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여기서 이러시면...

좋은데요?

by 마케터유정

다시 월요일 아침. 첫 번째 알람을 반사적으로 껐다. 눈을 감았다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거실로 나와 빳빳한 몸을 깨우는 스트레칭을 한다. 아직 정신은 멍하다. 얼마 안가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편이 들어왔다. 조깅을 하고 왔나 싶은데 단정한 옷차림이다. 남편은 표정이 약간 상기되어 있다. 나를 보더니 외투를 걸며 낄낄 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운동하고 올까 성당 다녀올까 고민하다가 새벽 미사 다녀왔거든.”

으로 시작하는 그의 입가에 웃음이 잔뜩 걸려 있다.


뭔데? 뭔데?


“웬일로 신부님 두 분이 같이 미사를 하시는 거야.”

미사는 보통 신부님 한분이 집전하는데 특별한 날에는 종종 두 분이나 혹은 셋 이상 같이 미사를 보기도 했다. 내 경험으로는 서품 받은 신부님이 첫 미사를 하는 경우 이를 축복하기 위해 아버지뻘인 주임 신부님과 같이 미사를 하거나 혹은 첫 영성체를 받는 아이들을 축하하는 경우 두 신부님이 같이 미사를 했다.

이렇게 신부님들이 함께 집전하는 미사는 일요일 교중미사(교회의 중심이 되는 미사)이며 성당에 따라 오전 11~12시에 시작한다. 그런데 일요일도 아니고 평일 그것도 새벽 6시 미사에 신부님 두 분이 나타나다니. 무슨 특별한 사유가 있었을까?


그러나 남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주임 신부님이 강론을 시작했어. 그러면 복사들은 보통 자기 자리로 가서 앉잖아. 부주임 신부님(신부님은 서품 받고 보좌-부주임-주임 순서대로 올라감)도 가서 앉더라고. 강론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지.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거야. 뭐야 했는데... 국악 한마당 보는 줄 알았어.” 남편은 아주 신이 나서 리얼하게 상모를 돌리며 졸고 있는 부주임 신부님의 흉내를 냈다.


전설의 상모 돌리기 '청춘시대2' 송지원(박은빈)


“꾸벅꾸벅은 아니네…”

남편의 말에 한마디 거들었다.

“그치? 아주 내가 귀한 걸 봤지.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본인도 느꼈는지 몇 번이나 허벅지를 때리고 하더라고. 그런데도 잠에서 못 깨더라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상모 돌리기를 뛰어넘는 화룡정점은 따로 있었다.


강론이 끝나고 성체성사 시간이 되었다. 신부님 두 분은 성체(동그랗고 납작한 밀떡을 사용함)를 담은 그릇을 가지고 제단을 내려와 한 줄로 선 신자들을 마주했다. 한 명 한 명 성체를 나누어 주는데 갑자기 쨍그랑하는 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잠에 취해 있던 부주임 신부님이 휘청휘청하더니 결국 성체 그릇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고요한 성당 안에서 성체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여느 때보다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청량하고 맑은 소리는 2층 성가대 뒤편에 앉은 남편의 귓가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아침부터 웃픈 사연을 들은 나는 신부님께는 죄송하지만 남편과 낄낄거릴 수밖에 없었다.

“신부님 밤새 뭐 하셨나?”

“하루 날 샜다고 그렇게 졸아?”


신부님이 왜 졸았는지에 대한 가설을 주고받던 중 갑자기 생각난 듯 남편이 말했다.

“장례미사가 있었대.”

여기 오기 전에도 장례미사 경험이 있겠지만 이곳에 부임한 지 이제 한 달 되었으니 우리 성당에서는 처음이지 싶었다.




사실 남편이 부주임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신부님이 새로 오시고 이틀 째 되던 날 미사를 다녀오더니 문득 신부님 얘기를 꺼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여기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90도로 고개를 숙였다는 것이다. 평소 미사를 다녀와서 신부님 얘기를 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많이 인상 깊었나 보다 여기고 말았다. 그 뒤에도 남편은 신부님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분은 강론이 정말 짧아.”

라는 기쁜 소식을 듣고는 ‘다행이다. 부주임 신부님이 보는 미사로 가야지.’하는 마음을 먹으려는 순간, 남편이 말을 이었다.
“근데 미사 시간은 똑같이 끝나.”


응? 그게 말이 돼?


추가로 하는 의식도 없고 강론도 짧은데 어떻게 미사 시간이 예전과 같을 수가 있다는 말일까. 남편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호경을 아주 정성 들여 그으시더라고.” 하며 다시 한번 신부님의 흉내를 냈다.

천천히 성호경(이마와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을 그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미사 시간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일까 싶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그으시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부주임 신부님에 대한 어그로를 잔뜩 끌어준 덕분에 돌아오는 일요일 미사 시간이 기다려졌다.

‘성호경을 얼마나 정성 들여 긋는 걸까?’

‘정말 강론이 짧을까 과연?’


궁금함을 가득 안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연두색 미사복을 입고 나타난 신부님은 제단에 서서 신자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하고 미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정성 들여 성호경을 긋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깊네. 깊어.


남편의 말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느덧 강론 시간이 되었다.

신부님은 마이크 앞에서 섰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사람들에게 태권도 자격증이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단상 가까이 앉은 신자들에게 집요하게 물어보더니 어린이들과 나누었던 얘기를 꺼냈다.

“요즘 태권도를 많이 다니더라고요. 태권도에서 줄넘기 등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어린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태권도를 이제 시작해서 흰띠인데 도복을 입고 만나면 인사해줄 거냐고요. 그랬더니 검은띠 정도는 되어야 아는 체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죠. 그러면 신부님이 사제복을 입고 만나면 그때는 인사를 해줄 거냐고. 그랬더니 고맙게도 이번에는 인사를 하겠답니다. 사실 태권도복을 입나 사제복을 입나 저는 저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혹시 예수님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으십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옷을 입든 그 자체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는 누군가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대했던 적은 없는지 떠올려봅니다. 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강론의 3박자에 젖어 있던 나로서는 마치 서론만 꺼내고 말을 마친 느낌이었다. 이렇게 짧고 강렬한 강론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너무 어색했다. 본론의 클라이맥스로 진입하려는 타이밍에 신부님의 강론은 끝나 있었다. 허를 찔린 기분. 처음으로 당황스러웠다. 강론의 이야기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가벼운 파격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속 잔잔한 호수에 무심코 던진 돌멩이 같았다. 이 파동이 가라앉기도 전에 오늘 남편에게 들은 얘기로 신부님은 다시 한번 내 마음에 물결을 일게 했다. 이번에는 집채만 한 바위를 던진 느낌이랄까.




짧지만 강렬했던 경험으로 부주임 신부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 남편과 나는 마침내 ‘신부님 새벽 미사 졸음 사건’에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하는 부주임 신부님은 장례미사에서 세상을 떠난 이와 유가족, 그리고 참석자 모두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미사를 집전했을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넋을 충분히 위로하고 장지까지 다녀왔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호경 마저 정성을 다하는 신부님이 미사 중에 저렇게 졸 수가 있을까. 그걸 알았던 주임 신부님은 원래 부주임 신부님이 집전해야 했을 미사를 대신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을까. 그 얘기를 듣고 부주임 신부님은 본인의 몫을 기어이 다 하겠다며 새벽 미사에 나왔던 것이다. 부주임 신부님이 정성을 다하는 새벽 미사에 남편은 운 좋게(?) 함께 있었다.


아침부터 길었던 담소 끝에 남편은 귀한 순간을 목도하였다며 흥얼대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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