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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Aug 13. 2024

Tu es meu tudo

You are everything -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사랑받는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시각이 있다.

그 1인칭 시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모든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선입견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게 된다면 불평과 판단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 나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상황을 직면할 때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철학이나 선호 등을 잠시 내려놓고 투명한 배경이 되는 것을 에포케(Epoche)라고 한다. 그리스 철학에서 판단중지를 일컫는 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선천적 장애를 가진 August을 가족들은 헌신적으로 돌본다. 그의 신체적 장애는 외모에 대한 이질감으로도 이어져 평범한 아이들과는 너무나도 확연히 다른 구분을 지어버렸다. 그래서 Olivia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August의 누나로 알려지고 책임감과 독립심으로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동생의 수술로 인해 할머니와 보내게 된 몇 주의 시간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살펴주는 할머니의 존재는 장애 동생으로 가려진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사랑하고 받아들인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행복했던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다시 마주한 동생에 대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 순간이 있었다. 동생에 대한 맹목적인 이전의 자신의 모습과 다른 사람들처럼 동생을 바라보기 시작한 자신의 모습에서 잠시 그녀는 흔들렸다.

태양 같은 동생의 존재에 대해 당연히 생각했던 자신과 자신 또한 태양이 될 수 있구나에서 느낀 동생 존재에 대한 불편함을 말이다. (Wonder 소설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왜소한 큰오빠는 늘 관심을 부정적인 방법으로 이끌어 냈다. 오빠에 대한 기대나 사랑이 무조건적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반발 또는 자신에 대한 불만의 표현인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 주의를 끌었다. 그런 그에게 반사적인 반응으로 대응하는 가족들은 늘 불안과 화의 도가니로 서로를 비난했고 그런 나는 그 분위기의 피해자로 나를 인식한 시기들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나의 경험자아와 기억자아의 종합편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이 나의 가치나 판단 그리고 선입견으로 이어져 나만의 안경으로 세상을 받아들였구나라고 바라보는 메타자아가 또 존재한다.


화상을 입은 듯한 August의 외모는 눈에 띈다. 그를 바라보는 이보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바라보는 August의 반응에 가족은 더 민감해졌다. 쏟아지기 쉬운 찻잔의 물을 조심스럽게 다루듯 그 부모는 더 보살피고 열린 시야로 아이를 사랑하려고 많은 애를 쓴다. 그 모습에 August의 누나는 스스로 자신을 이렇게 달랜다. '너는 너의 일을 스스로 잘 해내야 해. 너는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해. 부모님이 힘들지 않게 해야 돼' 그렇게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의 경험이 자신을 꽉 채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할머니의 'Tu es meu tudo'(포르투갈어로 너는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 사랑이 그녀를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그 사랑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다. 자신도 태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Wonder 소설에서)


오빠의 일탈이 달갑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불편했고 불안했다. 조용히 방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늘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 내가 결혼하고 나서 어릴 때 느꼈던 긴장감의 그 오빠가 점차 불쌍하게 느껴졌다.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과 오빠의 사랑의 표현이 어떤지를 알게 된 순간 오빠에 대한 불편함은 불쌍함으로 바뀌었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되었다. 그의 행동이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자극과 반응 사이에 늘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나는 이유에는 서로의 판단과 비난이 먼저 보였기 때문이었다.


판단중지, 상대에 대해 잠시 나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판단을 묶어두고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은 공감의 시작일 것이다. 나의 잔영을 지우고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여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들으려 하고 이해하려는 그 시작에 서로에 대한 마음의 공간이 열린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려고 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묵은 보따리를 풀어낸다. 그 보따리의 내용물 하나하나를 보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분별하게 된다. 그것이 소중한지 버려도 될 것인지를.


나의 생각과 판단은 상대를 더 닫히게 한다. 그가 뒷걸음질하기 전에 그의 마음은 더 닫히게 된다. 그의 방어적 말과 행동이 비수가 되어 상대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또는 나에게 맞춰 주듯 진실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다. 반면에 나의 생각과 판단이 내려놓아지면 상대는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에 갑옷을 입히지 않는다. 더 이상 비수를 던지지도 않는다. 무겁다면 갑옷도 벗을 것이다.


Oliva가 할머니에게서 들은 'You are everything'이라는 말에 그녀는 동요했다.  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이 한쪽으로 쏠린다. 감정의 평정심보다는 물결침이 또 자신의 가치를 요동시키고 선호도를 움직인다. 판단중지라는 말 대신 이성과 감성사이에서 판단이 들어가게 된다. 나 또한 내가 기억한 오빠에 대한 경험과 나의 판단이 나의 감정을 고착시키고 하나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했었다. 나의 판단이 그분으로 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잠시 나의 판단을 묶어 두는 것, 그 마음으로 나와 상대를 대하는 시간이 있다면 많은 것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하얀 배경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배경 위에서 새로운 시작과 온전한 삶이 받아들여진다. 어떤 결핍이나 넘침도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고 표현하는 그런 배경을 말이다.


오늘 기분이 어때?

그렇구나. 그렇게 느끼는구나.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어?

그 하루는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

지금의 마음은 어떠니?

그렇구나 그런 마음이 드는구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자신의 흔적을 쫓아가며 그 마음이 어디서 왔을까 살펴보자.

자신이 어디를 행해 가고 싶은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보자.

가고자 하는 곳은 나에게 어떤 의미와 중요를 가지고 있는지도 살펴보자.

그러기 위해 오늘 하루 난 무엇을 하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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