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선물이라는 이름의 복수

by rabyell Jan 17. 2025

"선배님 안녕하세요."

먼저 출근한 팀 막내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사수가 팀장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이 친구 때문이다. 오래도록 팀 막내였던 솔 아래로 신입사원이 들어온 것이다.


"응, 안녕."


신입이 들어오면서 선배들의 관심은 막내에게로 옮겨갔다. 솔은 그간 회사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덜 애써도 되겠다 싶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속마음숨겨지지 않는 모양이다.


"오, 솔이 안녕? 오랜만이네. 요즘 분위기가 많이 밝아진 것 같아! 후배가 생겨서 그런가?"

오랜만에 본 아래층 선배가 인사만으로 표정을 읽었다. 솔이 속마음을 숨기는데 소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간 과하게 경직돼 있었던 탓에 그 사이로 끼어든 미소가 유난히 눈에 띠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래층 선배의 추측은 절반쯤 맞았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솔은 모임에서 막내일 때, 본인이 챙겨줄 누군가가 없을 때 굉장히 불안해한다. K-장녀의 표본인 그녀의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다. 막내가 들어오자 그제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선배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나머지 절반은 복수 덕분이었다. 사수의 돌팔매질을 향한 작은 복수의 성공. 모두 루나의 에그타르트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건 솔에게 있어 알코올 같은 것이었데, 꼭꼭 숨겨놓은 진심을 터트리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그저 조용히 일을 잘하는 사람의 탈을 쓰고 있었던 솔에게, 그 속에 숨어 있던 복수심을 남몰래 불태울 수 있게 했다.


사실이야 이렇더라도, 솔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깨달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원 솔의 인격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리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흐린 맛 에그타르트는 여유를 선물해 줬다.


  




최근 집으로 향하는 루나의 발걸음은 다른 때보다 가볍다. 흐린 맛 에그타르트를 잔뜩 굽고 나면 스트레스나 우울함, 이런 먹구름 잔뜩 낀 감정이 마음속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매출이 좋은 탓도 있다. '티 내지 않고 복수를 할 수 있다니!'라는 감탄의 리뷰가 잔뜩 달렸다. '복수가 절실한 사람이 세상에 참 많은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루나는 본인의 꾸무리한 감정을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실감이 안 난다.


맑은 맛은 만들려면 햇빛 충전이 필수였는데, 흐린 맛은 그저 일상만 살아내도 재료가 되는 감정이 충만해진다. 스트레스가 디폴트 값인 삶은 현대인의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루나는 한동안 흐린 맛 에그타르트를 구워내는데 여념이 없을 것 같다.

이전 08화 흐린 맛의 존재이유 - 3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