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l 11. 2022

이드 희생제 참석 후기

Eid the Qurbani라고 합니다

 이드 무바라크~ (Eid Mubarak : 축복받은 이드 명절 보내세요~)



 오늘(양력 2022년 7월 10일, 단, 해마다 양력 기준 날짜는 달라짐. 이슬람력 기준 12월 1일.)은 이슬람 문화권의 최대 명절, 이드 얼 아즈하(Eid Ul-Azha. 현지식 발음. 영미권에서는 이드 얼 아드하-Edi Ul-Adha로 더 많이 읽힌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드 무바라크를 하도 열심히 외쳤더니, 체화가 되어서 이제 스스로 운율도 느껴지고 발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역시, 언어는 사람들하고 만나면서 배우는거다.


 오늘을 위해 파키스탄 전통의상을 하나 미리 장만했다. 파키스탄 전통 남성복 Shalwar kameez.

 샬와르(Shalwar)는 허리는 엄청나게 크고, 밑단이 좁아지는 풍덩한 몸빼 같은 바지다. 주머니는 없고 엄청 얇다. 허리는 고무줄로 고정한다. 허리가 얼마나 크냐면... 내가 세 번 들어가고도 남겠다. 카미즈(Kameez)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셔츠이다. 살짝 도복 같은 느낌도 든다. 미국식 캐주얼을 입는 사람도 있지만, 이 나라 현지 남성들의 90%는 샬와르 카미즈를 기본으로 입고 산다고 보면 된다. 바지에는 주머니가 없지만, 카미즈에는 양 옆에 작은 주머니가 있다.


파키스탄 전통의상 하의 샬와르. 통이 무지무지 크다. 허리는 고무줄을 넣어 입는다.
전통의상 카미즈. 위쪽은 와이셔츠 비스무리한데 엄청 긴 원피스같다.


 오늘만큼은 다들 최고로 좋은 옷을 갖춰 입고 아침에 모스크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희생제를 준비한다. 나도 그들의 교리에 맞게 아침부터 깨끗하게 샤워하고, 지저분한 수염도 정리하고 어제 정성 들여 다려둔 샬와르 카미즈를 차려입었다. 역시 예복은 화이트지. 혼자 거울 보며 백의민족 한국인답게 흰색 옷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예는 갖춘 것 같고, 이제 현장으로 출발.








 이후 아래부터는 도축 사진이 다수 나옵니다.
 선혈이 낭자한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 하긴 했지만, 비위가 약하시거나 동물 애호가로서 동물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분들께 불편한 사진이 올라올 수 있음을 미리 공지드립니다.









 이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Eid Ul-Azha(이드 얼 아즈하)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라는 신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려 하자 신이 양을 대신해 제물로 바치도록 허락했다는 내용에서 유래했고 이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이드를 희생절이라고도 한단다. 특히, 오늘 다루게 될 도축행사는 Eid the Qurbani, "이드 쿠바니"라고 칭하며 쿠바니는 우리말로 "희생"을 의미한다.


첫 번째 소는 이미 희생의식이 끝났다. 두 번째 희생물을 위한 기도 준비 중.


 희생제 현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딱히 별 다른 제단이나 특별한 장식은 보이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는 소 두 마리가 보인다. 늦지 않게 왔는데 이미 의식이 시작된 모양이다. 이미 한 마리는 목이 절단된 채로 숨이 멎었다.


희생될 소를 중심으로 모여서 다들 손을 앞으로 모으고 경건한 기도 의식 중


 두 번째 소 차례.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기립해서 소 주변을 에워싸고 종교지도자의 가이드에 맞추어 다 같이 기도를 올린다. 기도 중간에는 자연스럽게 손을 앞으로 펼쳤다가 기도가 끝나면 양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는 것이 기도법. 현지어로 진행되는 까닭에 뭐라는지 도통 알 수가 없지만 "주여 저희들의 죄를 사하여주옵시고, 불쌍한 이 소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거두어주시옵소서-" 정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기도는 2~3분 정도 짧게 행해지고 끝난다. 염소 등 작은 덩치는 한 사람 분의 죄를 사하며, 소처럼 덩치 큰 가축은 일곱 사람의 죄를 사한다고 한다. 오늘 희생될 소는 총 3마리인데, 마을 공동체의 각 가족들마다 한 마리씩 준비된 거라고 했다.


기도 의식이 끝나면 이렇게 꽁꽁 묶이고 장성들에게 제압당한다.


 기도가 끝나면, 장성들이 소를 밀어 강제로 쓰러뜨리고, 밧줄로 네 발을 꽁꽁 묶는다. 지 죽을 줄 예상한 소는 슬피 울어대며 처량히 저항을 하는데, 예닐곱 여명의 장성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네 발은 꽁꽁 묶이고, 고개는 목이 잘 보이도록 획 강제로 젖혀진다.


의식에 쓰이는 파키스탄 도(刀). 생각보다 별로 안 크다.


 이제 운명의 시간. 날이 잘 선 칼로 단번에 목이 잘린다. 긴 장검으로 일합에 일도절단이 아니라, 식칼보다 조금 더 긴 칼로 목을 부여잡고 서걱서걱... 톱질하듯 자른다. 대동맥이 절단되면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도축하는 사람들의 옷을 붉게 물들인다. 이 와중에 내 흰옷에 피가 튀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있었다. 목 절단을 마치는 시간은 10초에서 15초 정도. 손이 날렵하다. 목이 절단된 소 몸통은 1~2분간 사지 경련을 일으키지만, 곧 미동도 없이 잠잠해진다. 얼마 전까지 존재하던 생명체가 고깃덩어리로 바뀌어버렸다.



