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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원인간 지니 Oct 09. 2022

대학병원 진료가 처음인가요?

쫄지말자. 대학병원 스탭 바이 스탭


내가 병원인간임을 밝히고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응원을 가득 담은 사랑고백은 물론이고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오해나 편견을 가지고 있던 깊은 고백까지. 무엇보다 가장 많은 고백은 병에 대한 고백이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병의 무게들을 덜어갈 수도 없지만. 병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가슴 벅찬 고백들이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으니까.



나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래. 너무 무서워. 어떡해야 해?


몸에 대한 무서움은 한순간에 갑자기 찾아온다. 건강한 몸이 기본값이라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건강염려증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에이, 뭐 이 정도 가지고 병원을 가? 병원은 더 아파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병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당연히 그랬으니까.


그렇기에 크고 작은 증상으로 찾은 동네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전해 들은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보셔야겠는데요?"라는 말이 더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큰 병원에? 내가? 평소에 병원에 다닐 일도 없던 내가? 갑자기?



대학 병원에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충격에 가득 찬 마음을 다독이기도 전에 무서움이라는 감각이 먼저 머리를 점령한다. 손으로는 증상과 관련된 병명을 열심히 검색한다. 병을 이미 앓고 있는 환자들의 글들이, 치료방법이 쏟아진다. 무서움은 더 커진다. 병원에 가면 되는 건가? 어느 병원에 가야 하지? 돈은 얼마나 나오지? 미치겠다. 그리고 이 글을 클릭해 읽고 있는 사람 중에 이 고민의 단계에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대학병원에 가기 위해 당신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STEP 1. 진료의뢰서 준비하기


대학병원(상급종합병원)은 3차 의료기관으로 1차(의원) 2차(전문병원, 종합병원) 보다 더 많은 병상수와 의사를 보유하고 있다. 더 다양한 질환을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나 진료를 볼 수는 있다. 아니, 정정한다. 아무나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며 진료를 볼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진료의뢰서'인데 대략적으로 추정되는 증상과 병명을 적어 정밀 검사를 의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강검진 혹은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먼저 말하지 않아도 의사 선생님이 서류를 작성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단계는 넘어가도 좋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

증상이 있지만 진료의뢰서를 받지 못했거나 건강검진 결과지 속 '추가 검진을 요합니다.'는 문장을 접했다면? 해당 질병과 관련이 있는 근처 1차 병원(내과,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등)으로 가자. 그리고 진료를 보면 된다. 그리고 증상을 말하고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으면 된다.


진료의뢰서 발급은 첫 진료뿐만 아니라 A대학병원에서 B대학병원으로 옮길 때도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기존에 진료받던 의사에게 요청해 받으면 된다.

진료의뢰서. 대학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기존에 진료를 받던 대학병원에서 발급 받았다. ⓒ병원인간 지니



STEP 2. 병원과 의사를 찾기


보통 질병에 따라 유명한 의사가 있다. 진료의뢰서를 발급해준 의사가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맞는 의사'를 찾는 것이다.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이냐 묻는다면 가장 친한 친구여도 쉽게 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교통(접근 편의성) / 의사의 능력(치료 사례 및 경험치) / 시설, 장비 등 개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를 다닐 때는 교통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고, 몸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는 나와 맞는 의사 혹은 치료 경험이 많은 의사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당신의 선택에 (아주 조금의) 도움을 주기 위해 단점을 알려주자면.


교통이 좋지 않은 곳에 병원을 간다면, 일단 병원에 가기 전부터 모든 체력이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지하철역에서 멀어 셔틀버스를 꼭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경우, 혹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좋은 경우 병원 안에서 겪는 체력소모와 더불어 이동의 체력소모가 추가될 가능성이 몹시 높다.


의사의 능력이 뛰어난 병원에 간다면, 다음 스텝에서 설명하겠지만 예약 전쟁이 펼쳐진다. 진료를 보기 위해 예약을 잡는 것 자체가 힘들고, 운이 좋게 예약을 잡아 진료를 본다고 해도 진료 지연은 피할 수 없다. 환자는 넘치고 의사는 단 한 명뿐이니까. 이 말은, 병원 체류시간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설과 장비가 최신식인 좋은 병원에 간다면, 당연한 말인데…(닌 경우도 물론 있다만) 비급여 진료비가 타 병원에 비해 비쌀 가능성이 높다. 병원비는 급여와 비급여 진료비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급여 진료비는 고지 의무만 있을 뿐 금액의 상한선이 없다. 병원이 정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질환에 따라 다르겠지만, 진료비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조건을 갖춘 의사인지 병원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의사의 사진을 보며 인상이라도, 상세 진료과목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검색해 의사의 진료 후기라도. 병원의 위치든 의사의 인상이든. 하나라도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으니까.


