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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28. 2024

퇴근 후 날아온 뜬금포 국경일 소식

미리 좀 알려주면 안 되나?

 퇴근 후 숙소에서 모처럼 비밀리에 꿍쳐둔 술을 꺼내 팀장하고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띠리리 울린다. 어? 나한테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나 콜포비아라서 어지간히 급한 거 말고는 전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 놨고 한국에선 국제전화요금 무서워서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대체 누구야?


 회사 인사담당. 문자를 수 차 보냈는데 내 술 먹느라 바빠서 30여분 회신을 못 했고, 참다못한 직원이 다 바이패스하고 나한테 직접 전화한 것.


 요지는,


(인사담당자) : "지사장님, 정부에서 갑자기 내일 임시 휴일을 지정했습니다. 우짜죠? 우리도 쉬나요?"


(나) : "아니 먼 뚱딴지같은 소리야. 퇴근한 지가 언제고 업무시간 중에 그런 말 들은 사람 아무도 없는데. 또 작년처럼 페이크 뉴스 속았지~ 하려고 그러는 거 아냐? 괜히 페이크 뉴스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정부공식 홈페이지 통해 확인해 보고 신뢰성 있는 소식인지 재확인하고 연락 줘요."



(참고로 작년에 아래처럼 된통 당해본 경험이 있음)

https://brunch.co.kr/@ragony/283



(몇 분 후)


(인사담당자) : "정부 홈피 확인했는데요, 정식 공문 찾았습니다. 내일 휴일 맞대요."


(나) : "그럼 나한테 물어볼게 뭐 있어요~. 전 직원에게 내일 휴일 공지하고 쉽시다. 아, 가만가만, 내일 당직근무자는 누구....?"



 아니 진짜... 임시휴일을 지정하려면 우리나라 예를 들면 일단 먼저 정계 재계 국민 눈치를 보면서 임시 휴일을 지정해도 될만한 분위기일지 두드려가며 행정자치부가 인사혁신처에 임시공휴일 지정요청을 먼저 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고 선포하면 그때 정식으로 국가 휴일이 되는 거다.


 그런데 이 나라는, 일언반구 말도 없다가 퇴근 다 하고 집에 가 있는데 "총리가 내일 휴일 한대요"하고 발표하면 끝이다. 아 진짜... 나도 휴일 좋아하긴 하는데, 제발 좀 생각 좀 하고 일 하자. 부탁이다.


 여기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윤년에는 삼백육십육일 돌아가는 장치산업 사업장이란 말이다. 퇴근하고 갑자기 휴일 때려버리면 내일 어떻게 일하라고 그러신다냐. 휴일 당직근무자 표도 미리 짜고 지정해서 알려주고 해야 무탈히 설비를 돌리며 미리미리 인사명령 내려야 구멍안나고 인건비 챙겨줄 거 아니냐고. 최소한의 준비 시간을 달라 달라 달라.


 이 와중에 매니저들이 진중한 건의사항이라며 몇 마디 거든다. 갑작스런 휴일에 다들 정신없어하기도 하고 근무리듬도 깨지고 하니까 그냥 내일 하던 대로 근무하고 다음 주 월요일 쉬잖다.


 ㅡ_ㅡ; 노놉. 안됩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럼 아예 토요일 일요일도 다 싹싹 몰아다가 20일 연속 일하고 10일 연속 쉬지 왜. 안 그러는 이유가 있잖아. 기본적으로 주요 행정직은 남들 놀 때 같기 놀고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거잖아. 메카닉들이 설비만 돌리는 사업장 아니잖아.


 아니 알만한 매니저들이 저러고 있으니 또 모처럼 퐈이어. 아무래도 이 친구들, 내가 여기서 직급이 제일 높은 지사장이다 보니 내 권한이 뭐든 걸 다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거라고 착각하나 보다. 나는 회사 사장도 아니고 지사를 대표하는 대표자일 뿐인데. 나도 규정 통제 다 받는 직원일 뿐인데. 생각 좀 하고 살고 내 스트레스도 좀 나눠 들어주고 살라고 쫌.


