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bin Chang Oct 22. 2021

온라인 쇼핑몰을 막 만든 김필립 씨의 경우

Ep.22: 온라인 쇼핑몰을 막 만든 김필립 씨의 경우


별 다를 것은 없었다. 평소와 같이 침대에서 눈을 떴고, 살짝 뒤척거리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시고 나니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오늘이 반년 넘게 열심히 준비해온 온라인 쇼핑몰을 여는 첫날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습관적으로 준비를 하고 사무실로 향하긴 했지만 오늘은 바쁜 일도 특별한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저녁에 정수미와 장아라와 함께 늘 가던 동네 바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한 것이 유일한 약속이었다. 해야 할 일은 사실 모두 끝나 있었다. 진인사대천명. 무슨 천명(天命)까지 갈 거야 있겠냐마는, 일단은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참 답답한 일이었다. 


‘온라인 샵이라는 건 이런 게 문제로군. 실감이 안 난단 말이지.’


김필립은 피식 웃으며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여기저기 붙어있는 포스트잇과 여러 가지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참 많은 것들을 했구나. 생각해보면 지금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답답한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최근 몇 주간 가장 답답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의 코어 활동, 그러니까 상품 디자인 결정이나 생산,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제작 같은 것은 남들에게 다 맡겨버렸다는 것이었다.


정수미는 본격적으로 디자인이 시작되고 생산이 진행되자 아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일을 진행시켰다. 고민되는 부분은 명확하게 장단점을 정리하여 선택지를 좁혀놓고 조언을 구했으며, 김필립이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납품해야 할 창고와 물류 쪽 일 진행이 늦어지자 아무렇지 않게 뛰어들어 프로세스를 정리했다. 정수미의 전공분야인 디자인이나 색상의 상품기획은 물론이고 상품 제작에서부터 고객의 손까지 들어가는 물리적인 이동에 관련된 모든 프로세스를 정수미는 혼자서 척척 알아서 했다.


오프라인에서 상품이 움직이는 것을 정수미가 도맡아 처리했다고 한다면, 온라인에는 이수지가 있었다. 에이전시와 같이 일을 안 했으면 어느 세월에 이걸 다 준비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수지는 꼼꼼하면서도 확실하게 디지털 컨슈머 저니를 책임졌다. 처음 브리핑 때 적절한 광고 채널을 제안하겠다는 이중구 팀장의 말대로, 연령 및 성별과 관심분야로 타겟팅을 한 인스타그램 광고와 유튜브에서 초급 요가 레슨 동영상을 보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핀포인트 광고를 기획해 왔다. 크리에이티브도 상품용 사진을 최대한 활용하고 비용이 들어가는 모델을 기용한 스튜디오 촬영 같은 것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제작했고, 동영상 대신 슬라이드 쇼 같은 기법을 사용해서 제작비를 최소화하는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물론 대기업 경쟁사들에 비하자면 초라한 비주얼이었지만, 오히려 심플한 느낌이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더 집중이 되는 장점도 있었다. 키워드의 경우는 경쟁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비싼 키워드를 피하고 반드시 잡아야 하지만 저렴한 키워드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가장 키워드 경쟁이 심한 네이버를 피해, 구글이나 다음 등의 검색 엔진을 이용하는 방법도 동원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수지는 김필립이 자잘한 것을 신경 쓰지 않도록 결정된 사항을 착착 실행에 옮겼으며, 어떤 크리에이티브가 언제까지 완성이 돼야 하는지, 어떤 광고가 언제부터 실행될지 등등의 스케줄 관리까지도 알아서 집행했던 것이다. 원래 에이전시가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잘해주는지 처음 일 해보는 김필립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찌 됐든 지금 이수지가 없으면 모든 스케줄이 늦어지리라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기 때문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 주변이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정작 김필립은 법인 설립이나 법인 통장 개설, 법인 등기, 세무사 상담, 사무실 계약 같이 사업 자체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에 붙들려 있었다. 오히려 이런 일들이야 말로 법인 대표인 김필립 이외에 할만한 사람도 없었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많았던 것이다. 중심적인 비즈니스에 신경을 못 쓰는 상황에 답답함이 반, 불안함이 반인 마음으로 요 몇 주간을 지내왔지만, 정수미와 이수지는 정말 자신이 생각해 왔던 그대로 일을 진행시켜 주었고, 덕분에 아무런 사고나 이변 없이 오늘 상품을 런칭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필립이 ‘상관없는 일’을 잘 진행시킨 덕택에 얼마 전부터는 공유 사무실이긴 하지만 출근을 할 수 있는 사무실도 생겼고, 상품을 판매하면 돈을 받을 수 있는 은행 계좌도 생겼고, 무엇보다 당당히 법률적으로 인정된 회사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걸 혼자 다 하려고 했는지…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다니까.’