병원 선택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의 의사와 병원 말고 적어도 3개 정도의 후보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과정이다. 왜 후보군이 필요한지는 아래의 단계를 통해 설명하겠다.


STEP 3. 예약하기


(확신할 수 없지만) 마음에 드는 병원과 의사를 찾았다면 이제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예약 전쟁. 순서는 간단하다. 병원에 전화를 한다. 예약을 한다.


우리가 할 멘트는 하나로 정해져 있다.

"A과(진료과목) B선생님(의사 이름) 진료 예약하려 합니다. 언제 가능한가요?"


이후에는 정해진(상담사의 안내) 순서에 따라 환자 정보를 전달하고 예약을 완료하면 된다.


의사가 인기가 좋을수록, 병원의 규모가 클수록 예약 센터의 전화연결과 빠른 진료날짜를 잡는 것이 어렵다. 국내 탑 3 병원이라 불리는 곳을 예약하기 위해 30통의 전화를 걸기도, 10분이 넘는 대기 시간 이후에 상담원 연결이 되는 경우가 너무 당연해져 버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기가 좋은 의사일수록 예약이 가능한 날짜가 멀리- 저-멀-리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 가장 빠른 예약 날짜는 *개월 뒤입니다."라는 담당자의 답변이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렇다면 포기하느냐 아니다. 일단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아놓는다. 나의 1순위였으니까.


그리고 2단계에서 만난 다른 후보군의 병원에도 똑같은 절차를 밟아 예약을 한다. 너무 많은 병원을 가는 것도 체력적, 경제적 힘듦을 가져오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기를 권장한다. 병명이 확실하고, 치료가 당장 필요할 경우 최대 3곳 정도. 병명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빠르게 병의 상태를 알아보기를 원한다면 후보군 중에 가장 가까운 일정이 가능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마음 건강에 좋다. 일단 병을 정확히 진단받고 나의 병을 치료할 의사는 나중에 바꿔도 된다.


여기서 병원인간들끼리만의 매너는 예약을 해놓고 가지 않아도 될 경우, 취소 전화를 병원에 한다. 그 자리를 원하는 다른 환자가 갈 수 있도록. 이런 매너는 우리끼리 조금 더 챙기기로 하자.


병원 예약은 언제나 전쟁이다.


STEP 4. 기다리기 그리고 조금만 쫄아 있기


병원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동안은 병원인간이 겪는 무간지옥이라는 고통의 영역에 들어선다. 내가 선택한 의사가 정말 괜찮은 의사일까? 내 병명은 뭘까? 나 진짜 큰 병이면 어쩌지? 검색에 검색에 검색을 더해서 불안이 쌓여만 간다.


그리고 노래 가사가 머리를 스쳐간다.

기.다.리.다.가. 지.친.다. 

you know. 넌 내 맘 아

하루가 지나도 난 너(예약)를 못 잊어

한 달이 지나도 난 너(의사)를 못 놔

너를 기다리다 지쳐 미치고

또 하루하루 매일 같이 일 년이 같고

오 난 나 나 나

(2pm, 기다리다 지친다)

출처 : sbs 인기가요 / 준호야 사랑해.....!


몸의 증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힘든데 나를 놀리듯이 내 눈앞에서 깐족거리는 짓을 하는 게 생겼다면 그건 바로 ‘혹시나’라는 단어다. 앉으나 서나 눈을 감으나 뜨나 ‘혹시나’라는 생각이 나를 파도처럼 덮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 당연한 감정이다.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안정보다는 불안에 조금 더 가까우니까. 다만, 당신이 조금만 덜 쫄아있기를 바란다. 쫄아있는다고해서, 매일 증상을 검색한다고 해서, 걱정에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없다. 아직 우리는 병명을 진단받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쫄아있자. 혹시나라는 단어와 함께 역시나 (아니었어)라는 단어도 함께 마음에 담아서


STEP 5. 증상과 궁금증 정리하기


병원 예약을 마치고 나면 후련한 게 아니라 걱정이 더 배가 되는데 손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은 의사가 내리겠지만, 우리는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의사에게 주어야 한다.


