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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r 28. 2023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우리말

양성모음과 음성모음, 그리고 그 느낌에 대하여

 나는 어렵고 진지하게 쓰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내가 글을 쓰면 날카롭고 진지해지고 불편해지는 쪽으로 흐를 때가 많다.

 어떻게 해야 좀 개선되고 고쳐지려나. 글쓰기의 스승이 뭐 따로 있나. 주변이 모두 작가님들인데. 내 주변 글친 작가님들의 글은 편안하고 재밌고 친근한 문체를 가진 분들이 많다. 내가 그런분 중심으로 구독하고 있으니까.


 내가 갖추지 못한 능력을 보유한 넘치는 필력을 보유하신 작가님들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감탄하고, 때때로 베껴 쓰려고 시도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작가 고유의 문체를 바꾼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프랑스 시골소녀 감성을 가진 편안하고 힐링되는 문체의 김현아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이 작가님 단어선정도 참 재치 있네~"하고 빙긋 웃게 만드는 구절이 있었다.


"개를 밖에서 키우는 집을 발견했는데, 사실 그 집뿐만 아니라 많은 집이 야외 견사를 두고 있어서 그러려니 하다가도 항상 밖에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는 녀석을 보니 마음이 쓰였다."

https://brunch.co.kr/@kimhyunah/136


 "오도카니"

 아, 우두커니를 좀 더 귀엽게 보이려고 강조해서 쓴 말이구나~


 그런데, 단어의 자세가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서 사전을 찾아봤다.


우두커니 :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
오도카니 : 작은 사람이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

- 네이버 어학사전


 오우 세상에나. 진짜 사전에 있는 말이구나.

 나 비록 외국에 살고 있긴 하지만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인데 왜 이 단어가 생소하고 참신해 보일까나. 나이 중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모르고 있는 한글 단어가 많다는 게 가끔은 신기하고 때론 부끄럽다.


그런데 말이지, 저 단어를 해설한 내용을 보라.

"우두커니"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추측"한 "오도카니"의 뜻과 완전 똑같지 않으려나. 적어도 나는 정확한 뜻을 유추했다. 이미지와 감정까지 느끼면서.


우두커니 / 오도카니의 감성 (출처 : 다음웹툰 "우두커니" / CJ 온스타일)


 내친김에 언어학을 조금 공부해 보자.

 우리말에는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이 있다.


양성모음 : 어감(語感)이 밝고 산뜻한 모음. ‘ㅏ’, ‘ㅗ’, ‘ㅑ’, ‘ㅛ’, ‘ㅘ’, ‘ㅚ’, ‘ㅐ’ 따위가 있다.
음성모음 : 어감(語感)이 어둡고 큰 모음. ‘ㅓ’, ‘ㅜ’, ‘ㅕ’, ‘ㅠ’, ‘ㅔ’, ‘ㅝ’, ‘ㅟ’, ‘ㅖ’ 따위가 있다.

- 네이버 어학사전


우리말에는 한 단어 안에 있는 모음들이 양성과 음성의 성질을 공유하는 특징이 있는데, ‘알록달록’과 ‘얼룩덜룩’처럼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어서 이를 ‘모음조화’라고 부른다.

출처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101020795742


 "오도카니"와 "우두커니"로 대변되는 모음조화와 단어쌍의 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잘 알겠지만, 한국어에는 이런 조합과 감성의 단어가 매우 다양하며 신기하게 아무런 설명 없이도 그 느낌이 매우 잘 전달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다른 나라 언어에도 이 비슷한 감성이 있던가?


새카만 / 시커먼
하얗게 / 허옇게
알록달록 / 얼룩덜룩
졸졸 / 줄줄
조랑조랑 / 주렁주렁
졸망졸망 / 줄멍줄멍


 그리고,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이런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글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으로 조합된 저 조화된 글자모양 자체도 무척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나는 외국생활을 하며 다양한 외국어를 접하고 있지만, 한글만큼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배우기 쉽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문자체계는 세상에 없다. 단언컨대 한글이 정말 최고다. 심지어 디지털 시대에도 매우 잘 동작한다. 말 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타이핑을 할 수 있는 문자체계는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브런치를 한자만 써서 쓴다고 생각해보자. 으... 끔찍하지 않은가? 다행이다. 한국인이어서.


 한글을 음성학의 범주에서 왜 혁신적이고 위대한 발명인지를 쉽게 잘 설명하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55666314


 가만,

 그런데 영어에서도 비슷한 감성의 단어쌍이 있던가?

 암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단어쌍이 없네.


새카만 / 시커먼
하얗게 / 허옇게
알록달록 / 얼룩덜룩
졸졸 / 줄줄
조랑조랑 / 주렁주렁
졸망졸망 / 줄멍줄멍


 그럼, 이 한국어 단어는 어떻게 영어로 번역한담??? 잘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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