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와 무지개(1)

별난 캠핑

by 스토리텔러 레이첼

말을 왜 저렇게 할까? K는 남편 P안의 소년을 바라본다. 10대에 하고픈 말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인지 P는 드라마 속의 청소년처럼 말투가 거칠다. 질풍노도와도 같았을 청소년 시기를 보여주는 몇 장 남지 않은 사진 속 P의 모습은 비딱하다. 자칭 모범생이었던 K에게 P는 아직도 소년이다. 어쩌면 P는 아내보다는 엄마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K 안에 쪼그리고 앉은 소녀가 그 역할을 감당 할리가 만무하다.


K는 언젠가부터 자주 체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가끔은 뿔난 염소처럼 P를 받아버리고 싶다. 그가 종종 던지는 말은 마치 수탉이 발로 모이를 다 헤치듯 그녀의 자존심을 흩어 놓았다. "해라"라는 명령조의 말을 오랜 시간 듣다 보니 자꾸만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항의해도 그의 말버릇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아내인 K는 점점 처럼 말하는 그와 대화를 하기보다는 안전하고 포근한 자기만의 요새 속으로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숨어버리려 했다. 그녀의 상상 속 요새에는 행복이라는 거푸집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음표로 만든 집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하며 달콤한 언어로만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가끔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턱시도를 입은 P가 달콤하게 "너만을 사랑해, 너라면 무엇을 해도 좋아"라며 들꽃 다발을 들고 등장하기도 했다. 따뜻한 말이 햇살에 반사된 크리스털처럼 반짝반짝하며 요새의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머물 때에만 행복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종종 도망치곤 했다.


바라는 것은 오로지 따뜻하고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현실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책도 많이 읽었고 대화의 화제로 올려서 조언을 구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도 정말 원하던 남편 P와의 소통만큼은 죽을 만큼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그 모든 것이 그 P의 말투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잘해주어서 자기편이 되게 하기 위해 늘 친절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저항이 가득했다. 그녀는 친절을 베풀어 친절로 대가를 얻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에 대해 절망했다. 무기력했다. 언제나 노력하면,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정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그 황당한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 콧김에서 훅훅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 그것을 사람들은 '화병'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자신과 상대방의 정서적 허기를 메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벌써 해결했을 것이다. K와 P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결혼생활에 성실했기 때문에 둘의 불협화음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편인 P는 소통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했기에 그나마 아내인 K가 먼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더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K는 그러하기에 더, 먼저, 많이 사랑하기로 선택했다. 사실 결혼하자마자 시작된 강도 높은 노력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이면서도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수수께끼는 또 없었다.


주말이 오자 K는 내키지가 않아하면서도 늘 그렇듯 남편이 하자는 대로 캠핑 준비를 했다. 둘 사이의 딸들도 고분고분하게 캠핑에 따라나섰다. 원래 자식들이란 그렇게 착한 존재들인가 보다 하면서 두 부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끝없이 뿌듯했다. 그러다가 그만 그게 큰코다치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들의 틈에서 벗어나겠다고? 그런 일이 가능해? 세띨중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어 있던 둘째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집을 뛰쳐나갔다. 집을 나길 때 딸은 메모를 한 장 남겼다. "아빠, 엄마에게 잘하세요!"였다.


충격에 몸져누울 수 없던 K는 세 딸들을 위해서라도 달라져야 했다. 늘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쩔쩔매는 엄마의 모습을 딸들도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참았던 시간이 덧없게 느껴져서 슬펐다. 그런가 하면 몸이 신호를 하고 있었다. 짓눌렀던 에너지가 몸의 면역체계를 교란시키고 있었다. 몸과 마음도 서로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K가 선택했던 삶의 생존수단은 '늘 참고 양보하자는 것'이었다. '착함'이라는 선택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주입된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상대도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대부분 그 믿음은 빗나가곤 했다. 자기 비하를 겸손이라고 착각했던 그녀는 억지로 웃는 피에로처럼 외로운 존재였다.


차창밖으로 갑작스럽게 펼쳐진 무지개를 바라보며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지른다.

"와 무지개다"

자연은 온유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지친 모습 그대로. 단 하룻밤만 자연에서 보낸다 해도 스트레스는 너끈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어떤 영화가 그런 감흥을 줄 수 있을까!

바람결에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나뭇잎이 어디로 가는지 바라본다. 그들처럼 왈츠를 추고 싶다.


저녁노을이 붉어주면 불장난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나무를 끌어다가 태운다. 통나무들은 밤새 탄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꽃은 몸과 마음속에 잔뜩 찌든 묵은 감정의 찌꺼기들도 녹여 버린다. K는 욕구불만을 탈탈 털어 태운다. 또한 불꽃의 황홀한 향연을 그저 바라보면서 아무 생각 없는 고독을 누린다. 부글부글 끓는 송진의 냄새가 향긋하다.



P는 타버린 나무껍질을 벅벅 긁고 있다. 불씨들이 하늘로 솟구친다. 불꽃같았던 지난날이었다. 정든 고국을 떠나 캐나다로 온 지 21년이다. P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 북미주 트럭커로서 17년간 지구의 90바퀴에 해당하는 360만 킬로가 넘는 거리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 아내인 K가 자신보고 '이기적'이라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P는 타국에서 가장으로 사는 것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애초에 말로 힘듦을 표현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소리를 하는 대신 소리를 질렀다. 그 욕구는 자꾸만 엉뚱하게 여기저기서 짜증으로 튀어나왔다.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결혼 이후 그가 한 노동의 시간을 계산하면 가슴이 턱 막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끝이 없는, 견디기 힘든 현실이었다. 때로는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졸음을 견디고 미국의 어느 우범지대에서 잘 때에는 권총을 든 강도가 차로 뛰어들까 봐 노심초사했다. 극도로 탈진한 상태였다가 집에 도착하면 눈에 띄는 것이 아이들이 흐트러 놓은 장난감과 책이었다. P는 쉬고 싶었다. 다정한 말도, 풍성한 음식보다도 혼자만의 시간, 자신을 위해 엄마처럼 봉사하는 아내가 필요했다.


아내인 K는 남편의 인정 어린 격려가 필요했다. 서로에게 필요한 사랑의 언어가 달랐다. 서로의 필요를 알리 없는 가운데 그들의 정서적 허기를 달랠 방법은 없을까? 떠나는 것이다. 늘 같은 언어를 쓰던 집을 나오고 보면 새로운 경험이 기다린다는 것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한껏 여유로워진 마음에서 배려가 우러난다. K는 집 밖에서는 요리를 하는 P가 끓여주는 라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남이 해주는 요리다. 평생 무급으로 일했던 조리사의 자유시간이다. 삶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주장하기보다 그저 눈앞의 불꽃 춤을 함께 바라보는 '불멍의 시간'은 둘을 한 몸으로 만든다. 서로의 가슴이 더 가까워지는 소리다.


2부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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