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돌고 돌아서 드디어 맨 처음 얘기한 광고까지 왔네.”
장아라는 살짝 웃으며 앞에 있는 칵테일을 한 모금 마셨다. 김필립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장아라에게 마케팅에 대해 묻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다 뛰어넘고 바로 광고를 시작했을 수도 있었겠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암울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무슨 광고를 왜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그냥 해보면서 좌충우돌했을 자신이 떠올랐다.
“왜 그래? 감회가 새로워?”
“아, 아니. 많이 배우긴 배웠다 싶어서.”
“그래, 많이 배우고 잘 따라왔지. 훌륭한 학생이라고.”
“훌륭한 선생님이 계셔서 그런 것 같은데?”
“아냐, 보통 잘되는 케이스는 선생보다는 학생이 뛰어난 경우가 많지. 자 그럼 광고에 대해서 한번 애기해볼까?”
장아라는 김필립이 써놓은 메모를 다시 끌어 놓고 쓱 훑어보았다.
판촉 Promotion / Communication:
광고 카피를 만드는 방법이 있나? 메시지는?
광고 예산은 얼마나 잡아야 하나?
사진은 포토샵을 배워야 하나,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워야 하나?
“어… 광고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전에 어떤 내용을 광고에 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냥 ‘초보자용 요가복 등장!’ 이렇게 쓰는 것도 아닐 것 같은데… 키워드 광고를 할 거면 어떤 키워드를 선정해야 할 지도 잘 감이 안 오고, 쇼핑몰에 쓸 사진도 찍어야 되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잠깐, 잠깐! 고민이 많으신 건 알겠는데요, 김 사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아까도 그랬지만 자꾸 여러 가지를 섞어가지고 생각하면 더 복잡해질 뿐이라고. 나눠서 하나씩 생각하고 하나씩 해결하는 거야. 디바이드 앤 퀀커. (Divide & Conquer)”
“응… 알겠어. 자꾸 조급해져서 그런가 봐.”
“그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된다고. 자, 일단 광고를 생각할 때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면 돼. 첫째는 스케일 그러니까 규모, 둘째는 콘텐츠 그러니까 광고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스케일 하고 콘텐츠란 말이지…?”
“그래. 자, 먼저 스케일 얘기를 해보자. 이왕 판매 계획하고 광고 계획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야. 첫날 나랑 마케팅에 대해 얘기할 때 말한 광고의 본질 기억나?”
“어… 잠깐만. 그래, 광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잘 기억하고 있네. 자, 그런데 생각해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너의 상품을 알릴 필요가 있을까?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는 것은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거든.”
“으흠… 너무 많은 사람한테 알려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비효율적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예를 들어, 40대 아저씨한테 네 요가복 광고를 보여주려고 돈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돈을 내고 싶어?”
“아니, 그럴 돈이 어딨어. 세상에…”
“그렇지. 그러니까 당연히 너의 상품에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 너의 경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요가를 막 시작한 여성들에게만 광고를 하면 제일 효율적이겠지?”
“그건 당연히 그런데, 그런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아! 그래서 컨슈머 저니를 만들고 터치포인트를 체크하라고…?”
“그래, 맞아. 네가 생각한 고객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서 너의 상품을 알릴 수 있는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기회, 즉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알아내야 되는 거야. 너의 고객들이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유튜브나 SNS, 게임, 인터넷 사이트, 혹은 잡지라든지 자주 가는 쇼핑몰, 버스 혹은 택시나 지하철까지, 어디에 가면 제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너의 고객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지.”
김필립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너무 맞는 이야기였다. 늘 유튜브에서 광고를 보고, 축구를 보면서 뒤에 있는 광고판도 보고, 심지어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 광고도 봤는데 단 한 번도 그것을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채널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왜 그 회사들은 특히 그런 채널을 선택했을까. 장아라가 아까 전에 했던 매일매일 보며 생각하고 공부한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네. 너무 당연하게 인터넷 광고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려할 게 바로 방금 얘기한 판매 목표. 네가 팔아야 할 요가복이 1,000장인데, 아무리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요가를 막 시작한 여성들이라도 막 천만 명씩이나 알릴 필요가 있어?”
