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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Sep 10. 2021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 생각하기

셋째 날: 가치의 전달(Value Delivery)


주제에 통달하고, 메시지에 통달하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통달하라. (스티브 잡스)


Ep.15: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 생각하기


정말 오랜만에 집에 일찍 돌아온 김필립은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렇게 책상에 앉은지도 벌써 며칠, 아니 몇 주 전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서 샤워도 안 하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진 날도 꽤 있었다. 장아라의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언제부터인가 도저히 집에 일찍 들어올래야 들어올 수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하면 할수록 쌓여만 가고, 한 가지 일이 끝나면 그 일은 서너 가지의 새로운 일로 변해 있었다. 전략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현장의 일에 뛰어 들지도 못했겠지만, 거꾸로 미리 전략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폭풍처럼 몰아치는 매일매일의 다양한 일들 때문에 도저히 나중에 생각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모두 정리하고 아라 누나한테 연락을 해야겠어.’


얼굴을 손에 파묻고 깊은 한숨을 내쉰 김필립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요가복 소재의 종류와 젊은 놈이 아무것도 모르고 원하는 것만 많다며 불같이 화를 내시던 창신동 송 사장님의 얼굴을 애써 지우며 오랜만에 노트를 꺼냈다. 장아라와 마지막으로 만난 후 며칠 동안 열심히 생각하며 장아라가 내준 숙제인 컨슈머 저니를 끝마치고, 그것을 4P(상품 Product, 가격 Price, 판촉 Promotion, 유통 Place)의 관점으로 생각하자 당장 달려 나가서 알아봐야 할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트는 그곳에서 멈춰 있었다. 김필립은 다시 한 번 차분히 컨슈머 저니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김지은의 컨슈머 저니: 첫 번째 시나리오

김지은은 샤워를 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고,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친구들에게 요가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터였다. 제대로 알아보자는 마음이 든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주변의 요가교실을 검색했다. 규모가 꽤 큰 요가센터 한 곳과 소규모 요가원 한 곳. 이 두 곳을 예약하고 각각의 교실에서 체험수업도 한 번씩 받았다. 역시 사람이 많은 곳은 부담스러웠다. 작은 요가원을 선택하고 나자,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우려면 요가복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체험수업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예쁘고 슬림한 디자인의 요가복들을 떠올리며 몇 가지 브랜드들을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부담스러운 레깅스나 스판 재질의 요가복보다는 약간 헐렁한 디자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헐렁한 요가복’으로 검색하자 편안한 요가복, 헐렁한 요가복, 조거핏 등의 상품들이 표시되었다. 그중 몇 개의 상품에는 ‘초보자용 요가복’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김지은은 자신에게 적절한 요가복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 상품을 클릭했다. 모델이 입은 요가복을 확대해보니 딱 자신이 찾던 타이트하지 않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미가 생기자 사진 및에 있는 소재와 상품 설명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무엇보다 초보자들의 요가 동작에 맞춘 기능성 디자인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적당한 상품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몇 가지의 색상을 클릭해보고 파스텔 핑크와 민트색을 골라 구매하였다.


‘그리고 난 이걸 쓰고 이미 패닉에 빠졌었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김필립은 헛웃음이 나왔다. 사업을 하겠다고 신나게 폼 잡으며 도서관과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주제에, 구체적으로 묘사된 소비자의 행동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자신이 정말 말 그대로 하나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던 것이다. 


‘검색 키워드는 어떻게 설정하는 거지? 문송합니다 주제에 헐렁한 옷은 어떻게 만들건데? 맞아, 모델! 나 사진도 못 찍는데? 아… 당연히 색깔도 몇 개는 있어야 말이 되지! 아 진짜, 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냐 김필립!’ 


이런 생각이 컨슈머 저니를 써 나가는 동안 머릿속을 헤집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거 쓰고 동대문으로 바로 안 뛰쳐나간 게 신의 한 수였어…’


김필립은 사실 폭발할 것 같은 머릿속을 꾹꾹 눌러 담으며 두 번째의 컨슈머 저니 시나리오도 완성해 두었던 것이다.


