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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일지.

세 가지 물병 - 7편

by 글쓰기 하는 토끼


착한 마녀님께.


병원의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저녁 9시 30분경 잠자리에 들어 아침 7시 10분에 일어나면 7시 30분에 아침식사가 나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의사 선생님 회진이 있고 간호사들이 체크하며 각 병실을 다닙니다. 그러면 오전 일과는 끝난 거예요. 우리는 주로 책을 읽거나 산책을 갑니다.


어제 옆자리에 두 살 아기가 왔습니다. 내내 우는 통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일은 하기 힘들었습니다.

아기는 엄마 껌딱지처럼 딱 붙어 떨어질 줄 몰랐어요. 그 바람에 아기 엄마는 링거를 맞고 있는 아기를 계속 안고 다녀야 했습니다. 아기는 '아빠, 아빠' 하면서 울더라고요. 병원에 와 보지 못하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일까요?


저도 집에 있으며 혼자 학교 다니는 딸을 며칠째 보지 못했습니다. 영상통화로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스스로 차려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 잘 갔는지 확인합니다.

5학년인 딸은 제법 똘똘이 잘하고 있어 안심입니다.


12시 30분이 되면 점심식사가 나옵니다. 오늘은 컵라면을 먹을까 어쩔까 고민 중이랍니다. 병동 배선대는 식사시간이 면 붐벼 5분 일찍 가 미리 라면에 물을 부어 나야 해요. 나름 바쁘답니다.

옆자리 아기와도 가끔 눈 마주치며 까꿍 해주어야 하고요.

벌써 오후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갑니다. 병원에 입원한 지 5일이 되었습니다.

아이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아 퇴원이 미지수입니다.


오후엔 또 책을 읽거나 공부도 조금 합니다. 아이는 주로 영화를 보고 산책을 갑니다. 꽃이 피었다며 좋아하더라고요.


빨리 나아 집에 가고 싶습니다.

오후 5시 30분 되면 저녁식사가 나옵니다. 밥을 먹고 잠시 쉬다 잠자리를 준비하고 또다시 잠을 잡니다.


이곳은 시간이란 게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멈춘 느낌이지만, 또 어느 순간 너무 빨라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시간이 사라지거나 도망간 느낌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요긴하게 쓰지 않으면 극과 극의 시간차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환자 입장에선 아파 죽겠는데 무슨 시간타령이야? 하겠지만 이제 막 중학교 입학시킨 아들놈이 주구장창 누워 있으니 엄마 입장에선 애가 타 미칠 노릇입니다.


건강해야 뭐라도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쉽게 포기가 되나요? 더군다나 이 동네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랍니다. 중3 아닌 게 어디냐며 감사해야 하는 건지 이제 막 중학교 입학한 거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마음을 비우러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착한 마녀님 다음 편지는 집에서 써서 보내고 싶습니다. 옆자리 아기가 계속 뭐라고 뭐라고 말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저희 집 중딩은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먹지 못하고 오심과 복통을 호소하고 있어요.

좋아지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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