 건의사항 이해는 한다. 어쩌다 중간휴가 하루는 여기선 아무 의미가 없다. 파키스탄은 매우 큰 나라이며, 직원들의 태반이 집이 지사에서 매우 멀어서 가는데 하루 오는 데 하루가 걸려 가급적 휴가를 모아모아 한 번에 쓰려는 경향이 큰 이유이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회사는 회사지... 늬들 집 먼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렇게 따지면 내 집이 젤 멀다고. 나보다 집 먼 사람 있음 나오라 그래(여기서 한국 집에 가는데만 사흘 걸림).


 암튼 절절한 건의사항 단칼에 싹 잘라버리고 내일은 국가 지정 휴일.


 근데. 왜 쉰대냐.

 다시 공부를 해보니, 내일은 파키스탄 핵무장 기념일이라고. 


https://www.dawn.com/news/1836025/pm-shehbaz-declares-public-holiday-on-may-28-to-observe-youm-i-takbeer


 Youm-e-Takbir(위대함의 날)이라고 지정된 이 날(5월 28일)은 1998년 파키스탄이 처음 핵실험에 성공한 날로 파키스탄이 공식적으로 핵무장에 성공한 날로 기념되는 날이다. 작년까진 국경일이 아녔는데, 올해 갑자기, 그것도 퇴근 후 19시 가까이 되어서야 느닷없이 갑자기 총리령으로 공휴일 지정이 되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핵무장 국가가 된 날이니 기념할 만 하긴 하지. 실제로 파키스탄 국민들은 자국이 핵무장 국가라는 사실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며 트럭장식 등 생활 주변에서 핵보유국임을 자랑하는 문양을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니 그런데. 핵실험 한 날이 갑자기 오늘 밝혀진 것도 아니고, 이렇게 급하게 휴일을 발표한다? 뭐 좀 이상한데? 진짜 속셈이 뭘까?


 현지 직원들하고 "야야~ 늬들 생각엔 정부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 같애?" 콕콕 찔러 물어보니, 두 가지 답을 해준다. 어디까지 카더라 추정이니 너무 깊이 듣진 마시길.


(가설 1)

임란 칸(Imran Khan) 전 총리가 다수의 지지를 받음에 따라 현 기득권층은 국민들 사이에서 존경심을 잃었다. 이번 핵실험은 군대에 대한 국민의 사랑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PMLN(현 여당) 집권 기간 동안 이러한 핵실험은 1998년에 수행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기념 의식은 국민들에게 현 여당에 대한 지지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설 2)

전 총리 임란 칸(Imran Khan)의 법원 심리가 내일(5.28)인데, 다수가 법원에서 임란 칸의 보석 허가를 예상한다는 것. 정부가 직권으로 내일을 휴일로 지정함으로써, 계획된 심리일을 연기시키고 임란 칸의 보석일 역시 무기 연기시키려는 전략이라는 것.


 정부가 하는 일이 하도 느닷없고 불투명하니 온갖 가설들이 튀어나오는데 듣다 보니 끄덕끄덕 그거 말 되네 이러고 있다.


 하여간 갑자기 내일이 휴일인데 휴일은 휴일이고 내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서 기쁜 마음이 하나도 안 든다. 사실 위로휴가기간 제외하고 일 년 내내 지사 밖에 못 나가고 등대지기처럼 살고 있는 삶인데 내일이 휴일이든 주말이든 그게 무슨 큰 상관이 있냐. 휴일 근무자 관리하기만 귀찮고 추가 경비만 들지.


 남의 나라 핵무장 기념일 생각을 가만 하자니,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핵무장을 해야 하나 핵무장을 한다고 하면 말려야 하나 어쩌나 별 생각이 다 든다. 대한민국 핵무장론에 대한 고찰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이 담에 꺼내봐야겠다. 


 오늘은 일단 자야지. 잠이 보약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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