김지은의 컨슈머 저니: 두 번째 시나리오

아는 언니의 소개로 요가를 시작한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돼가지만, 김지은은 아직도 집옷으로 입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요가를 하고 있었다. 돈을 아끼고 싶어서도,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에 특별한 애착을 느껴서도 아니었다. 아는 언니를 포함해 요가교실의 다른 학생들은 모두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다들 고수인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한 멋지고 늘씬한 몸매, 그 몸매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예쁜 요가복을 입고 요가를 하고 있으니, 거꾸로 잘 하지도 못하면서 고수들과 똑같은 요가복을 입고 요가를 하기가 창피하고 쑥스러웠다. 트레이닝복도 창피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초보라는 핑계로 요가복 구매를 미룬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그럭저럭 버티고 있긴 했지만, 요가 동작들이 몸에 익기 시작하자 더 이상 뻣뻣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요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요가복을 사기는 사야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쇼핑몰에 들러 스포츠용품점에서 다양한 요가복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구경하며 이것저것 손에 들어 보기도 했지만, 예상대로 요가복들이 모두 몸에 착 달라붙는 스타일이어서 역시 망설여졌다. 조각몸매의 고수 언니들 옆에서 물렁 배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남들의 반도 굽혀지지 않는 동작을 하는 자신을 상상하자 그런 옷은 도저히 입을 수가 없을것 같았다. 결국 구매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김지은은 우울한 마음에 침대에 누워 검색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에 딱 붙는 요가복은 너무 부담이 됐다. ‘붙지 않는 요가복’으로 검색해보자 의외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이미지들이 나타났다. 페이지를 넘기며 구경하던 김지은은 ‘초보자용 요가복’이라는 문구를 보자 자신에게 딱 맞는 상품이라는 느낌에 바로 클릭했다. 모델이 입은 요가복을 확대하자… 이후 동일.

 

‘그래, 검색어가 절대로 ‘초보자용 요가복’은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게 있는지 아무도 모를테니 당연하지…’


첫 번째 컨슈머 저니를 완성하고 나서 뛰쳐나갈 뻔했던 마음과는 달리, 두 번째를 완성하고 났을 때는 도리어 차분해졌던 것이 떠올랐다. 겹치는 부분이 명확해지고 해야 할 것들이 선명해지자 침착해진 것이다. 검색어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초보자용 요가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품명에 ‘초보자용 요가복’이라고 쓰여있어야 주목을 끌 것이다. 대부분 두세 벌씩 한 번에 살 것이고, 여러 개의 색상 등 소비자가 선택할 다양성도 갖추어야 한다. 디자인도 기능성 면에서 충분히 훌륭해야 하고, 가격도 적절해야 한다. 이러한 몇 가지의 확실한, 하지만 산발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이것들을 정리하고 싶어져 장아라가 이야기한 대로 지금까지 만들었던 4C 및 그에 따른 STP전략을 문장으로 정리했던 것이다.


사업의 배경    

최근 다이어트 붐을 타고 홈트레이닝이나 요가를 시작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포츠 메이저 브랜드들을 비롯한 다양한 업체들이 좋은 소재나 편안한 디자인 등을 내세우며 요가복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한편, 요가를 처음 시작하는 20대 여성층은 프로페셔널용 브랜드나 몸에 딱 붙는 디자인에 대해서 다소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브랜드 선호는 특별히 없는 편이다.

 <결론> 브랜드 파워가 없더라도 적절한 디자인을 제공한다면, 요가에 처음 입문하는 20대 여성층을 대상으로 한 초보자용 요가복 판매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됨. 


시장 상황    

현재 요가 및 관련 시장은 3조 원, 요가복 시장은 1조 5천억 원으로 추정되며, 요가를 즐기거나 다른 이유로 요가복을 구매하는 인구가 약 6백만 명 정도로 추산됨.


경쟁사    

현재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는 약 6개 업체로, 매출 규모로 최고를 달리는 젝키스를 포함, 각 업체가 기능성 혹은 패션성을 축으로 각각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음.

현재 시장에는 숙련도를 기준으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은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프리미엄 고가격대, 고기능성 상품일수록, 숙련자용으로 연상하는 경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됨.


소비자    

 현재 시장의 소비자는 가장 규모가 큰, 패션성과 가격대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는 패셔니스타 그룹을 포함, 7개의 세그먼트로 나눠져 있음.

우리가 타겟으로 삼고 있는 세그먼트는 무난하고 튀지 않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무난파’ 그룹으로, 시장의 약 10% 전후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됨.

무난파 그룹 고객은 평균 연령 27세, 여성, 대기업 회사원으로 적절한 경제력이 있으며 자기 관리를 중시함.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는 거부감이 없으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함. 전반적으로 튀기 싫어하는 조용한 성격임.