“아니지… 천 명 중에 한 명이 한 장씩만 산다고 해도… 잠깐만, 어 그러니까 백만 명이면 되네.”
“그래. 산술적으로는 너의 광고를 본 모든 사람들이 요가복을 두 장씩 산다고 생각하면 심지어 500명한테만 알려도 너는 판매목표를 달성하는 거라고. 천만 명한테 알리는 것과 500명한테 알리는 것의 비용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날 거라는 계산은 안 해봐도 그냥 알겠지?”
“으… 소름 돋아. 진짜 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맨 땅에 헤딩 할라 그랬네…”
“하하하, 그래. 게다가 요즘은 네가 처음에 얘기한 대로 디지털 채널로 광고하는 시대라고.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너의 광고를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이나 봤고 그중에 몇 명이 클릭해서 너의 사이트까지 왔는지도 다 알 수 있는 거라고. 심지어 너의 사이트에 와서 뭐를 구경하다가 어디에서 떠나갔는지까지도 다 추적할 수 있어.”
“무서운 세상이구먼.”
“갑자기 웬 할아버지 같은 소리야, 몰랐던 것처럼. 하하. 아무튼 이런 기술의 발전 때문에 우리 같은 마케터들은 더 효율적으로 광고를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CPC (Cost per click) 같은 개념들은 알지?”
“응, 그건 이것저것 찾으면서 들어본 적 있어. 소비자들이 광고를 한번 클릭할 때 드는 비용이라는 거지?”
“맞아. 구글이나 다음, 네이버 같은 검색엔진, 혹은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같은 광고매체에 따라 기준이나 가격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고객층에게 광고를 보이게 할 것인지, 그리고 몇 명한테 보이게 할 것인지를 다 계획하고 계산할 수 있다고. 예를 들어서, 네 온라인 쇼핑몰에 100명이 들어오면 한 명은 상품을 구매한다고 하고, 그 사람이 평균적으로 1.5개의 상품을 산다고 해보자. 너의 판매 목표는 1,000개야. 그러면 몇 명이나 너의 광고를 클릭해야 하지?”
“어… 어, 계산기. 핸드폰에 계산기가 있어서 좋단 말이지. 잠깐만. (1,000÷1.5)×100이니까 66,666.666… 음, 한 6만 7천 명이 클릭하면 되는 거네.”
“그래. CPC 단가가 500원이라고 하면, 너의 광고 예산은 얼마야?”
“33,500,000원… 우왓! 엄청나네!”
“엄청난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숫자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3천3백만 원이 너한테 너무 비싸면 단가 500원짜리 대신 100원짜리 혹은 50원짜리를 찾으면 돼. 사전에 규모를 파악하고 계획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해.”
“어, 그러네. 단가가 높은 광고 키워드나 광고 자리는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얘기인 거지? 입찰하는 방식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맞아. 많은 판매자들이 특정 키워드에 몰리면 단가가 점점 비싸지는거지. 그렇게 몰린다는 얘기는 소비자들이 그 키워드로 검색을 더 많이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보다 방금 얘기한 부분에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지.”
“어? 뭔데?”
“3천3백만 원이 너무 비싸다고 했잖아? 만약 이 금액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다면 어떨까?”
“나로서는 아주 땡큐한 이야기겠지?”
“자, 우리가 처음에 계산하면서 세웠던 가정, 100명이 네 사이트를 방문하면 1명은 살 것이라는 이야기. 만약 100명이 와서 10명이 사면 어떻지?”
“아! 그렇네! 그러면 6,700명만 클릭하면 되는 거네! 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해?”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해야 된다고 했지? 스케일 하고…”
“콘텐츠!”
“그래. 바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구매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장아라는 다시 태블릿을 돌려놓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 일명 ‘메시지 하우스’라고 하는 거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들에는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구성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프레임워크들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돼.”
