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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Dec 22. 2020

열네 번째 짝사랑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요즘의 새내기들도 그런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난 후 나는 세상이 달리 보였다. 칙칙하게 드리웠던 암막 커튼이 걷힌 후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열네 번째 정도 되는 짝사랑남을 만나게 되는데 혹여나 내 대학생활이 멜랑콜리했다면 단연코 그 오빠님 탓이 크다.


세상에.. 열네 번째 순번쯤 되는 짝사랑남에 대해 좀 쓰려고 했더니만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정.. 뭐였던 것 같은데 그냥 정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도대체 뭣 때문에 정을 좋아하게 되었던가 기억을 쥐어짜 내 보니... 생각이 난다!


신입생 환영회였다. 그때는 떼로 모여서 밥술을 많이 먹던 시절이었다. 모였다 하면 30, 40명씩 모였던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하고 장기자랑도 하던 자리였는데, 93학번 이라면서 일어선 남학생이 불현듯 최성원의 '매일 그대와'를 무반주로 뻔뻔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다들 분위기 처지는 노래를 부른다면서 한 마디씩 했던 것 같다. 나만 눈에 하트 뿅뿅 이었겠지. 고작 노래 한 곡에.


그 날 이후로 정의 꽁무니를 몰래 쫓아다니곤 했다. 정은 키에 비해 다리가 긴 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청바지를 입은 뒤태는 볼만했었다. 그때는 허옇게 물 빠진 청바지를 몸에 꼭 맞게 입은 게 유행이었다. 스키니 정도는 아니었지만 슬림핏으로 다리 길이를 뽐내는 남자들이 많았다. 여하간 정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그의 엉덩이를 힐끔거렸던 게 생각난다. 그럼에도 지금 생각해 보면 못난 얼굴이었다. 여드름이 덕지덕지 난 피부에 도수가 높은 안경을 써서 눈이 작아 보였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던 어느 날, 뒷짐을 진 그의 손에 'Kino'가 들려 있는 걸 보게 된다. 그걸 발견한 순간에 '운명의 징소리' 같은 게 귓가에 울렸다. 1995 년 창간된 Kino는 속물들이 즐겨 읽는 영화 잡지였다. 더불어 씨네 21도 그 해에 창간이 되었는데 그가 Kino와 씨네 21을 번갈아 들고 다니는 걸 보고서 그와 나는 운명의 한 쌍이 될 거라는 헛된 예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나 역시 Kino와 씨네 21을 창간호부터 사 모으던 속물이었던 것이다. 굳이 속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Kino의 대부분의 기사는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특히 정성일 편집장의 글을 읽을 때면 한국말이 이 정도로까지 이해가 안 된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하루키를 읽었다. 내 주변의 남학우들 중에 그만이 유일하게 하루키를 읽었다. 그 시절의 하루키는 지금의 하루키와 격이 달랐다. 그의 소설은 가히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할 만큼 혁신적이었다. <상실의 시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같을 수는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본 별로 찾아 읽었고 (역시 한 번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에) 레이먼드 카버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흠모하게 되었다. 정이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와타나베 토루의 현신이 되었다. 그는 내가 그리던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내가 읽는 책을 읽고 내가 보는 영화를 보는 남자. 그렇다면 우리는 말도 통할 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놈의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정은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다. 이해가 갈만한 외모의 같은 과 선배 언니였다. 까만 눈동자가 얼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 눈망울이 여전히 기억나는 걸 보니 강력한 인상이었던 건 확실하다. 약간 주걱턱이었지만 눈이 사슴인데 그 깟 주걱턱쯤이야. 어떻게 걸어 다니나 싶게 몸도 호리호리했다. 여하간 그때나 지금이나 66과 77을 오가는 사이즈인 데다 입술이 얼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외모의 선배였다. 그 선배는 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가 옆에서 '정이 너 좋아하잖아'라고 얘기하면 '징그럽게 왜 그래~'라면서 몸서리를 쳤다. 복에 겨웠다고 할 밖에. 여하튼 나는 정의 뒤통수를, 정은 사슴눈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관계가 한참 지속되다 마침내 정이 군의 호출을 받게 된다.


누가 죽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슬플까 싶게 나는 정의 입대가 슬펐다. 정의 입대날을 며칠 앞두고 결국 나는 고백을 하게 되는데 이 일을 두고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던 이유는, 그간의 극성 탓에 이미 모두가 나의 짝사랑을 알고 있었던 탓이다. 정은 나의 고백에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시절의 정과 사슴눈, 그리고 내 친구들을 떠올려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지금이니까 웃음이 나온다. 그때는 웃을 수 없었다. 그들이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데도 도통 궁금하지가 않다. 그들은 그때의 모습 그대로 박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웃을 수 있지 않겠나.


하루키의 새로운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읽으면서 뭔가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내용은 그럴만 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냥 좀 욱신거렸다. 노인이 된 하루키를 본 탓이다.

하루키는 학창 시절 소녀들이 할머니가 된 것을 볼 때 세월을 실감한다고 책에 썼던데 나는 그런 소리를 하는 하루키의 노년을 읽고 있자니 세월이 실감이 되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것이 대학교 1학년 때였으니까 하루키가 나이 드는 동안 나도 나름 나이가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은 읽지 않은 게 없다. 어떤 때에는 안 읽은 줄 알고 같은 걸 또 사서 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줄거리를 말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말할 만한게 없을 만큼 모든 책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든 줄거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잡았다 하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게 하루키 책의 매력이 아닌가. 소설이든 에세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고백컨데 한 때 하루키의 팬이라는 것을 숨겼던 때가 있었다. 속물 근성 때문이다. 너도 나도 하루키가 좋다는데 굳이 나까지 나설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의 작품이 그만한 찬사를 받을만 한가 의심이 들기도 했던 탓이다. 무엇보다도 책장에 하루키보다는 까뮈가 꼳혀 있는 게 더 그럴듯 해 보일거라는 헛된 허영심이 있었다는 걸 부인 못하겠다.


이른 한 살이 된 하루키는 엊그제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발표했다.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그가 얼마나 더 많은 작품을 내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마 이게 마지막은 아니겠지. 그런 저런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하루키가 할아버지가 되었구나 혀를 끌끌 차다가 하루키가 나이 든 만큼 모두가 나이가 들었네 라는 당연한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다. 하루키가 어떤 작가로 남을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그가 나와 동시대를 산다는 것에 훨씬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닐까.


작가와 그의 책이 인생에 가져다준 풍요로움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독 하루키는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루키를 읽는 행위에 깊은 의미가 담긴다. 그의 소설은 해가 떴다 지고 계절이 왔다 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는 친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한 시대를 살고 있는 행운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아무리 피츠제럴드가 훌륭했다 한들 나는 그의 후대에 살고 있으니 시공간으로 겹칠일이 없는 죽은 작가일  뿐이다. 반면 하루키의 작품은 나와 같이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가고 있는 있는 것이다. 어떤 작가를 이렇게 가까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누가 뭐라든 <일인칭 단수>는 옛날을 회상하게 하는 책이다. 그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젊은 한 날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 그 덕에 나도 열네 번째 순번의 짝사랑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루키의 의도가 그것이었기를 바라고 내가 그 의미를 이해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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