처음 몇 달 동안 머리를 싸매고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끙끙대던 때가 떠올랐다. 아라 누나한테 도와달라고 한 것이 신의 한수였어. 처음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을 깨닫던 날이 기억나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수지가 어제 보내왔던 웹사이트 3차 구성안을 훑어본 후, 아직 좀 이른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여유롭게 맥주라도 먼저 마시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수미는 소재를 알아보느라 업체를 둘러보고 시간에 맞춰 바에 바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아직 따가운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바로 향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바에 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같이 드나들던 장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느낌을 즐기며 김필립은 바로 들어섰다.


“어? 누나가 왜 벌써 여기 와 있어?”

“아? 일찍 오셨네, 김 사장님?”

“어이쿠, 사장님 오셨는가? 여기 똑똑한 아가씨가 사장님 자랑을 얼마나 하시는지, 아까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네.”

“아이고, 사장님은 무슨 사장님이에요, 사장님. 아직 물건 하나도 못 판 생초짜인데. 누나는 회사는 어쩌고 벌써부터 여기 와서 마시고 있어?”

“아하하, 오늘 여기 가까운 데에서 외부 회의가 있었는데 일찍 끝나서 그냥 그대로 퇴근한 거야. 지난주에 프로젝트 끝나서 좀 여유 있으니까, 쉴 땐 쉬어 줘야지.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재미있게 놀아줘야 하는 것 아니겠어? 하하.”


왁자지껄하게 인사를 끝내고 흥겹게 건배를 했다. 이제야 정말 무언가 한 단계가 끝났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김필립은 최근 몇 주간의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으며, 자기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했는데, 정수미와 이수지가 너무 일을 잘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하하, 김필립 이제 정말 사장 같은데?”

“응? 뭐가?”

“부하직원 일도 잘 시키고,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신나 하는 걸 보니까.”

“어…? 그래? 하하. 아니야, 부하직원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김필립, 정수미 씨하고 이수지 씨가 네 뜻처럼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건 단순히 두 사람이 유능하기 때문만이 아니야.”

“응?”

“네가 처음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왜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수미 씨하고 수지 씨가 스스로 생각하고 일을 알아서 할 수 있었던 거야. 물론 두 사람 다 똑똑하고 네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했으니까 전략에 맞춰서 일을 한 것이겠지. 하지만 만약 네가 전략을 착실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지 않았다면 아무리 두 사람이 똑똑하다고 해도 일을 잘할 수 없었을 거야.”

“아… 그렇겠네.”

“앞으로 너는 그런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거야. 좋은 리더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야.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이지. 네 부하직원들은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너에게 브리핑을 받아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러니까 너는 그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정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주고, 방해물이 있으면 치워줘야 하는 거야. 그게 네가 할 일인 거야.”

“아… 그렇네. 뭔가 같이 일해야 되는데 라고 생각하고 초조해하고 있었어.”

“보통 리더가 옆에서 도와주는 건 똑똑한 사람한테는 방해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계만을 줄 뿐이지. 하하. 리더십에 관한 좋은 책들이 많으니까 시간 날 때마다 읽어. 정말 놀 시간 하나도 없네, 김필립.”

“어휴, 오늘도 맥주 마시지 말고 책이나 읽을 걸 그랬나?”

“무슨 소리야, 이렇게 놀 땐 놀아야 스트레스도 풀리지. 훌륭한 리더의 덕목 중 하나가 스트레스 관리야. 하하하. 농담처럼 말하지만 진짜라고. 나도 처음에 스트레스 관리 때문에 애 많이 먹었어.”

“누나가? 스트레스 하나도 안 받을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누나 같은 엘리트가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이 세상에 존재하긴 해?”

“이상한 소리 한다 또. 아무튼 리더가 스트레스 받으면 곤란해. 뚱한 표정하고 있으면 밑에 사람들이 말 걸기 힘들어진다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프로페셔널한 마인드인 거야.”

“누나, 지난번에는 마케팅에만 미친 줄 알았는데 그냥 일에 미친 사람이었구나…”

“이 자식이!”


또 한바탕 깔깔거리는 웃음이 바를 휩쓸고 있을 때 정수미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늦었나요? 분위기가 벌써 장난 아닌데요?”

“아! 수미 씨! 어서 오세요! 아라 누나, 이 분이 나랑 같이 일하시는 디자이너 정수미 씨야.”

“반가워요 수미 씨. 장아라라고 합니다. 우리 필립이가 신세 많이 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뇨, 신세는 제가 지고 있지요. 대표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수미라고 합니다.”

“정말 정수미 씨가 우리 다 먹여 살릴 것 같아. 그러고 보니까 우다다 수지 씨도 부를걸 그랬나?”

