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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원인간 지니 Aug 31. 2022

그라데이션 분노 아니, 그라데이션 질병

병원인간 10년, 병이 병을 불러왔다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찾지 못해 정말 많은 진료를 보고 나서야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후기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병과 함께 살아오며 느낀 것은 '세상에는 정말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깟 병 하나가 나를 1년 365일 병원에 메여있는 병원인간으로 살게 할 줄은 몰랐으니.


병을 진단받고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3년쯤 지나 루푸스가 신장을 침범해 루푸스 신염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약 치료제가 나와 임상 실험에 참여하게 되었고(국내에서 50여 명이 참여하는데 선발되었고) 1대 1 무작위 배정(*신약과 위약을 50%의 확률로 무작위 투약하여 비교)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이야, 병원인간~! 또 운이 좋게 신약이 얻어걸렸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탈 병원인간으로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중, 문제가 생겼다.

머리가 술술 빠지기 시작하더니, 두피가 얇게 벗겨지면서 진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여름에!

동네 피부과에서는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2개월 정도를 지내다 낫지 않는 상태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은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두피 조직검사를 거치고 나서야 '루푸스 피부염'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전신질환의 시작이었다. 매일 베개보를 갈아야 할 정도로 진물이 나고, 낮에는 내 머리에서 나는 진물 냄새에 내가 짜증이 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본인이 감겨줘도 되는 게 맞는 건지 의심할 정도로 두피가 모두 벗겨져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 치료법은 간단하고, 지독했다. 증상이 있는 두피의 모공 하나하나에 스테로이드 주사제를 주입하는 것. 빠진 머리들은 다시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두 계절이 지났다.

진물이 흐르는 머리를 가려주던 그 시절 나의 호크룩스 모자 (a.k.a. 국립공원직원룩 / 다이소에서 5천원 주고 샀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 치료가 잘 끝나고 새로운 머리가 자라며 드문드문 잔디 머리가 올라오기 시작할 즈음, 다시 단백뇨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한 번 겪어봤으니 괜찮지!라는 마음으로 병원에 당장 입원해 신장 조직검사를 다시 하고, 치료 계획을 세워보자는 의사의 말에 "혹시, 급한 걸까요? 제가 회사에 다니는 중이라 지금은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은데."라는 말을 꺼냈고, 이 분야의 명의라 불리는 할아버지 의사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부탁을 좀 합시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의사가 환자에게 부탁하다니 이번에는 진짜 큰일이 벌어졌구나 라는 생각뿐이었고 그 길로 다시 회사에 출근해 병가를 제출했다. 이직한 회사에 출근한 지 겨우 한 달이 되던 날 벌어진 일이었다.


신장 조직 검사의 결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임상실험 전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을 뿐이었다. 우리는 치료계획을 바꿔 조금 더 강경한 대응을 하기로 했고 이름하여 "충격요법". 기존에 2알 정도를 먹던 스테로이드를 몸무게에 맞춰 최대 용량으로 높이는. 그리고, 그것이 점점 깊어지는 그라데이션 질병의 시작이었다. 약은 병을 치료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약들의 부작용이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장의 협주곡을 만들어냈다.


총 몇 번의 경기가 열리는지, 상대편은 누구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다짜고짜 감독을 맡게 되어버린 지독하게 외롭고, 무거운 경기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던 TEAM 지니에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 이 시기 잘 지나가 줬으면 좋겠는데요..

과연, TEAM 지니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지 궁금해집니다.


루푸스 신염으로 부종이 시작되었고, 부종 치료를 위해 먹은 이뇨제는 나를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가는 오줌싸개로 만들었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투약은 일명 '문페이스'라 불리는 살은 찌지 않았는데 얼굴이 잔뜩 부어오르고(대충 라면을 먹고 일어나 얼굴이 부은 상태가 지속되는 상태), 하루에 두 끼도 버거워하던 사람이 하루 세끼를 챙겨 먹고, 세상 소식가였던 사람이 밥 한 공기를 뚝딱하는 식욕 증진과 온몸에 털이란 털은 쑥쑥 자라는 다모증까지. 매일 하나씩 추가되는 부작용에 정신을 못 차리던 날들을 지나고 나니, 더 이상 거울을 볼 수 없는 내가 되어있었다. 한 달 전의 나와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너무 달라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상태. 부종으로 아침, 저녁으로 5kg가 차이나는 몸으로 얻은 튼살은 덤이었다.


문페이스가 뭐냐고요? 바로 이겁니다. 두 사진은 불과 3개월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요. 턱선과 얇은 목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먹는 약이 주는 증상들은 버거웠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수치에 위안을 받으며 맞은 발병 10주년. 무언가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10년을 맞았으니 그동안 마음을 보듬어주고, 응원해주고, 도움을 준 지인들을 불러 모아 '발병 10주년 파티'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부작사부작 일을 벌이고 있었는데 아니, 정말 일이 벌어져버렸다. 더 큰일이.


시작은 역시나 작고, 사소했다.

