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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찾아오는 아이.

by 글쓰기 하는 토끼


퇴원을 했다. 집에 가니 둘째가 눈물을 글썽이며 와락 안긴다. 6일 동안 아침에 혼자 일어나 학교 다녔으니 엄마도 보고 싶고 서럽기도 했으리라.

나는 아이를 토닥여 주고 잘했다 칭찬해 주었다.

입원했던 병원은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이다. 밥은 먹게끔 해서 퇴원시켜 주니 만족스럽다. 대학병원만 하더라도 엔간히 아파 입원하기 힘들다. 죽을 둥 살 둥 힘들어 나 좀 살려 줘 하고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도착한 들 병실 날 때까지 병원복도에 대기해야 한다. 침대라도 얻었으면 다행이다. 수술날짜 잡고 미리 예약을 하면 모를까 응급실로 가 입원할 수 있는 확률은 내 목숨 간당간당 하지 않는 한 참 어려운 일이다. 운 좋게 입원했어도 걷기만 걸으면 퇴원을 시켜 버린다.

그럼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픈 환자가 많다는 건가 아님 건강불안증으로 내 몸 어디가 아파 검사를 받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100세 시대에 걸맞지 않게 내 주변을 살펴보면 아픈 사람 천지다. 하긴 내 나이 감안하면 안 아픈 것이 용할 나이이긴 하나, 병원 문지방 다 닳아 없어질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말 다했다.


1호가 2월에 입원했을 땐 1인실을 썼다. 둘째 봐줄 사람이 없어 병실에 데리고 있을 요량으로 그리 했지만, 비싼 코로나 검사 비용과 병원 안에 일단 들어오면 퇴원할 때까지 외출이 어렵다는 통에 같이 있지 못했다.

1인실은 실로 퇴원하기 싫을 정도로 편했다. 때 되면 밥 주고 청소해 주고 밥도 잘 나왔다. 이번에 2인실을 써 보니 1인실 밥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인실을 쓰다 보면 옆자리 환자에 따라 불편함의 정도는 극과 극이다. 오히려 병을 옮지 않으면 다행이다 생각될 정도였다. 퇴원 전 같이 있던 환자는 독감 환자였다.

사람이 죽을 확률은 병에 걸려 죽을 확률과 병에 걸렸지만 치료받지 못해 죽을 확률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놀랍게도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죽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경우도 1인실에 입원해 있었을 때 충분히 쉬고 잘 먹고 간다는 느낌이었지만 2인실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보호자 침상이라는 것이 편할 리 없고 밥 또한 편의점 음식으로 주로 때웠다.

6인실에 계셨던 분들은 더 했을 것이다. 신경 써야 할 다른 환자가 5명이나 더 있으니 어디 제대로 편히 쉬다 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내가 20대 초반 어머니가 입원하셔서 병실에 들락날락했던 적이 있었다. 4인실이었고 어머니 맞은편 입원해 계신 더 연세가 지긋한 분이 계셨다. 종종 손자로 보이는 중3 정도 돼 보이는 아이만 왔다 갔다 했다.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 가만 듣게 되었다.


'할머니 돈 좀 주세요. 5천 원만 주세요.'

'할미 지금 입원해 있는데 돈이 어딨어? 입원비도 못 내고 있어 퇴원도 못하고 있는데.'


아이는 그런 할머니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끈질기게 할머니를 괴롭혔다. 나는 그 소리에 당장 가 돈을 쥐어 주고 애를 쫓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어 논 돈을 꺼내 눈시울을 붉히며 돈을 주었다. 거의 반강제로 빼앗겼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고도 그 아이는 몇 번 더 와 돈을 앗아 갔다. 할머니는 거의 체념한 듯 보였다. 부모 없이 할머니 혼자 아이를 키우시는 같았다. 간호사가 할머니에게 병원 명세서를 들이밀고 간 뒤 몇 시간 후 할머니 팔에 있던 링거가 마침내 걷히었다.

그리고 할머니 몸상태가 안 좋아 이런저런 검사를 더 해야 한다고 간호사는 여러 번 설명했다. 하지만 그 당시 여의치 않았던 할머니는 결국 퇴원을 하셨다. 난 아직도 병실에 와 할머니에게 돈을 뜯어 가는 그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무엇이 그리도 내 마음을 편치 못하게 했을까. 부모 없이 대신 손자를 알뜰히 키우시는 할머니가 애처로웠을까. 꼬깃꼬깃 비상금을 손자에게 빼앗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불편했을까. 아님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까지 와서 손을 내미는 처지의 아이가 보기 힘들었을까. 간호사의 병원 명세서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 퇴원을 결심한 할머니의 처량한 모습이었을까.

이 모든 문제가 아직도 사회 전반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편한 오늘이었다.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현실이야 말로 얼마나 참담한 심정을 갖게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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