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Feb 05. 2023

호의는 받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준비되지 않은 호의는 거부감일 뿐이다

 나는 타인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을 매우 즐기는 부류의 사람이다. 내 몸이 크게 힘들지 않은 선에서 작은 도움을 건네고 진심 어린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게 좋다. 딱히 이타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좋아요"를 갈구하는 성향 이랠까... 어쨌건 지하철 역사에서 누군가의 트렁크 같이 들어주기, 길 찾는 외국인에게 먼저 두유 니드 헬프 말 걸기, 키오스크 쓰기 어려워하시는 어르신 돕기 등 어려서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 착하게 사는 인간형이다.


 그런데 말이지, 작년 말에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호의도 막 꺼내 주면 안 되는 거구나 크게 느꼈다.


 이탈리아에 나홀로 배낭여행을 갔다. 이탈리아는 선진국이란 말이 무색하게 치안이 썩 좋은 나라가 아니다. 주요 관광지에는 늘 소매치기들이 득실대고 나폴리 같은 항구도시는 고담시가 무색할 정도로 범죄도시로 전락해서 현지 여행가이드조차 방문을 꺼려하는 상황이다. 셀카봉에 고가 스마트폰을 장착하고 걷다가 셀카봉 채로 스마트폰을 낚아채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해서 나도 셀카봉 자체를 가져가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많이 알려졌는지 실제로 이탈리아 갔을 때 셀카봉을 사용하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소매치기범으로 몰렸었던(것 같은) 트레비 분수에서의 안 좋은 기억


 로마 트레비 분수대에 갔을 때 일이다. 2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녀 한국인 대여섯 명이 분수대를 배경으로 다 같이 모여 셀카를 찍고 있었다. 셀카봉 없이 대여섯 명이 한 프레임에 담기도록 팔을 뻗어 사진 찍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딱 봐도 힘들어 보이길래, "아, 한국인이시네요~ 제가 찍어 드릴까요?" 했는데, 갑자기 경멸스러운 눈빛을 보이더니 "됐어요!" 하는 거 아닌가. 됐다는데 뭐. 나도 더 이상 한 마디도 섞지 않고 자릴 피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 나도 그런 얘길 들은 적 있다. 사진을 찍어주는 척하면서 스마트폰을 들고 튄다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내가 그리 좀도둑스럽게 생겼나? .....생겼네. 그래. 이해해 주자. 뭐, 그래도 설혹 내가 좀도둑이라 쳐도 "됐어요!"가 뭐냐. "괜찮습니다."라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호의를 거절한 것은 이해가능. 호의를 거절하는 방법은 100점 만점에 빵점. 그 이후로 내가 다시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어준다고 말 거나 봐라 다짐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사진사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 생기면 "사진 찍어드릴까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산 지미냐노에서 중년 아줌마 두 분께도 똑같은 취급을 또 당했었는데, 신기하게 스위스 여행을 할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반응이 없었다. 어쨌든 배경이 상황을 만드는 거긴 하지만, 그들의 거절하는 방법이 아쉬웠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랬다고 모두가 조심스러운 상황에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호의는 보이면 안 되는 거였다.


 말 나온 김에 다른 사례 몇 가지 더.


 어떤 식당엘 갔다. 바쁜 점심시간에 식당 종업원들이 정신이 없다. 손님이 들고 나고 서빙하고 바쁜데 이제 막 식사를 끝내고 나가는 테이블 자리 정리할 손이 모자란다. 내가 조금만 거들까? 먹고 난 식기를 포개서 주방으로 가져다주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한 말씀 하신다. "아유, 손님, 안 도와주시는 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엇...허엇....... 또 푹 찔렸다. 난 그냥 호의로....... 그래, 식당 고유의 시스템이 있겠지. 그리고 손님이 괜히 나서다가 식기를 깨거나 동선이 꼬이거나 하면 더 문제지. 이후부턴 직접 빈 그릇 나르기는 하지 않고, 내 식사가 끝나면 내 자리 테이블만 남은 음식 국그릇에 한 군데 모으고 식기를 착착 포개주는 정도로만 도와주고 나온다.


 지사는 설비운영관리 특성상 쉬는 날이 없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서 언제나 직원이 상주하는 곳이다.(물론 교대근무 및 대체근무를 하니 유급휴일과 휴가는 보장이 된다.) 직원들을 위한 식당도 운영하고 요리사도 채용하여 운영하고 있다. 나는 단신 파견 지사장 신분이니, 한국 복귀휴가나 전지휴가를 제외하곤 거의 지사 안에서만 상주한다. 어느 날 속이 좀 불편해서 식사를 건너뛰겠다 말해놓고 한두 시간 있으니 배가 또 고파져서 주방에 살짝 들어가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가 요리사님께 딱 걸렸다. 아니, 먹고픈게 있으면 이야길 하지 왜 직접 이러시냐고. 아니, 저기, 나는 그냥 요리사님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게 싫어서요.... 요리사님은 정색하며 당신이 이러면 우리 일 뺐는 거라고 강하게 컴플레인. 음. 그렇긴 하지. 여기는 회사고 직무범위를 정해서 고용급을 주고 있는데 계약된 범위의 일을 조직장인 내가 대신 해버리면 이 친구들의 입지가 조직에서 엄청 이상해져 버리긴 하지. 다음부턴 주방에 안 들어가는 걸로... 들어가더라도 들키지 말아야겠다..... ㅠㅠ


 자꾸 먹는 쪽에만 집중이 되는 것 같은데 먹는 것 준비하고 치우는 일만큼 잔손 많이 가는 일이 어딨나. 그래서 이쪽 에피소드가 많나 보다. 내가 경험한 건 아닌데, 병원 밥차 배식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읽은 기억이 나서 같이 엮어본다. 병원에서의 밥차 배식은 일반식과 특수식이 바뀌면 안 되기 때문에 지정된 조리사 외에는 배식을 거들어주며 참여하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고 한다.


https://brunch.co.kr/@himneyoo1/81


 이건 좀 다른 문제긴 한데, 누군가 작은 도움을 요청해 오면 상황에 따라 판단을 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범죄로 악용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 입국 수속 시 인자해보이는 할머니가 아유 젊은이, 이 짐 좀 대신 들어줘요 했다가 통관에서 마약사범으로 몰려서 인생 망치는 이야기, 누구한테 손가방 좀 받아다가 전달해주세요 하는 거 부탁받은 대로 했다가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으로 잡히는 이야기 등 순진한 사람들 꾀어다가 범죄에 동원하는 경우도 많기도 하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호의를 베풀 땐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호의를 받을 사람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 사람에겐 당신의 호의는 그냥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일이 될 뿐일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