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온 나는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커뮤니티 게시판을 확인했다. 채팅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혹시 만나고자 하시는 분은 만나셨나요?'
'왜 물어보세요?'
'못 만나셨나요?'
'왜 궁금하시죠?'
그 뒤로 답이 없었다.
나는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이런 거래는 결재가 되고 나면 상대방이 먼저 연락 오는 법은 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낸 쪽이 일이 잘못되든지 사기를 당해 찾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나는 다시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아쉬운 사람이 먼저 연락하게 되어 있으니 느긋이 기다릴 참이었다. 연락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거래 비용이 조금 과하기는 했지만 그런 걸로 트집 잡을 생각은 일절 없었다. 게시판을 쭉 훑어본 뒤 별다른 정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야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커피와 약간의 다과를 준비해 철수네 집으로 갔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철수 엄마. 나 영철이 엄마"
"어. 얼른 들어와.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뭐하고 있었어? 요즘 뭐 하는데 도통 얼굴이 안 보여?"
"나 보톡스 하고 필러 조금 했잖아. 호호호"
"정말? 안 아파? 어디서 했어? 얼마 주고 했어? 어쩐지 조금 달라 보이더라. 정말 어려 보이기는 하네."
"요 앞에 새로 생긴 마트 있잖아. 거기 입점해 있는 병원에서 오픈 할인을 많이 하길래 큰맘 먹고 한 거야. 따끔따끔 하긴 하더라. 이뻐지는데 그 정도 고통쯤이야 뭐. 호호호"
"그런데 있으면 같이 좀 가지. 그건 그렇고 시험지 사건은 뭐 좀 들은 얘기 없어?"
"아이고. 말도 마. 엄마들이 떼 지어 학교 찾아가고 난리도 아니었대. 시험을 새로 싹 다 다시 봐야 한다고 아주 으름장을 놓고 선생님들하고 싸우고. 아.. 우..."
"아니. 그 정도야? 그럼, 경찰에서는 뭐래? 뭐 새로운 얘기 있어?
"지금 증거도 못 찾고 있나 봐. 투명 핀으로 연결된 게 많아서 cctv도 안 찍혀 있고 아주 애먹는 모양이더라. 조만간 그 투명 핀 개발한 과학자 불러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대."
"빨리 해결해야 될 텐데 걱정이다. 그나저나 나도 좀 하게. 그 병원 정보 좀 알려 줘 봐."
"나 한 번 더 가야 되는데 그럼 같이 갈래?"
"언제 가는 날인데? 시간 맞으면 같이 가자"
"그래. 근데 커피 너무 맛있다. 그냥 오지 뭘 매일 이런 걸 갖고 와. 호호호. 잘 먹을게."
나는 철수 엄마와 이런저런 수다를 좀 더 한 후 집에 왔다.
'왜 궁금하시죠?'
수영이는 순간 당황했다.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락날락 한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시험지도 팔 수 없어 용돈도 넉넉하지 않은 데다 혹시 하는 마음에 정보를 하나 흘렸고, 금액도 나도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크게 불렀다. 그런데 그걸 사는 사람이 있었다. 수영이도 처음엔 적잖이 놀랐다. 시험지 파는 것보다 수입이 짭짤했다. 영 마음에 들었다. 입금도 바로 되었다.
수영이는 정보를 사 간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채팅을 남긴 것이다. 순간 아차 싶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느낌이다.
시험지 유출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경찰서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벌써 교육청으로 달려 들어가 무슨 사달이라도 낼 것처럼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수영이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숨도 안 쉬고 아주 조용히 있다 보면 이 사건도 조용히 묻히리라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만 부르르르 화를 낸다. 그리고 양은 냄비 끓듯 하다 어느 순간 재미 없어지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이다. 수영이는 지금 이 사건도 그렇게 되기를 매일 빌었다. 그런데 채팅을 남긴 것이다. 수영이는 후회하며 앞으로 절대 글은 올리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모든 글을 지우고 탈퇴를 했다.
