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에릭처럼

(feat.빛으로 남은 유령의 마음)

by Rachel

“빛은 늘 어둠을 지나 나에게 닿았다. 크리스틴처럼.”

저 문구는 에릭의 삶을 표현한 것 같아, 한번 끄적여봤다.


몇 달을 고민하다가 산 유리펜으로 처음 쓴 글은,
잉크의 색깔을 나타내는, 에릭의 이야기였다.


남보라빛 색깔에, 자주빛 테가 드러나는 에릭의 색

늘 오페라 극장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가끔 드러나는 그의 욕망처럼 붉은 자줏빛이 그를 생각나게 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오페라 극장에서 유령처럼 떠돌던 그의 무채색 현실에
색을 불어넣어준 단 한 사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 크리스틴.


크리스틴 역시 에릭을 사랑했지만, 그가 바라는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었다.

크리스틴이 진정 사랑하는 이가 라울이라는 걸 알아챈 에릭은

그녀를 납치해 결혼을 종용한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틴의 입맞춤을 받은 뒤 기꺼이 삶을 포기한 채 사라진다.

그녀의 동정만으로도 그의 사랑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채로.

에릭의 그 사랑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채,

조용히 막이 내린 뒤에도 무대의 어딘가에 여운으로 남았다.


그 이를 기다리며, 오늘도 어둠 속을 헤매는 에릭의 마음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 어둠을 지나온 나에게,
오늘도 작은 빛이 머문다고 믿는다.




아마 내 글도 그렇겠지.
누군가의 무대 뒤, 조용히 머물며
빛처럼 닿기를 바라며 남겨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