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그림

조선통신사 문화교류 2-8

by 구경래

8. 통신사와 관련된 그림


통신사가 일본으로 갔을 때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때 조선과 일본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어. 그 가운데 가장 재미난 그림을 하나 알려줄게. 바로 하나부사 잇쵸(1652~1724)가 그린 ‘마상휘호도’야. 그림은 아래 사이트를 연결해 보면 돼.


https://m.blog.daum.net/inksarang/16878468?np_nil_a=1


하나부사 잇쵸는 에도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야. 잇쵸는 1652년 교토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열다섯 즈음에 에도로 가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어. 그러다 1698년 바쿠후 정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멀리 미야케지마란 섬으로 귀양을 갔고. 귀양을 간 뒤에는 섬에서 그림을 몰래 그려 팔기도 했대. 그런데 잇쵸는 왜 바쿠후를 비판해 귀양까지 가게 되었을까?


잇쵸가 귀양을 가기 전 일본에 새로 동물애호법이란 법이 만들어졌나 봐. 동물애호법은 5대 쇼군인 츠나요시가 제정한 거래. 츠나요시의 어머니 케이쇼인이 독실한 불교 신자라 동물의 생명도 중시한 까닭에 법을 제정했다는 설도 있어. 그런데 그보다는 츠나요시 쇼군 이전까지의 쇼군은 쇼군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철권통치에 매달린 반면, 츠나요시 쇼군 때는 바쿠후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경제도 나아졌으므로 무를 숭상하는 사회에서 문을 숭상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거든. 그러니 사회경제가 안정된 데다 불교의 동물애호사상을 받드는 츠나요시이므로 동물애호법을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 아무튼, 동물애호법이랑 잇쵸가 관련돼 있으니 그 법이 어떤 내용인지 좀 살펴봐야겠지?


동물애호법의 시작은 1685년이야. 주요한 내용은 쇼군과 관련된 거지. 즉, ‘쇼군이 지나갈 때 개와 고양이가 다녀도 괜찮다. 앞으로는 묶어두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래. 아마, 그전에는 쇼군이 행차할 때 개, 고양이를 묶어두었나 봐. 이게 에도시대 동물애호법의 시초라 할 수 있어. 그러다 1687년 본격적으로 동물의 살생을 금지하는 법령이 공표돼. 이름하여 생류연령(生類憐令)법이야. 일본말로는 ‘셔루이아와레미노레이’라 해.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개를 때리거나 죽이는 건 금지, 죽은 개는 주인이 좋은 땅을 골라 묻어주기, 개 호적대장 만들어 관리하기, 유기견 보호하기 등이야. 뭐, 여기까지는 좋지? 이후 차츰 그 법이 더해져 이제 어떤 생물이든 학대하면 사람이 처벌받도록 하는 법으로 발전하게 돼. 사람이 동물에게 먹이주기를 깜박하거나, 실수로 다치게 하거나, 병들게 하면 그 책임을 물어 사람을 처벌하는 거지. 심하면 목숨을 빼앗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동물을 보호하려는 쇼군의 의도와 무관하게 차츰 고통을 겪는 백성이 늘어나고, 결국 평민들 다수가 이 동물애호법을 싫어하게 된 거지.


잇쵸도 그 법을 비판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야. 그런데 잇쵸는 어떻게 그 동물애호법을 비판한 걸까? 간단해. 동물애호법을 비꼬아서 ‘달리는 말이 하는 말’이라는 풍자를 했다가 귀양살이 하게 된 거지. 왜 우리나라 조선 후기에 유명한 풍자문학의 대가라 할 수 있는 김삿갓 있잖아. 아마 김삿갓처럼 잇쵸도 그런 류의 풍자를 했나 봐. 그러다가 11년 만인가, 12년 만인가 1709년 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가 즉위했을 때 비로소 바쿠후로부터 특별사면을 받고 에도로 돌아갈 수 있었지. 그때만 해도 귀양이란 것은 어마하게 무서운 일이야. 오늘날로 치면 무기징역이나 다름없어. 그러니 죄를 면하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들어. 그러므로 잇쵸는 운이 좋아도 여간 좋은 게 아닌 덕에 에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야. 아무렇거나 그렇게 에도로 돌아간 잇쵸는 풍속화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일본 중세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로 우뚝 서게 된 거야. 그 잇쵸가 통신사와 관련해 그린 그림이 바로 ‘마상휘호도’지,