“아니야. 그쪽은 에이전시니까, 이쪽에선 편하게 불러도 수지 씨한테는 일이라고. 그나저나 이중구 팀장도 김필립 칭찬이 대단하던데? 잘하고 있나 봐?”

“맞아요, 저도 지난번에 상품 사진 촬영 때문에 수지 씨 만났는데 대표님 칭찬이 자자하시던데요?”

“어…어? 무슨 칭찬? 아니, 칭찬은 수지 씨가 들으셔야지. 오프라인에 정수미 씨라면 온라인에 이수지 씨인데.”

“맞아요. 수지 씨 일처리 진짜 끝장이시던데요?”

“이중구 팀장한테 들었는데, 이수지 씨 이번에 처음 어카운트 메인 담당이라서 전투력 풀파워라고 하더라. 하하. 김필립 복 받았어 아무튼. 좋은 에이전시 만나는 것도 정말 큰 복이니까 잘해보라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 내가 시작한 일이지만 더 이상 나만의 일이 아닌 일. 이제는 그저 단순히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더욱 커다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셋은 사업에 대한 이야기와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누나, 이제 이렇게 우리한테 조언해 줄 일도 별로 없을 텐데 졸업 선물로 마지막 한마디 해 줄만 한 거 없어?”

“너 벌써 지난번에 졸업한 거 아니야? 이제 별로 가르쳐 줄 것도 없어. 하하.”

“아라 부장님, 저도 얘기 한번 듣고 싶어요. 대표님한테 그렇게 많이 가르쳐 주셨다면서요.”

“어… 수미 씨, 정말 얘기할 거 없는데… 아, 그래. 김필립, 옛날에 이 가게 얘기하면서 센스가 남다르다고 한 것 기억나?”

“응? 그런 얘기를 했나…? 맞다! 맨 처음에 여기 사장님께서 말씀하실 때였지?”

“맞아. 너 그때 왜 집이 아니라 여기서 맥주를 마시는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지?”

“응. 조용하기도 하면서 생각하기도 좋고. 들어오면 뭔가 상쾌한 기분이 들고, 사람이 많아도 어수선하지 않고. 계속 오게 되는 이유가 있지.”

“자, 그러면 수미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들어볼까? 수미 씨는 여기 처음 오는데 어때요?”

“들어오니까 좋네요. 들어오기가 많이 힘들어서 그렇죠.”

“응? 수미 씨 그랬어?”

“후후훗, 네. 처음에 여기가 맞는지 밖에서 한참 살펴봤어요. 안이 들여다 보이는 것도 아니고, 문도 좀 엘레강스하다 그럴까, 평범한 술집 문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열면 바로 가게 안쪽이 아니고 무슨 복도처럼 생겨서 좀 걸어들어와야 되고…”

“어? 수미 씨 그게 싫었어? 난 그 문하고, 열고 나면 들어오는 입구가 실내인데도 정원처럼 자갈이 깔려 있어서 걷는 게 정말 좋던데…”

“아뇨, 싫은 건 아닌데 뭔가 다른 세상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하하하, 센스가 남다르다는 말이 무슨 얘기인지 알겠지? 이 바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이 바에 어울리는 사람들한테 편안하고,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좋아할 수밖에 없게 디자인이 되어 있어. 처음 오는 사람들이 편하게 문을 열게 하는 디자인이 아니라고. 김필립 너는 여기에 자주 와서 익숙해졌으니까 그런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한 거고, 수미 씨는 처음 오니까 그걸 확 느낀 거야. 사장님, 그렇게 생각하고 만드신 거 맞지요?”

“허허, 똑똑한 아가씨는 정말 모르는 게 없구만.”

“자세히 얘기 좀 해주세요. 여기 초보 사장님도 배우게요.”

“그래, 그럴까요?”


바텐더는 닦고 있던 유리잔을 내려놓더니 세 사람이 모여있는 쪽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가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들은 회사가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가볍게 한 잔 하는 직장인 고객들이네. 이 손님들은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잊고 상쾌한 마음으로 리프레쉬를 하고 싶어 하지. 그래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분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바깥 세상과의 단절’을 모티브로 입구를 디자인했네.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무의식적으로 바깥을 잊는 의식을 하게 한 거지. 이렇게 하면 처음 오는 손님들은 들어오기 힘들 거라고 디자이너 분도 얘기를 했지만, 한 번 이 느낌을 받은 손님은 반드시 계속 찾을 거라는 생각으로 과감히 밀어붙였네.”

“아, 사장님, 그거 지난번에 일본에 있는 바에서 느끼셨다는 그 해방감을 만드시려고…?”