“어… 비슷한 걸 교양수업에서 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있는데… 어떻게 보면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하, 그래. 사실 별로 어려운 내용은 없어. 그냥 너의 광고에 들어가는 메시지를 조직화시켜주는 틀이라고 생각하면 돼. 가장 먼저, 맨 위의 ‘소비자의 받아들임’을 생각해봐. 너의 광고 혹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 상품 구매 페이지도 마찬가지겠지. 그걸 본 다음 소비자가 어떤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
“이 물건이 바로 내가 찾던 그 물건이다?”
“음… 그래. 그 자세이긴 한데, 약간 더 구체적으로. 그래, 이 말을 먼저 하는 것이 좋겠구나. 우리가 이제까지 전략을 짜오면서 고민한 것이 바로 소비자에게 어떤 니즈(Needs)가 있는가였어. 그리고 우리가 가치제안을 통해 그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킬까 하는 이야기였지. 이걸 커뮤니케이션하기 쉽게 바꿔 말하자면, 소비자는 무언가 문제점(Pain Point)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상품으로 그걸 해결해주겠다는 이야기야.”
“아하, 그러면 ‘우리의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너의 고민이 해결될 것이다’라는 느낌을 소비자가 우리 광고를 보고 느껴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러면, ‘이 요가복을 사면 초보자인 나도 부담 없이 요가교실에 갈 수 있겠구나’가 내가 생각하는 소비자의 받아들임인가?”
“그래, 그런 식으로 만들어가는 거야. 자, 그러면 그런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가장 크게 중점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메시지는 어떤 걸까?”
“요가 초보도 부담 없는 요가복?”
“그렇지. 그 메시지가 너의 핵심 판매 메시지가 되는 거야. 물론 그 메시지를 더욱 섹시하게,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흥미가 끌리도록 만들 수도 있겠지. 카피라이터들이 바로 그런 작업을 하는 전문가들이야. 하지만 네가 전달해야 할 핵심적인 내용, 즉 키워드는 ‘초보’, ‘부담 없음’, 그리고 ‘요가복’인 거지.”
“오호,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개요가 잡혀가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러라고 있는 프레임워크니까. 자, 그러면 고객들은 그 메시지를 보고 그것이 믿을 만한지 이유를 찾게 될 거라고. ‘정말 이 요가복은 초보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해야겠지. 그게 바로 ‘믿어야 할 이유 1, 2, 3’인 거야.”
“아, 그러니까 붙지 않는 디자인, 초보 요가 동작에 적절한 디자인, 땀을 흡수하는 소재 등등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그렇지. 정말 강력한 이유라면 단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많아도 세 개는 넘지 않는 게 좋아. 마케팅은 종종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포인트거든. 세 마디로 설득되지 않을 고객은 백 마디를 해도 설득되지 않아. 오히려 세 마디면 설득되었을 고객들이 줄줄이 쓰여있는 소설 같은 광고를 보고 질려서 도망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간결한 것이 포인트라는 거지?”
“정확해. 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광고에 별로 관심이 없어. 엘리베이터 스피치 같이 15초 안에 제일 중요한 말만 딱 해야지 기억에 남는 거야.”
“알았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마지막에 이 ‘브랜드 기본 이미지’라는건 뭐야?”
“브랜드 후광효과 같은 거야. 지금 너에겐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 대기업이나 유명한 브랜드가 하는 이야기면 똑같은 이야기라도 더욱 신뢰감이 쌓이겠지. 특히 그 회사나 브랜드가 계속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런 후광 효과를 잘 이용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요소라고.”
“아… 그러니까 똑같은 초보자용 요가복이라도 룰라 키위 같은 요가 전문 브랜드가 내놓으면 훨씬 그럴싸하게 들릴 거란 얘기지?”
“거꾸로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지. 룰라 키위가 축구화를 내놓는다고 생각해봐. 믿어야 할 이유가 어지간히 강력하지 않으면 설득되지 않을걸? 그렇기 때문에 맨 밑에 기반처럼 있는 것이기도 해.”
“잘 알 것 같아. 이제 어떻게 광고 메시지를 만들지 감이 좀 잡히는걸?”
한숨을 내쉬며 맥주를 집어 드는 김필립을 보고 장아라가 말했다.