“이 그림은 1711년 통신사가 에도로 왔을 때 그린 겁니다. 그때만 해도 바쿠후의 명령에 따라 통신사 행렬 가까이로 백성이 다가오는 것을 아주 엄하게 막았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은 통신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왔으니 그 용기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림을 보면 이 사람이 통신사 행렬에 갑자기 뛰어든 것처럼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옷차림으로 봐서는 평범한 백성 같습니다. 그때 통신사로 나선 사람 가운데 인기가 좋았던 소동에게 달려간 걸 보니 영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닌성싶습니다! 게다가 미리 문방사우까지 즉, 붓과 벼루, 먹과 종이까지 준비해뒀다가 내놓았으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게요. 낯빛을 보니 여간 즐거운 게 아니네요. 마부에게는 벼루를 들리고, 자기는 종이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어 퍽 힘들 텐데도 전혀 힘든 낯빛이 아니군요!”

“반면, 그 사람과는 달리 말고삐를 쥔 마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급해 보이지 않습니까? 눈길이 앞선 행렬의 꽁무니만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손에는 벼루가 들려 있으니 당황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더구나 말 위에서 소동이 글을 쓰므로 흔들리면 안 될 테고, 그러려니 말이 버둥대지 못하도록 오른쪽 다리에 힘을 팍 주고 버터야 합니다. 게다가 소동은 마부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짐짓 태연하게 쓰지 않습니까?”


사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엄한 바쿠후의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통신사 일행에게 글을 얻고자 하는 일본 백성의 간절한 모습을 잘 엿볼 수 있어. 또, 정사와 부사의 심부름을 하는 소동까지 말을 탈 수 있도록 할 만큼 통신사를 깍듯이 모셨음을 알 수 있지. 아, 소동은 정사나 부사, 종사관 아래서 총무 일을 맡아 하는데, 시와 춤에도 능했어. 이 소동이 추는 춤이 얼마나 멋진지 오늘날에도 일본 오카야마현의 우시마도에서는 ‘가라코오도리’라 해서 소동춤이 남아있지. 소동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이야. 그러니 ‘마상휘호도’에서도 소동을 보면 머리를 길게 길러 세 갈래로 땋아 등 뒤로 늘어뜨리고 있기에 일본 화가 가운데는 소통이 여성인 줄로 착각해 그린 사람도 있다지 뭐야. 하여튼 통신사를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인 마상휘호도는 그렇게 탄생했대.

이번엔 국서전달에 관한 그림을 살펴볼게. ‘정덕원년 조선국서봉정행렬도’란 그림이 있어. 국사편찬위원에서 소장하고 있어. 현존하는 그림 중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남은 거지. 이 이름은 일본에서 지은 거야. 정덕이란 한자어는 일어로 하면 쇼토쿠야. 쇼토쿠는 에도바쿠후의 6대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노부가 1711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연호야. 그러니 정덕원년이라 함은 1711년을 뜻하는 거야. 당시 바쿠후로부터 통신사 행렬의 모습을 그려서 바치라는 명령을 쓰시마에 내렸거든. 그래서 일본 화가들이 그린 통신사 행렬도인 게지. 그림은 아래 사이트를 연결해 보면 돼.


