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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들어가다

안토니 가우디 평생의 역작

(이전 이야기에서 계속...)


https://brunch.co.kr/@ragony/349




점심도 빵빵하게 잘 먹고 왔으니 이제 다시 관광모드.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렇지, 입구에 들어갔지.(이제 겨우 하루 반 치 썼는데 언제 다 쓰나...)



표를 미리 구매한 관광객은 "C" Gate로 들어가면 된다. 별 거 없고 보안검색대 통과해서 QR코드 보여주면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관광 성수기에 들어가려면 높은 확률로 표가 매진될 수 있으니 내부를 관광할 계획이라면 미리미리 구매해서 헛걸음하지 않으시길 추천드린다.


타워 포함 입장 티켓은 이렇게 생겼음



들어가다 말고 잠시 들었던 생각.

아니, 이 성당 "건축 중"이라면서요.

"건축 중"인 성당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어도 괜찮음? 준공검사 사용전검사 받았음? 건축 중인 블록에 일반인 출입하게 하는 건설소장이 어딨음? 고공 낙하물 추락사고 나면 책임질껴?


암튼 한국인 상식으론 좀 납득이 안 가는 일이긴 하지만 우얏든 "건축 중"인 성당에 잘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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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별도의 오디오 수신기와 헤드셋을 제공하는 건 아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어플을 깔고 자신에게 맞는 다국어를 다운받으면 된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표를 구매한 사람에 한해 제공된다. 성당 방문 전 미리 한국어 오디오를 다운받고 무선이어폰 등을 챙겨가시는 게 좋겠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이긴 하지만, 녹음된 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평안하진 않다. 전문 성우 목소리 같기도 한데 텍스트를 AI로 자동 더빙한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든다. 요즘에는 AI기술이 워낙에 좋아져서 TTS도 사람목소리 같아서 종종 헷갈린다. 가이드 투어는 역시 맨투맨 가이드가 최고긴 하지만... 비싸다.


동선을 안내한 지도도 어플 안에서 제공하니까 아이콘만 잘 보고 따라가면 크게 헷갈릴 길은 아니다. 가끔 보면 성당 후면 "수난의 파사드"까지만 보고 도로 정문으로 나오는 분들도 있다던데 고 뒤쪽으로 돌아나가서 천장이 수려한 가우디 학교도 보시고 지하 박물관까지 보고 나오셔야 한다. 그래서 여행 전 예습은 중요하다.



가까이서 보려니 고개가 아프다. 저 많은 조각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깎고 붙이고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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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이렇게 완성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아 그렇구나. 바로 위 제일 마지막 오른쪽 사진이 영광의 파사드 쪽 입구가 되며 주 출입구가 될 모양인가 보다. "고가도로 및 다리를 건설하고 그 위로 사람들이 걸어올 수 있는 계단길을 조성하겠다"고 한 설명과 모양이 일치한다.

성당 중앙의 가장 거대한 탑과 십자가는 아직 세워지기 전이지만 수년 내 공사를 마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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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파사드는 가장 먼저 지어졌고 이미 공사가 끝났다. 가우디 생전에 완공한 유일한 파사드. 성경 속 예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조각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각상 하나하나 뜯어서 감상하려면 여기서만 한 시간을 보내도 모자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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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있는 자비의 문을 지탱하는 기둥 하부에 조각된 거북이들. 너넨 무슨 원죄가 있길래 이리 무거운 걸 이고 다니니. 거북이들을 자세히 보면 바다 방향 쪽 거북이는 다리에 지느르미가 있고 산 방향 쪽 거북이는 지느르미가 없다. 각각 육지거북과 바다거북을 표현한 것.



실내로 들어가면 젤 처음 볼 수 있는 로사리오 회랑. 탄생의 파사드 못지않게 출입구 상부에도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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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파사드에 설치된 탄생의 문.

일본인 조각가 소토오 에츠로의 작품이다.

문을 자세히 보면 다양한 식물과 곤충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드디어 들어온 실내.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매우 장엄하고 엄숙하면서도 신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공간의 힘.

가우디는 성당 내부를 숲으로 상상하고 형상화했다. 저렇게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 기둥은 정말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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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래스는 빛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실내를 다른 느낌으로 비추어준다. 자연의 빛이 이리도 오묘하고 아름답다니. 성당 내부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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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 주 출입문이 될 부분.