 도축 이후의 별도의 추가 위령 의식은 없다. 여기저기 튄 피를 씻어내리는 것이 마지막 의식. 다음 희생제에 쓰도록 칼은 다시 예리하게 숫돌에 갈린다.


 도축된 소는 그 자리에서 해체된다. 먼저 가죽을 곱게 벗기고, 내장을 꺼내고, 고깃덩어리를 운반하기 좋은 크기로 서걱서걱 자른다. 소 머리가 몸통에 반만 붙어있을 때까지만 징그러웠지, 지금부턴 그냥 푸줏간 풍경이다. 가죽을 벗겨내는 소를 보고 있자니, 마치 외출 갔다 외투를 벗는 것처럼 옷 한 벌을 벗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가죽도 저렇게 벗겨지려나? 나는 가죽을 벗기면 뼈가 바로 나올 것 같은데...


소가죽은 곱게 벗겨낸다.


 나는 도축장에 가본 적은 없어서 현대적 도축시설과 희생제를 비교해 볼 수는 없지만, 마을 어귀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도축 장면이 그렇게 야만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역사와 종교를 되짚어봐도, 제단에 제물로 가축을 바치는 일은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아주 일반적인 문화이다. 아직도 그런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과거에 시골 동네 어귀에서 개를 때려잡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했나. 지금은 국민의식이 높아져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지만, 맛 좋은 고기가 된다며 살아있는 개를 나무에 매달아서 자루에 씌운 뒤 매질하며 죽이던 것이 한국식 도축 문화의 한 단면이다.



 적어도 이들의 희생제는, 사람 대신 희생되는 가축들에게 예를 다해 기도해주며, 고통을 느끼는 시간이 최소가 되도록 잘 훈련된 사람이 한 번에 목에 칼을 긋는다. 그리고 그 가축의 희생에 충분히 감사해한다.


 생명이란 것이... 모질 때는 모진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그라지는구나. 중세 유럽에서 악명 높았던 단두대(기요틴)의 발명 배경이 "고통 없이 단시간에 사형을 집행하는" 인간적인 장치라던데, 오늘 소의 희생제를 직접 눈으로 보니 그게 이해가 되었다. 잔인해 보이지만, 어차피 죽일 거라면 가장 자비로울 수 있는 셈.



 희생제에는 여성은 참석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렇듯 오늘 참석한 마을 행사에서도 단 한 명의 여성도 소개받지 못했다. 혹시 현지인 집에 초대를 받더라도 여성 가족에 대해 물어보거나 여성 가족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은 매우 큰 결례가 된다고 하니 미리 알고 조심하자.


 오늘 희생제에서 얻어진 고기는 잘 요리되어 내일 나눠먹게 될 것 같다. 나는 같은 집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내일 점심에 다시 초대받았다. 원래 희생제가 끝난 후 해체된 고기는 간부터 요리해서 참석한 사람들과 먼저 나누어 먹는다고 하던데, 점심은 회사에서 직원들과의 행사가 미리 계획되어 있어 희생제의 뒤풀이까지 모두 함께할 수는 없었다.


 희생제가 끝난 후 지사로 복귀해서 이드를 기념하는 간단한 행사를 주최했다. 이곳 설비는 24시간 가동되는 국가 핵심시설 중 하나. 누군가는 이곳에서 연휴 동안 일을 해야지. 한국에서 설, 추석 명절 필수 근무자 격려하듯, 기꺼이 남아서 일하는 성실한 직원들을 위해 특식으로 준비한 격려 오찬을 열었다. 지사 내 기숙사에 기거하는 직원들이지만 오늘만큼은 다들 제일 좋은 샬와르 카미즈로 갖춰 입고 온다. 그들과 담소 나누며 현지 음식을 나눠먹는 사진으로 오늘 글은 마무리.



 이들과 함께 기뻐하며 함께 슬퍼하며 함께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나도 점점 파키스탄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못다 한 이야기 Q&A


Q1. 가축 목이 잘리는 광경을 직접 보고 오셨는데 트라우마 없나요?

A1. 예전에 더한 광경을 봐서 그런지... 그다지... 도축되는 가축을 보고 온 직후 점심때에도 고기 요리 배불리 잘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여러 자극들을 받다 보니 둔감해지나 봅니다. 희생제 현장에는 현지인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많던데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징그러워해 하지 않아요. 매년 반복되는 행사이니 익숙한가 봅니다.


Q2. 사진자료는 이게 다 인가요?

A2. 더 많지요. 늘 그렇듯 대충 찍고 선별해서 고르고 골라 모자이크 작업한 거랍니다. 현장에서보다 사진으로 찍은 걸 새로 보니 좀 끔찍하고 징그러운 느낌이 들더라구요. 순한 맛만 골랐습니다. 참고로 동영상도 찍어왔는데... 이건 보시면 다수의 독자님들이 트라우마 생길만한 장면이라 아쉽지만 공개하지 않을래요.


Q3. 현지 음식은 뭘 드셨나요?

A3. 차나 풀라오(Chana Pulao), 치킨 화이트 코르마(Chicken White Korma), 치킨 로스트(Chicken Roast), 라이타(Raita), 짜파티(Chappati)로 차려진 성찬을 먹었습니다. 요다음에 상세하게 소개드려 볼게요. 오늘은 음식 얘기까지 다 하기엔 너무 길어서요. 대부분의 음식은 한국인 입에도 잘 맞습니다.


Q4. 날씨는 괜찮았나요?

A4. 전날 저녁에 비가 왔습니다. 덕분에 온도는 30도 초반까지 많이 내렸는데 습도가 올라가서 땀이 마르질 않았어요. 그래도 비도 안 왔고, 쨍쨍 직사광선도 안 나던 날이어서 희생제를 치르기에는 나쁘지 않던 날씨였습니다.

이전 10화 이드(Eid) 연휴가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