https://m.blog.daum.net/gofor99/413


“이 그림은 1711년 통신사가 일본으로 왔을 때 그린 겁니다! ‘조선국신사도중행렬’, ‘조선국신사참착귀로행렬’, ‘조선국신사등성행렬’, ‘종대마수도중행렬’의 네 장면이 한 권의 그림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림을 보면 선두에 깃발이 보이지? 맨 앞의 것은 길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청도기, 그 다음은 용이 그려진 형명기가 있어, 그 뒤로 정사 조태억(1675~1728), 부사 임수간(1665~1721), 종사관 이방언(?~?), 국서, 제술관 이현(?~?)의 순서로 행차하는 모습이 보여. 이들을 호위하는 쓰시마 번의 무사들도 보이고. 이렇게 그림으로 남기면 글로 기록하는 것과 달리 사실감이며 생동감이 훨씬 더 와 닿겠지? 실제로 일본에서는 그림으로 통신사 행렬 모습을 남겨 다음 통신사 방문에 대비하기도 쉽고, 기록화로 남겨 자료로 활용하기도 좋으므로 에도 시대엔 종종 기록화를 남기기도 했어.


이런 통신사 행렬도는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외교 관계를 엿보는데 무척 소중한 거야. 왜냐하면, 조선과 일본 두 나라가 서로 국서를 교환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 평화로운 관계란 걸 뜻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런 그림은 기록화로써 그 가치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어. 오늘날에도 국가적인 큰 행사가 있으면 먼저 군악대나 취타대가 앞서고, 그 뒤를 각종 깃발이나 그 행사와 어울리는 무엇이 뒤따르잖아. 그것처럼 통신사 행렬도도 마찬가지야. 국서를 가운데 모시고, 여러 깃발을 앞세운 바로 그 뒤에 정사와 부사가 뒤따르고, 멀리는 통신사 행렬이 가져온 물건을 옮기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행렬의 모습을 한눈에 살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귀한 기록화가 없을 정도야.


‘마상휘호도’와 ‘정덕원년 조선국서봉정행렬도’ 두 그림만 봐도 통신사 행렬이 대단하다는 것, 통신사가 일본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어.


한편, 통신사도 일본으로 갈 때 화원을 데리고 갔거든. 화원은 조선 때 그림 그리는 일을 맡은 관청인 도화서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만 뽑았어. 그들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이르는 동안 일본 풍물을 그리는 일이래. 그 가운데 현존하는 그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사로승구도’야. 이 그림은 1748년 통신사로 나선 화원 이성린(1718~1777)이 그렸는데, 왕복 10개월 동안 주요 지역 서른 곳을 그린 거지. 모든 장면에는 제목이 있고, 각 지역의 풍경이나 모습, 인상적인 행사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야. 특히,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의 여정을 담은 우리 옛 그림은 이 작품이 유일하대. 이성린이 갈 때 스케치한 것을 돌아올 때 마저 보충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아래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으로 가면 그림 일부를 볼 수 있어.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40595


통신사로 따라나선 화원의 또 다른 임무는 일본에서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었대. 그림으로 두 나라의 선린외교를 뒷받침한 셈이지. 그래서일까, 화원 또한 숙소마다 찾아오는 일본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주느라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는 거야.


아무렇거나 조선의 화원이 남겼건, 일본의 화가가 그렸건 통신사와 관련된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두 나라의 평화로운 관계를 전해주고 있는 셈이야!


생각거리)


옛 그림 중 기록화나 산수화를 눈여겨보면 그림을 그린 의도를 금방 파악할 수 있어요. 따라서 옛 그림을 볼 때 그림에 나온 장면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상황인지 쉬 알 수 있지요. 통신사와 관련한 그림은 글까지 덧붙인 게 많으므로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림을 감상할 때 걸림돌이 없어요. 특히, 통신사 관련 그림처럼 소위 말하는 기록화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옛날의 그 장면 속으로 쏙 빨려들 수도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그러나 그렇더라도 자세히 살펴보기를 게을리하면 내용을 알 수 없어요. 기록화는 때때로 두루마리 그림으로 길게 이어진 것도 있어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기를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없이 전개되기도 하고요. 혹시 둘레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뭔가를 고민할 때 자기 눈에 그것만 들어오거나 한 기억은 없으세요? 그런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경험을 겪게 되었는지 서로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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