진료를 보며 뱉은 한마디.

'요즘 골반 쪽이 좀 뻐근해요.'라는 말이었다.


관절에 통증은 당연히 있으니, 혹시나?라는 마음으로 뱉은 한마디에 할아버지 의사는 '음… 3년 전쯤에도 아프다고 했었네요. 그때 MRI에서는 문제 없었는데, 혹시 모르니 이번에 한 번 더 찍어볼까요?'라고 운을 뗐고, 통증의 원인을 찾으면 치료를 하면 되지. 이왕이면 확실하게!라는 생각으로 추가 검사에 들어갔다. 무려 60만 원짜리 검사! 잠깐 어안이 벙벙해져 진료비 명세서를 다시 쳐다보았지만 병원인간 세상에만 있는 ‘60만 원에 안심을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는 환자식 계산법이 적용되었다.

지금봐도 손 떨리는 진료계산서. 여러분, 비급여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진료실은 평소와 다르게 긴장감 넘치는 침묵이 맴돌았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네요. 아무래도 스테로이드 부작용 같네요."

- 아. 아… 음… 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사고 회로가 멈춰버렸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병명 중에 최악의 병명이었다. '제발, 이것만은 아니었으면'이라고 생각했던 그 병명. 뼈에도 무수히 많은 혈관이 있는데,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뼈 끝부분의 혈관까지 피가 닿지 않아 뼈가 그대로, 뼈조직이 죽어버리는 병. 치료 방법은 단 하나. 죽어버린 뼈를 도려내고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것.


활동성이 좋은 사람이, 전국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농산물 MD로 일하던 내가. 더 이상 잘 걷지 못한다고? 더 이상 뛸 수 없다고? 서른 살에게는 너무 가혹한 병명이었다.


10년, 그래 병원을 다니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빼고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내가 터진 눈물을 어쩌지 못해 그대로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진료실을 나오던 날.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쓸 여력도 없이 그대로 걷다가 주저앉아 울던 날.


10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단어를 떠올렸다. ‘원망'

정말 단 한 번도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던 내가, 처음으로 대상 없는 원망이라는 걸 했다. 왜. 하필. 나에게. 나 진짜 나쁜 짓한 적 없는데. 그냥 이건 '너 그냥 망해버려라!' 아닌가?


아, TEAM 지니 휘청이고 있습니다.

친구 중에 마음 포지션이 부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안타깝습니다.

아! TEAM 지니. 결국 경기장을 뛰쳐나가버리는군요.


그날 이후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무력해졌다. 모든 것이 멈췄다. 일도, 생활도. 모두. 병명을 꺼내기만 하면 눈물이 터져서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상태를 굳이 공유할 필요 없이 알고 있던  매일 보던 동료(이자 단짝 친구)와 매일 같이 놀러 다녔다. 더 못 걷기 전에 한 발짝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으로. 또,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절망이 몰려들어 나를 괴롭혔으니까. 생각의 끝은 자기혐오였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서야 마음을 아주 조금  추스를 수 있었다. 딱 그만큼.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 만큼만.


아래와 같은 행복 회로를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다 못해 팔이 부서져라 돌려서.

'너 못 걸으면 휠체어 내가 끌어줌. 지난번에 너 다리 부러졌을 때, 나 잘했음. SSAP가능' (친구 1)
'야, 어떻게든 간병은 내가 해볼게. 애들 다 불러, 간병 스케줄 짜야해.' (친구 2)
'근데, 서른 살에 지팡이 짚고 다니면 좀 간지 나지 않냐? 영국 직구로 꽃무늬 지팡이 하나 살까? 세미 관종 나쁘지 않아!' (본인)
'인공관절 하면 키가 좀 더 커진대. 개이득 아니냐?' (본인)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고부터는 나의 고관절을 맡길 의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관절이 일을 안 하니,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근육 재활 치료도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마음에 드는 의사와 트레이너 선생님을 찾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일상으로 돌아오니 불안이 찾아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언제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수술할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직을 알아보던 참에 이번엔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고관절 괴사가 시작되면 무릎으로 체중이 실리며 통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무릎은 지켜야지!라는 생각으로 찾은 관절재활의학과에서 뜻밖의 병명이 추가됐다.

X-ray 촬영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슬관절(무릎) 무혈성 골괴사'


무려 양쪽 모두! 이야. 대단합니다. 몸친구.

무릎이 아픈 게 체중 부하가 아니라 뼈가 무너지는 통증이었군요.

아주 멋집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인한 무혈성 골괴사는 전신의 모든 관절에 생길 수 있다고 한다.


'MRI로 정밀검사를 해볼까요?'라는 의사의 말에 '엑스레이로도 저렇게 잘 보이는데 뭐하러 찍나요. 다음에 더 아파져서 수술해야 할 때 올게요.'라는 대답을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한 번 얻어터진 경험이 있어서인가 이번엔, 울지 않았다. 근데 정말 쎄게, 정말 쎄-게 얻어터진 느낌이었다. 점수차를 더 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큰 점수로 지고 있는 경기에서 자포자기 상태로 있다가 한 점을 더 내준 마음. 헛웃음 말고는 나오지 않는.