무난파 고객의 요가복 니즈: 고기능 혹은 프리미엄 제품 등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처음 요가를 시작하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음. 특히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런 옷을 입었을 때 주목을 받거나 다른 숙련자들과 비교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


우리의 전략: 시장에 ‘숙련도에 따른 요가복 선택‘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 초보자용 요가복의 포지션을 선점하여 경쟁사들을 밀어내며, 적절한 기능성과 패션성을 조합,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디자인으로 무난파 그룹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상품을 판매. 


‘그렇지. 이런 큰 줄기였어.’


정리된 전략을 다시 읽어보자 요 몇 주간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결과물도 정리가 되는 듯했다. 알아듣기 쉽고 명쾌한 말이어서 오히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온갖 정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이 내용을 적었을 때에도 산발적으로 떠오르던 아이디어들이 정리된 전략과 함께 정확한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장아라가 말했듯 4P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각 분야에 해당되는 과제가 명확해졌던 것이다.


‘좋아.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다시 한 번 보자.’



맨 처음 장아라가 그려줬던 이 프레임워크를 보았을 때의 암담했던 느낌이 떠올랐다. 하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엄두도 나지 않았었지. 이제는 당당하게 SWOT과 4C분석까지 마치고, 4P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자신의 성장이 이 프레임워크를 보자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다.  


‘그래 이제 4P 차례지. 그때 알아봐야 할 것들을 4P로 정리한 게 여기 어디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여기 있군.’


상품 Product:

기능성/패션성 중립 - 적절한 기능성 소재일 것 --> 소재 공부 필요

몸에 딱 붙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늘어져서 거추장스러워도 안됨 --> 좋은 디자이너 필요: 의상디자인학과 세희?

색상이나 패턴 등의 버라이어티가 필요 --> 상품 라인업 구성


가격 Price:

저가일수록 초보자라는 연상이 있음 --> 고가는 NG. 중립적 가격? 

원가 구조 파악 필요 --> 원가 조사?

수익률 설정 필요 --> 업계 평균 마진률?


판촉 Promotion / Communication:

초보자용 요가복이라는 메시지는 필요함, 그러나 그것으로 검색되진 않음 --> 검색 키워드 활용 전략 필요

기능성을 적절히 강조할 필요성이 있음, 초보자용만의 특징을 강조할 필요가 있음, 소재에 대한 설명 필요 --> 광고 카피에 대한 고민 필요할 듯?

상품 사진, 모델 착용 사진 등 판촉용 사진 제작 필요 --> 포토샵?


유통 Place / Channel: 

네이버 쇼핑, 쿠팡 등 주요 이커머스 업체 입점 --> 입점 방법 확인 필요

공장에서 제조 후 포장, 보관할 창고 및 고객 발송 등 상품 물류 정립 필요 --> 물류업체 조사할 것

이후 전개는 단독 판매 가능 웹사이트? --> 방법 확인 필요?


하…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마음을 다 잡고 4P의 기준으로 이 리스트를 죽 써내려가자, 아주 명확하게 할 일들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정리되었다는 것이 끝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바로 그 다음날부터 김필립은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해소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이곳저곳에 연락을 시작했고, 마치 지옥문이라도 열어젖힌 것마냥 순식간에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마케팅 전략도 전략이지만, 업계에 대한 지식이나 산업 특성 같은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무언가를 알아보겠다고 며칠씩 동대문을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여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공장들과 말해 보려고 이곳저곳 알아보다 퇴짜를 맞는 일쯤은 이미 아무렇지도 않았다. 단어도 생소한 소재 이름이나 염색 방법, 인쇄 방법 등도 일일이 기억해야 했다. 못 알아들으면 베테랑인 공장 사장님들은 상대도 해주려 하지 않으셨다. 중소기업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패션 창업 강좌 같은 것도 빠짐없이 찾아들으며 업계의 생태계를 익혀나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알고 지내던 패션디자인학과 후배의 친구를 끌어들이는 데도 성공했고, 그 친구가 자주 함께 작업을 진행했던 공장도 몇 군데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알아볼 것이 잔뜩 남아 있었다. 특히 판촉이나 유통 쪽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 김필립의 마음속에는 이런 일들의 파도를 과감히 끊고, 장아라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지금부터 결정하기 시작해야 할 것들, 예를 들면 몇 개의 상품을 가져갈 것인가, 어떤 가격대의 소재를 사용하여 어느 정도의 가격을 받고 팔 것인가와 같은 방향성을 확실히 정해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마음대로 결정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4P의 각 요소를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도 듣고 싶었고, 묻고 싶은 것도 있었다. 김필립은 지금까지 알아본 것들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물어봐야 할 내용들을 4P를 기준으로 적어보기 시작했다.