이 소유는 그 아줌마를 만난 후 더 마음이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부모님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줌마랑 부모님께 이 일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이 소유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다. 엄마는 중학교 선생님, 아빠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사회적 지위 때문인지 상당히 엄격해서 한 치의 오차도 잘 허용하지 않는 분들이셨다. 딸의 이런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알 수 없었다. 소유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불안이 심해졌다. 성적도 좋지 않아 부모님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소유는 수영을 만나기로 결정했다. 수영이를 만나서 같이 경찰서에 가자고 할 생각이다. 사람이 죄짓고는 못 산다더니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수영이가 싫다고 하면 혼자서라도 경찰서에 가 진술을 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에게 말씀드릴 바에야 차라리 이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음날, 소유는 수영이를 만났다.
"우리 같이 경찰서 가서 자수하자."
"내가 왜?"
"왜 라니?"
"하려면 너 나 해. 하지만 난 빼죠."
"그럼 넌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거니?"
"잘못이 있고 없고 간에 난 경찰서에 안 갈 거야. 그리고 너도 다시 생각해. 우리 앞날 창창한데 너 어쩌려고 경찰서에 간다는 거니? 아니 막말로 증거도 없는 판국에 우릴 무슨 수로 잡아넣을 건데? 네가 경찰서에 가든 안 가든 자유인데 괜히 이 일로 나까지 잘못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가만히 조금만 기다리면 없었던 일처럼 될 텐데 무슨 호들갑이야? 이래서 공부 못하는 애들 끼워 주면 안 된다니깐."
"뭐라고? 너 말 다했어?"
소유는 수영이의 이런 안하무인 태도에 입이 쩍 벌어졌다. 애는 도대체 하늘도 무섭지 않은 애인가 보다. 수영이를 설득하는 일은 힘들어 보였다.
'흠. 나도 조금만 더 버텨 볼까? 그러다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소유는 수영이를 만나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럼 너는 이대로 모른척하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애당초 시험지를 사간 애들이 잘못이지. 그럼 시험지 사간 애들도 모조리 잡아들어야지. 왜 우리만 독박을 써야 하니?"
시험지를 사간 애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한 학교에 적어도 20명은 넘으니 5명의 아이들의 각자 학교 학생들만 합쳐도 100명이 넘는 숫자였다. 수영이 말도 일리는 있었다. 시험지를 사간 아이들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소유도 생각했다. 그중에 어른들도 있었으니 그 처벌 수위가 우리들보다 약하더라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소유는 자신이 이 일을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았다. 그 아줌마를 다시 만나 상의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영이와 헤어졌다.
이 소유 학생의 연락을 받은 나는 커피숍에서 소유 학생의 말을 경청하며 들었다. 나는 수영이라는 학생이 생각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아들이 좋아하는 여학생인데 이 정도일까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또한, 아들이 왜 그렇게 마음이 돌아섰는지 그 심정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영철이로부터, 과학자를 만나 투명 핀에 있었던 그간의 일들을 모두 복구했고 증거자료를 다 확보했다는 사실을 듣고 온 터였다. 이 소유 학생은 부모님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경찰서에 가 진술하고 무거운 짐을 털어 버리고 맘 편히 지내고 싶은데, 경찰서에 혹시 같이 가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소유 학생을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그 길로 소유 학생 엄마가 있는 중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당 중학교 교무실에 나는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네. 1학년 2반 선생님 좀 만나 뵈러 왔는데요"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김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이 소유 학생 어머님이시죠?
"안녕하세요? 누구신가요?"
"네, 저는 구영철 학생 엄마라고 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나는 그간의 일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시험지 사건이라면 워낙 유명해 중학교 선생님인 소유 엄마가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인의 딸이 연루되어 있다는 얘기에 소유 엄마는 나의 얘기를 중단시키고 따로 만나 얘기하자며 돌려보냈다.
커피숍에 이 소유 학생 부모님과 마주 앉은 나는 심각한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얘기했다. 소유의 마음이 어떠한지도 말했다.
이 소유 학생 부모님은 딸이 경찰서에 가 진술하겠다는 말을 듣고 안절부절 매우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증거를 다 확보했고 지금 가서 스스로 자수하고 진술하면 정상참작이 될 것이니, 소유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유 학생 부모님은 소유를 혼내지 않는 조건으로 3일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촉박하니 이틀 후에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이틀 후 경찰서에 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