라가 했던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이제는 정말 눈앞에 바로 닥친, 손에 땀을 쥐는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
가격 책정과 가격 전략
마케팅이나 재무분석 같은 현란한 이야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가격은 너무도 당연하게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업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때문에 가격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어느 업계, 어느 회사나 사업의 사이즈를 막론하고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 되곤 합니다. 원가나 경쟁사의 가격, 소비자의 인식 등 본문에서 언급된 요소들은 물론이고, 회사의 장단기적인 전략이나 임시적인 프로모션, 혹은 정기적인 세일 등의 이벤트적인 요소까지도 고려하여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이 ‘생닭 가격이 내렸는데 치킨 값은 그대로’ 같은 기사를 정기적으로 내보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판매 가격과 원가의 연관성을 대단히 높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소비재 대기업 등이 가격 인상을 고지할 때도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가격 상승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득이…’ 등등의 내용이 자주 들어가지요. 하지만 비즈니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많은 경우 원재료의 원가가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즉, 가격의 인상이나 인하는 보통 원자재의 비용 변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인 판단일 경우가 많지요. 사실은 ‘이렇게 가격 인상을 단행해도 이탈할 소비자로 인한 매출 저하보다 가격 인상으로 인한 매출 증가가 더 클 것이다’라는, 다시 얘기하면 매출 공식에 판매가격 증가분이 판매수량의 감소를 상쇄하고 남을 것이라는 전략적인 계산이 끝난 상태에서 향후의 계획과 시장의 경쟁을 고려한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사업을 시작하시는 여러분들도 순진하게 원가 더하기 마진 혹은 원가 곱하기 마진율 같은 단순한 방식을 통해 가격 책정에 접근하기보다는 경쟁사와 고객을 고려한 나의 한 수라는 전략적인 마인드로 가격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가와 비용에 관련된 분석은 손익분기점을 분석하여 별도로 대응하고, 가격 전략과 손익분기점 분석 결과를 토대로 목표 판매량을 설정하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 전략을 생각하면 공격적인 전략 전개가 가능해집니다. 즉, ‘몇 개는 팔려야 손해를 면할 텐데, 잘 팔리려나’ 같은 소극적인 걱정이 아닌 ‘몇 개를 팔아야 목표가 달성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적극적이고 정확한 방향성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마케팅은 숫자입니다. 판매 목표, 판매 가격 등 구체적인 숫자가 정해질수록 여러분의 마케팅 계획은 더욱 선명해지고, 더욱 실현하기 쉬워집니다. 그 모든 숫자의 토대가 되는 첫 걸음이 바로 가격입니다. 여러분이 설정하신 판매 가격에는 어떠한 전략이 들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