“잠깐. 마지막으로 광고 메시지를 만들때 유용한 두 가지의 테크닉이 있어.”
“뭐가 또 있어?”
"그만해?"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잘 배워둬야지 무슨 소리야. 오케이, 그래서 첫 번째는 뭔데?"
“첫 번째는 ‘자극적인 문제제기 (Provoking message)’ 방법. 당연하지만 광고는 주목과 시선을 끌어야 한다고. 그래서 광고를 자극적인 문구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어. 예를 들면, ‘배 나온 초보 요가생 고민 해결!’ 같은 식이지.”
“후와, 느낌이 완전 다른데? 매운맛에 MSG 잔뜩 뿌린 느낌이야.”
“그렇지? 하지만 이런 테크닉을 쓸 때는 조심해야 돼. 소비자의 기대치가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네가 스스로 네 상품의 품질과 가치가 뛰어 넘어야 할 허들을 높이는 격이 되어버리지. 그리고 자극적인 문제제기 내용만 기억에 남고 해결책인 네 상품이나 브랜드는 정작 기억에 안 남는 경우도 많아. 게다가 소비자의 반발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높지. 그래도 잘 사용하면 주목을 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응, 그럴 것 같아. 다른 테크닉은 뭐야?”
“이건 광고의 마지막에 쓰는 테크닉이야. ‘행동 요청(Call To Action)’이라는 건데, ‘지금 전화하세요’나 ‘지금 바로 클릭’ 같은 문구를 넣는 거지. 결과적으로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광고의 목적이기 때문에, 한창 구매욕구를 자극했을 때 바로 구매 혹은 다음 스텝으로 이어지는 행동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거야.”
“아! 그거 나도 많이 봤어. ‘마감 임박’ 뭐 그런 것도 이 행동 요청의 일종인 건가?”
“음… 포인트는 고객들이 네 광고를 보고, ‘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같은 의문을 느끼면 안 된다는 얘기야. ‘마감 임박’이라고 하면 소비자는 더욱 빨리 구매를 하고 싶어지겠지만 어떻게 사야 하는지는 모를 수도 있다고. ‘행동’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좋은 행동 요청이라고 볼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알아보기 쉽고 명확해야 돼.”
“알겠어.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야.”
“아주 좋아. 그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 잘 기억해 두라고.”
잠깐 말이 멈춘 사이, 바텐더가 다가와 추가 주문을 받았다. 김필립에게 새로운 맥주를 건네고 장아라의 칵테일을 다시 만드는 동안 화제는 자연스럽게 광고의 마지막 주제였던 사진으로 넘어갔다. 카메라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는 김필립에게 바텐더가 문득 말을 걸었다.
“자네 옷은 어디서 만드나?”
“네? 창신동에 작은 공장 하나를 알게 돼서요. 거기서 생산해 주시는 걸로 조금씩 진행 중입니다.”
“직접 공장 차려서 만드는 건 아닌가 보지?”
“아, 네. 하하, 제가 어느 세월에 공장을 차려서 옷을 만들겠어요. 돈도 없고.”
“그런데 카메라는 어느 세월에 배워서 사진을 찍으려고 그러나? 카메라도 비쌀 텐데? 사진 배운 적은 있나? 요샌 컴퓨터로 이렇게 저렇게 한다던데?”
“네? 아, 없는데요…?”
“사진은 얼마나 배우려고? 옷 만드는 것보단 쉬울 것 같아 보이나 보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농담 섞인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 바텐더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고 있던 장아라는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김필립. 아직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어? 어어… 네?”
“예쁜 아가씨 말 잘 듣게나. 나도 멋도 모르고 처음에 고생 많이 했지.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건 큰 복이야. 고마운 일이지. 러스티 네일 나왔습니다.”
여전히 영문을 몰라하는 김필립을 두고 칵테일을 바 탑에 올려놓은 바텐더는 씩 웃으며 건너편 손님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장아라는 킥킥거리며 말을 이었다.
“김필립, 너 일이 옷 만드는 거야, 옷 파는 거야, 아니면 사진 찍는 거야? 하하하.”