똑같은 것이 이미 바깥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게 그 문의 반대편인지 복제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노란 금박으로 입혀진 AIG는 Antoni Gaudi를 뜻하며 그를 기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문에는 50개국의 언어로 주기도문 일부가 조각되어 있다. 왼쪽 하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한글 문구도 확인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문의 바로 상부에는 성 조르디 기사의 조각이 올려져 있다. 선과 면이 단순한 특징으로 보아 저 조각 역시 수비라치가 조각했음에 틀림없다.(나도 예술을 보는 눈이 생겨버렸네.)



스테인드 글라스를 자세히 보면 KIM이라는 친숙한 영문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 성씨 "김" 맞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님인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헌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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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찾는 한국인은 꼭 영광의 파사드에 새겨진 한글 문구와 KIM 스테인드 글라스를 찾아보고 오심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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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숲 속 나무기둥을 연상시키는 성당 기둥들.


내가 방문한 시간은 해지기 직전 시간이라 건물 안이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동편은 탄생을 뜻하는 녹색+파랑 계열의 글래스, 서쪽은 일몰과 죽음을 상징하는 주황 계열의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해질 무렵에 가면 실내가 온통 따뜻한 붉은빛으로 물든다.




탄생의 타워


이제 탄생의 타워로 올라갈 시간.

인생에 한 번 간다는 생각으로 방문 옵션 모두 질렀다. 설마 두 번 와 보겠냐.

올라갈 수 있는 타워 옵션은 두 개가 있는데, 나는 가우디가 건축했다는 탄생 타워를 골랐다.

타워에 올라가기 전에는 이렇게 생긴 록커에 소지품을 모두 넣고 가야 한다. 작은 가방도 안 봐준다. 보증금 1유로 동전을 넣어야 열쇠를 돌릴 수 있는 구조니까, 성당 방문 전 유로 동전 하나쯤은 챙겨가심이 좋겠다.(나중에 도로 돌려준다.)



한 번에 네댓 명이 탈 수 있는 매우 좁장한 엘리베이터.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셈.

타워 올라가는 시간은 성당 들어가는 시간과 별도로 지정해야 하는데, 타워 올라갔다 내려와도 성당 구경은 더 할 수 있으니 시간 안배에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 다시 외부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구조 아니다.(성당 내부에서 바로 연결되어 있다.)



사실 타워 상부는 별 게 없다.

매우 좁은 전망대에서 주변 탑들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그 탑들 사이로 도시를 좀 더 조망할 수 있을 뿐이다. 가성비는 별로다. 그냥 의미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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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렇게 멀리서만 보던 이름 모를 과일 조각상도 자세히 볼 수 있고,



탑 들 사이로 보이는 도시 전경도 훌륭하다.



탑 전망대는 매우 매우 좁아서 딱 엘리베이터 탑승 인원 대여섯 명이 동시에 설 수 있는 정도일 뿐이다.



그래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조망이 있는 거고



꼭대기 조각상도 여기서만 자세히 볼 수 있고



옥수수탑의 세부 모습도 자세히 볼 수 있으니 인생에 한 번쯤은 와 봐도 후회하진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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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호수가 아까 사진 찍고 온 그곳. 여전히 인증샷 찍는 사람들로 빠글빠글.



짧은 구경을 마치면 곧 후속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므로 지체할 시간 없이 (쫓겨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여느 타워와 마찬가지로 매우 좁은 꼬불꼬불 나선길.



내려가는 길에도 군데군데 눈길을 끄는 조각상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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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길을 상부에서 보면 마치 암모나이트 조개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또한 바다를 자주 형상화 했었던 가우디의 의도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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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길 따라 내려오면 다시 성당 내부와 연결된다.

짧은 타워 관람은 이렇게 끝.

시간과 체력이 충분하신 분들은 인생에 한 번 경험이니 가 보실 만하고 시간도 돈도 체력도 아낄 분들은 굳이 가 보지 않아도 특별히 중요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니 패스 하셔도 무방할 것 같다.


벌써 사진을 너무 많이 올려서,

수난의 파사드와 가우디 학교, 박물관 얘기는 이어지는 다음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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