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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Jul 07. 2022

보석찾기를 기억하는 법 | 산딸기 코블러

하지 - 15시간의 낮

"아, 저기 있다!"


한국의 학교답게 나의 모교 뒤에도 작은 산이 있었다. 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낮은 산이었지만 그만큼 부담 없이 자주 가기 좋았다. 늦봄까지 만발했던 꽃들은 이맘때면 대부분 지고, 나무는 하나 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벚꽃이 진 자리에는 버찌가 익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에는 뱀딸기가 열린다. 어린 나의 눈에는 다 맛있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먹을 수 없는 열매들이었다.


그중 딱 하나,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바로 산책로 옆에 숨겨져 있던 산딸기였다. 지금에서야 왜 산책로 한편에 산딸기나무가 심어져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입에 넣을 수 있는 열매를 직접 딸 수 있다는 사실에 즐겁기만 했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작은 열매를 찾아내면 산딸기나무의 가시에 찔리지 않게, 산딸기가 짓눌리지 않게 조심해가며 딴다. 그렇게 딴 한 두 알의 산딸기는 참 시고 딱딱했는데, 그게 마냥 즐거웠더랬다.


산딸기는 딸기와 다르게 씨 하나를 과육이 둘러싸고, 그런 알맹이들이 모여 하나의 개체를 만든다. 향은 적지만 상큼한 맛, 씹는 맛이 있는 씨, 그리고 그 연약하고 보드라운 촉감이 딸기와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과일을 생과로 즐길 수 있는 기간은 일 년 중 겨우 2주 남짓이다. 뽕나무의 오디도 그렇다. 계절을 즐기기 위해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다. 성미 급한 제철 과일을 한데 모아 딱 이때만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어 보자.




코블러는 제철 과일을 즐기기에 최적화 된 디저트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과일에 설탕을 묻히고, 그 위로 밀가루 반죽만 올려 구우면 된다. 그리고 거기에 아이스크림을 더한다면, 작은 디저트 스푼이 더 작게 느껴질 정도로 맛있는 코블러가 완성된다.


반죽은 버터와 우유를 듬뿍 넣고 설탕은 줄인 비스킷 반죽으로 준비한다. 차가운 버터를 밀가루에 넣고 작게 자르고 설탕과 소금을 녹인 우유를 붓는다. 우유가 밀가루에 닿는 순간 재료 각각의 고소한 향이 한데 어우러져 '훅'하고 코로 들어온다. 그 향을 잠깐 즐긴 후 버터가 녹지 않게 얼른 반죽을 뭉쳐 냉장고에 넣는다.

반죽 속 버터가 차갑게 굳어가는 동안 산딸기와 오디를 베이스로 베리 필링을 만든다. 베리는 그때그때 구하기 쉽고 좋아하는 종류로 준비하면 된다. 나의 베리 필링은 루비색의 산딸기부터 검붉은 체리, 블루베리와 검정에 가까운 자주색의 오디까지 아낌없이 들어갔다.

베리 필링은 과일을 비슷한 크기로 준비하고, 설탕과 전분을 넣은 뒤 볼을 흔들어가며 섞는다. 주걱이나 손으로 섞으면 짓무르기 쉽기 때문에 가볍게 흔들어 섞는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과일에서는 상큼한 향만 옅게 날뿐, 쉽게 떠올리는 체리향이나 딸기향이 나지 않는다. 구워내더라도 인공적인 향이 아닌 상큼한 과일향만 진해진다.

베리 필링을 듬뿍 담고, 그 위로 차가워진 반죽을 밀어 덮어준다. 필링이 넘치지 않게 구멍을 내고, 우유와 설탕을 뿌려 오븐에서 구워낸다. 높은 온도로 구워낸 비스킷 반죽은 우유와 설탕 덕분에 황금색으로 물들고, 나뭇잎 모양 구멍 사이로는 보랏빛 필링이 엿보인다.

그 어릴 적 나뭇잎 사이에 숨겨진 산딸기를 발견한 마음으로, 나뭇잎 모양 구멍이 난 바삭한 비스킷 반죽 사이로 베리 필링을 건네어 바라본다. 나만의 레시피를 성공적으로 완성해 냈을 때의 기쁨은 산책로에 숨어있던 빨간 보석을 찾아냈을 때의 기쁨과 다를 바가 없다.


딱 알맞게 구워져 한껏 증폭된 베리의 상큼한 향과 비스킷 반죽의 달콤한 버터향은 조금도 참기 힘들다. 얼른 그 위로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숟가락으로 깊게 떠서 한입 크게 먹는다.

그 큰 한입에 아직 뜨거운 코블러와 차가운 아이스크림 사이의 온도차가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밀려온다. 비스킷의 윗면은 한참을 바삭하지만, 아래쪽은 촉촉한 필링과 어우러져 다양한 식감도 입안 한가득 들어찬다.


상큼 바삭 달콤. 삼박자가 절묘하게 이루어 낸 여름의 반짝이는 즐거움, 빨간 보석 같은 산딸기 코블러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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