‘정확한 정보’라 함은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얼마나 자주 있는지, 어떤 형태로 있는지 내가 나를 관찰한 정보를 말한다. 나도 의사를 처음 보지만, 의사도 나를 처음 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병의 진단에 있어서 검사 결과 등의 정보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와 상황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내가 언제 아픈지, 어떤 상황에서 불편을 느끼는지, 통증이 혹은 증상이 어느 정도 빈도로 나타나는지, 어떤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지. 내가 나를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내 상태를 더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증상을 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종종 뒤지게 아팠는데 병원에만 가면 멀쩡 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분명 어젯밤까지, 오늘 새벽까지 아팠는데 말이다. 일단 병원을 가면 다행이지만 병원에서는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는데 병원을 나오자마자 귀신같이 통증이 몰려온다. 이게 바로 몸 친구가 몸 새끼가 되는 과정이다. 친구의 배신…


하나만 기억하자. 우리가 병원에 가겠다 마음먹는 것은 병원에 가있는 지금 당장 통증이 없더라도 증상이 있었고, 증상의 원인을 찾고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STEP 6. 병원 가기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하지만, 정말 고생은 지금부터다. 일단 병원에 가기 전 날은 필요한 서류(진료의뢰서, 검사 결과물 등)를 챙겨놓고 빨리 잠에 들기를 권고한다. 왜냐하면 내일은 같은 면적에서 볼 수 있는 정말 많은 수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 말 그대로 사람이 득실득실한 곳에 나도 일조를 하러 가는 날이니까. 체력을 비축해두자.


오늘 우리의 마음가짐은 하나다 ‘시간을 잊자’

그리고 병원 이후의 일정들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잡기로 약속한다. 


진료 예약 시간보다 30분~1시간 정도 일찍 병원에 방문해 미리 안내받은 '처음 오시는 분 안내 창구'를 방문한다. 보통 대략적인 위치와 정보들은 병원에서 사전 안내 문자로 발송된다. 필요 서류를 확인하고, 환자 등록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예약된 진료과로 이동하게 된다. 대학병원의 시작과 끝은 '수납'인데 병원마다 정책이 다르니 안내를 받아 진행하기를 바란다.

진료 전 병원에서 받은 안내 메세지 ⓒ병원인간 지니

이제 진료를 보기 전까지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많은 병원인간들 사이에서 병원인간 1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병원인간의 제1 덕목 '인내심'이 필요하다. 예약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진료실에 들어가지 못했어도 참을 인을 새기며 기다리기로 한다.


진료실에서는 의사와 우리가 준비한 증상들과 정보들을 나누며 진료를 보고 나오길 바란다. 보통 초진의 경우 진료에서 끝나지 않고 추가 검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일에 되지 않는 검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우리는 다시 마음에 새기기로 한다. 병원인간의 제1 덕목은 '인내심'임을.

도착접수증. 시스템이 가장 중요한 대학병원에서 빠른 진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 ⓒ병원인간 지니



자, 이제 시작이야

병원인간이 되는 길은 참을 인을 마음속에 수백 번 새기는 일을 반복한다. 기다림은 계속되고, 수많은 사람들에 치인다.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병원의 시스템과 응대 속에서 화는 나지만 화를 낼, 화의 대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해자가 없는 사건 속에서 피해자만 속출한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은 곳에서 병을 더 얻고 가는 것 같은 기분. 그 속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병원에 가는 것은 나의 상태를 내가 더 잘 알기 위해서, 나의 몸의 증상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얻기 위해서 가는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 병원에 처음 다녀온 당신을 위해, 병원에 가기 위해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당신을 위해 오늘의 글이 아주 조금의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진료실 앞에서 내 이름의 순번을 보며 기다리는 순간. 스스로 병원인간임을 가장 격렬하게 느끼는 순간. ⓒ병원인간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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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대학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들지만,

아직도 병원에 가는 날은 꽤나 힘이 듭니다.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고, 아주 가끔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서른한 살.

대학교 입학, 졸업, 취업 그리고 퇴사까지 나의 의지만큼 의사의 소견도 중요한 몸을 가졌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사람. 커리어와 함께 병명도 쌓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한 사람이라 스스로를 '병원인간'이라 부른다.

늙음은 아픔이 용인되지만 젊음에게는 아픔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병원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천천히, 꾸준히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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