“어… 옷 파는 거네.”
“옷 만드는 건 옷 만드는 사람한테 부탁하면서 사진은 왜 사진 찍는 사람한테 부탁 안 해?”
“아!”
“초보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야. 자기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니까 다 하는 거. 하하.”
“어, 그런가…? 그래도 그렇게 안 어려워 보였는데…”
“나도 처음에 그랬어. 일러스트레이터 잘 만지거든. 그래서 에이전시가 해온 게 맘에 안 들어서 혼자서 여기저기 고쳐보곤 했는데, 그때 매니저님이 불러서 한소리 하셨지. ‘아라야, 네가 연습해야 하는 건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라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한테 네 생각을 잘 전달하는 거다’라고 말이야. 네가 경쟁할 상대들은 모두 전문 사진사들이 찍은 사진을 쓸 거야. 네가 정말 전문 사진사보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사진만 생각하고 사진만 찍는 사람들인데?”
“어… 아니겠지…”
“그런데 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더 안 좋은 결과물을 내려고 해? 그냥 간단히 그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사진 찍어달라고 하고 돈을 주면 되는 거지.”
“그러게. 그런 생각을 못했네. 그런 발상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
“하하, 맞아.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 넌 회사 경험도 없고 말이야. 내가 잘 아는 에이전시 있는데 같이 해보는 거 어때?”
“어…? 에이전시? 엄청 비싼거 아니야? 나 그렇게까지 모아둔 돈 없는데…”
“이럴 때 누나 찬스 한번 쓰는 거지 뭐. 물론 그냥 기초적인 광고들이면 너 혼자서도 네이버나 구글 찾아서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에이전시랑 해보면 배울 거 엄청 많을 거야. 특별히 부탁해 놓을게.”
“고마워, 누나. 에이전시랑 일도 하고, 점점 진짜 같아지는데?”
“당연히 진짜지. 진짜니까 재미있는 거라고. 하하!”
장아라의 웃음소리가 꽤 컸지만, 이미 꽤 많은 손님들이 앉아 있는 바 탑은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여름 해가 지기 전에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한밤이 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판촉, 커뮤니케이션, 광고, 그리고 에이전시
어렸을 적 친구와 함께 제주도 무전여행을 하며, 제주시부터 함덕시까지 거의 15킬로미터를 걸어 간 적이 있습니다.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랐고 요금이 얼마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30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8시간을 넘게 걸어서 함덕시에 도착했습니다. 며칠 후 제주시에서 함덕시까지 가는 버스가 상당히 자주 있고, 게다가 600원만 내면 30분 만에 편안히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대단히 허무해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광고는 명실공히 마케팅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고뇌, 전략, 괴로움이 결과물로 나타나는 화려함의 정점이지요. 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이벤트성 광고에서부터, 영화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힘든 동영상까지, 그 범위나 아이디어도 다양하기 그지없습니다. 특이한 광고가 아닌 '일반적인' 광고만을 보더라도 이미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채널이 존재합니다. 매장내 포스터부터 시작해서 TV나 SNS까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광고 채널이 있지요. 각 채널에 따른 특성과 전략적인 중요도 역시 차이가 있습니다. 콘텐츠도 채널의 특성에 따라 조절하거나 심지어 채널의 중요도가 큰 경우, 그 채널만을 위한 광고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창업자 여러분들이 이 모든 것을 직접 배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치 제가 제주시에서 함덕시까지 30킬로짜리 배낭을 메고 걸어가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는 목적지까지 가려면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비용이 얼마나 들고 장단점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겠지요. 광고 에이전시를 이용하는 것이 바로 버스를 타는 것과 같은 접근 방법입니다. 광고가 마케팅의 꽃이고 화려함의 정점이기에 광고의 방법과 채널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습니다. 에이전시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전문분야와 전문성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맞추려 노력합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가고 싶은 목적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그 에이전시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어야 하는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버스를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버스를 통째로 사지 않더라도 충분히 버스가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여러분의 사업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경험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건대 15킬로미터를 걷는 것은 은퇴 이후의 취미생활로 남겨두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