아, 저런! TEAM 지니에 시련이 닥쳤네요.

친구가 새로운 증상을 내보였습니다.

이제 고관절과 무릎의 싸움입니다.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 그것이 관건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이젠 무릎 수술을 할 의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발병 10주년 파티는 기억에서 지워진 채 10주년의 해가 지났다.


평범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증상에 익숙해지는 일상을 보낸 지 3개월. 드라마에서도 항상 그렇듯 사건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어느 평범한 날 벌어졌다. 또다시.


'국가 건강 검진 결과'

자궁경부에서 반응성 세포 변화를 보임.

추가 검사를 필요로 함.


검사를 했던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이런 결과는 흔하니,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봐야 직성이 풀리는 병원인간은 다시 찾은 류마티스내과 진료에서 '선생님 지난번 건강 검진에서 자궁경부 쪽에 세포 변화가 있다고 하는데,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의사는 '지금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고, 루푸스 환자들은 면역이 약해서 자궁경부 쪽도 약할 수 있어요. 혹시 모르니 산부인과도 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협진 의뢰서 써드릴게요.'라는 답을 내었다. 아 잠깐만, 지금 나 살짝 설레는데. 이거, 불안한데?


자궁경부암 검사와 HPV 바이러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전화 진료는 처음이라 잔뜩 쫄아있는데 의사의 첫마디가 한 방에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한번 더 오셔야겠는데요? 자궁경부 이형성증 2기인데, 조직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다시 찾은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마치고 받은 병명은 최악의 최악을 갱신하는 병명이었다.

'자궁경부암 0기, 상피내암(제자리암)'

조직까지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표면에는 암 병변이 퍼져있는 상태.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 가까운 몸이기에 보통은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많지만 본인은 그렇지 못한 상태.


희귀난치질환으로 등록된 산정특례에 암 진단 산정특례를 더하는 건 순간이었다.

몇 번의 서명으로 모든 등록이 끝나는. 아 맞다. 나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지. 다행인가? 다행이겠지. 그래, 그렇고말고. 아니 근데 잠깐만. 아무리 삼재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올해는 날삼재라며, 작년에 비하면 나아진다며? 작년에 발병 10년 기념 액땜 아니었냐고요. 사주 이거 믿을게 안되네 진짜. 역시 이 세상에 믿을 건 없는 게 맞네 맞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아주 무겁고, 무서운 병명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방어는커녕,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는 내 증상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류마티스내과, 신장내과, 피부과에서 끝날 줄 알았던 협진이 산부인과, 정형외과, 관절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까지 이어졌다.


병을 진단받고 10년이 되어서야, 병원인간의 삶이 시작되었다.

병을 낫게 해주는 줄로만 알았던 약이 새로운 부작용을, 새로운 병명을 가져왔다.

그것도 아주 다양하게. 루푸스, 고관절 괴사, 무릎 괴사 그리고 자궁경부암까지.


병원인간이 가장 많이 듣는 말 best 5 중 하나. "절대 안정을 권합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맞아, 환자가 그런 거였지. 언제든, 어디서든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증상이 나올 수 있는 상태. 병원에 다닌 지 10년이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아질 법도 한데 좌절과 슬픔 또 분노가 문득문득 올라오다가 불쑥 억울함이 튀어나오고 다시 조금 괜찮아졌다는 행복 회로를 돌리다가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10년이 지나서야, 운이 좋은 줄만 알았던 내가 사실은 운이 안 좋은 사람임을 알아버렸다.

이 글을 쓰기까지 12년이 걸렸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5년이 걸렸고, 쓰는데 이틀이 걸렸다. 아직도 나도 다 받아들이지 못한 이 무거운 병명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써야만 했다. 내가 나를 싫어하는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운이 좋지 않아도,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야 용기를 내 병원인간 글을 쓰며 숨어있는 병원인간들에게 멀리서 안녕을 전하고 싶다. 이 지긋지긋하고 무거운 병명들의 무게를 견디며.


10년을 지나서야 비로소 병원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2살을 맞은 TEAM 지니!

오늘의 상태 어떤가요?

아, 그런 말이 있죠. 전략 중에 최고의 전략은 버티기다.

몸 친구의 전략에 넘어가면 안됩니다.

일단 버텨야 다음 기회를 또 노려볼 수 있습니다.

지금 상태 유지만 해도 너무 대단하고 멋진 시기입니다.

TEAM 지니, 멋진 버티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


건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회에 숨어있는 수많은 병원인간들이 늘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고, 아주 가끔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서른한 살.

대학교 입학, 졸업, 취업 그리고 퇴사까지 나의 의지만큼 의사의 소견도 중요한 몸을 가졌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 커리어와 함께 병명도 쌓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병원인간이라 부른다.

늙음은 아픔이 용인되지만 젊음에게는 아픔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천천히,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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