“자네 잘 기억하고 있구먼. 맞아. 그 바는 복도 같은 디자인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영업해온 점포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노련한 바텐더들의 대응이 손님들에게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을 가져다준 거지. 처음 이 가게를 만들 때 나는 그런 것을 흉내 낼 자신은 없었으니, 점포 면적을 깎아 내서라도 그런 장치를 만든 거라네.”

“사장님, 대단하시네요…”

“대단한 게 아니라네. 바는 단골장사지. 한 번 온 손님을 반드시 다시 오게 만들기 위해 내 나름대로 짠 전략인 거네. 어찌어찌 잘 먹혀 들어갔는지, 그래도 이 자리에서 십 년 넘게 장사하고 있구먼.”

“역시 전략이군요. 저도 들어오고 나서는 정말 편안하다고 느꼈어요. 대표님, 우리 전략도 이렇게 잘 들어맞는 거 맞는 거죠?”

“어… 수미 씨, 그게 십 년도 넘으신 사장님하고 저하고 비교하시면…”

“하하하, 김필립, 그리고 수미 씨. 사장님 말씀에서 정말 중요한 거 하나. 이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조언이야. 단골을 만들어야 돼. 사장님 정말 감사해요.”

“단골?”

“단골이요?”


장아라가 한 이야기에 김필립과 정수미는 동시에 생각에 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직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으니 단골을 만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본 적 없구나? 하하하.”

“어, 솔직히 고객들이 처음 오는 것만 생각했지 다시 오는 것은 생각 안 했네. 온라인 쇼핑몰에도 그런 게 중요한지 고민도 안 해봤고.”

“새로운 고객을 한 명 잡는 것보다, 한 번 잡은 고객을 다시 놓치지 않는 것이 언제나 훨씬 비용이 적어. 자주 오는 고객 20%가 일으키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고. 처음 오는 고객을 만족시키고 다시 그 고객이 우리 매장에 돌아오게 할 이유를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거야. 이걸 보통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CRM이라고 부르지.”

“음… CRM이라… 정말 그런 쪽으로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 웹사이트 만들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고민해봐야겠는데?”

“맞아. 다른 쇼핑몰에서도 포인트 시스템 같은 프로그램은 많이들 쓰고 있으니까 잘 고민해 보라고. 특히 디지털 세상에서 CRM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네가 고객에 대해 아주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야. 어떤 상품을 샀는지, 언제 샀는지 같은 정보들이 있으니까 그거에 알맞은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그렇네요. 전에 어떤 상품을 샀는지 알면 다음번에 어떤 상품을 좋아할지 추천하기 쉬워지겠네요.”

“역시 이해가 빠르네요, 수미 씨. 김필립이 정말 복 받았는데?”

“솔직히 그건 인정.”

“하하하…”


다시 웃고 떠들며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갔다. 정식으로 축배를 들어야 된다며 김필립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장아라는 굳이 샴페인을 시켰고, 제대로 된 샴페인은 처음 마셔본다며 정수미는 좋아했다. 바텐더까지 함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건배를 했고, 김필립은 장아라의 건배사가 노친네 같다며 놀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취해 있는 사이, 바 탑 위에 놓여 있던 김필립의 휴대폰에 수신 알람이 들어왔다.


‘김 대표님, 이수지입니다. 방금 쇼핑몰 사이트 개설된 것 확인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쇼핑몰 방문객 수의 숫자가 1을 가리키고 있었다.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예전의 마케팅이나 비즈니스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고, 모든 전략의 최종적인 완성은 고객이 물건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의 개념이 발생하고,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와 평판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CRM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최초의 CRM은 고객들의 불평이나 불만을 해소하거나 상품의 불량을 접수하고 수리하는 식의 수동적인 개념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가 발전하고 회사들이 고객의 정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취득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CRM은 점점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특히 최근의 이커머스 환경은 소비자의 구매정보를 완벽히 손에 넣을 수 있고, 소비자에게 적시에 적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매우 편리하기 때문에 CRM은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한층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요.

스타벅스는 처음부터 CRM을 회사의 중심 마케팅 전략으로 삼아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매장에 자주 들르는 고객일수록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더욱 많이 구매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파악한 후, 고객들이 더욱 자주 매장을 방문하게 만들기 위해 고객의 이름을 부르거나 커스토마이징 커피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전개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등의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최근에도 다양한 굿즈를 출시하는 등,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많은 전략을 시행하고 있지요.

실제로 신규 고객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 소요되는 총비용을 계산해 보면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재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시대는 지나가고, 잡은 물고기를 더욱 크게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지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김필립도 언젠가는 자신의 고객을 갖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업가가 될 것입니다. 김필립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여러분의 사업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회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 그리고 나아가 회사의 가치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CRM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고리입니다.




EN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