상품 Product:

라인업 구성을 할 때 생각해야 할 것은? 상품 개수를 정하는 이유가 있나?

브랜드가 될 것을 감안하고 상품을 구성?


 Price:

가격을 정하는 방법이 있나?

원가 분석을 잘하는 방법은?


판촉 Promotion / Communication:

광고 카피를 만드는 방법이 있나? 메시지는?

광고 예산은 얼마나 잡아야 하나?

사진은 포토샵을 배워야 하나,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워야 하나?


유통 Place / Channel: 

향후 성장을 감안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온라인만으로 확장이 가능한가?


질문사항을 다 적어놓고 나니 김필립은 뭔가 대단히 피곤한 와중에서도 뿌듯함이 느껴졌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안개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아야 하는지 스스로 적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뭘 알아야 질문도 나온다더니, 정말이군.’


확실히 비즈니스가 점점 구체화되어가자 전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나 알고 싶은 부분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기 시작했다. 몸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일이 명확해서 기뻤다. 무언가 빠뜨린 것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번 훑어본 후, 김필립은 핸드폰을 꺼냈다.


‘아라 누나, 언제 시간 돼? 나 마지막으로 한번 좀 봐줬으면 하는데.’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 4P)

많은 분들이 마케팅하면 바로 떠올리는 마케팅 활동, 마케팅 믹스입니다. 이전까지의 4C 등의 이야기가 뭔가 알 듯 말 듯한 개념 투성이라 마케터가 아니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기초작업이나 지반공사 같은 이야기라면, 마케팅 믹스에 관한 이야기는 눈에 보이고 실제로 확 와닿는, 마치 반짝이는 건물의 외벽 같은 이야기입니다. 보통 마케터라는 직업을 생각할 때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그 이미지의 대부분은 바로 이 마케팅 믹스, 특히 판촉, 커뮤니케이션에 해당하는 광고에 대한 이미지에서 왔을 것입니다.

마케팅 믹스는 몇 가지의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이드라인 같은 일부의 이론을 제외하면 4C와 같이 딱딱한 이론적인 이야기도, 김필립이 자주 중얼대는 철학적인 개념도 그다지 없습니다. 무엇보다 마케팅은 물건을 잘 파는 것이 목적이고, 그렇다 보니 물건을 잘 팔기 위해 지금까지 없던 기상천외한 마케팅 믹스를 사용하는 회사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지요. 이렇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갈구하는 마케팅 믹스의 특성상, 고리타분하게 원리나 원칙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케팅 믹스를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 믹스에 관련된 원리나 원칙, 혹은 과거의 사례 등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가 그런 것을 잊어버릴까 싶지만, 사실 현업에서 가장 자주 발생하는 문제점이 바로 ‘왜’를 잊어버리고 그저 화려한 마케팅 믹스의 실행에만 도취되어 이상한 방향으로, 심지어 열심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끝끝내 이런 폭주를 막지 못하고 결국 그 상태로 대중에게 공개되어 광고를 봤는데 상품은 기억 안 나고 모델만 기억나는 광고, 기록적인 판매수치를 보이고도 회사는 부도 같은 사례를 대기업부터 스타트업을 막론하고 많이 찾을 수 있으실 것입니다. 

바로 이 ‘왜’에 대한 작업이 4C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이 마케팅 믹스가 4C에서 도출된 전략을 향해 정확하게 가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마케팅 믹스의 실행 자체는 그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에이전시도 많이 있기 때문에 돈만 있다면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대기업 뺨치는 화려한 쇼케이스를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전문 에이전시를 포함하여 프로젝트에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 사이에 ‘왜 우리가 이것을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공유가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마케팅 믹스라도 결과적으로는 광고회사만 대박을 치는 실패로 귀결되겠지요.

세상에 많은 멋진 건물들이 오늘도 화려한 자태를 뽐낼 수 있는 것은 바로 탄탄한 지반공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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